대우건설 삼킨 중흥그룹, ‘가업 승계’도 탄력 받나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1.12.16 07:3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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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토건이 인수자금 등 매입 작업 주도
정창선 회장 장남 정원주 부회장 입지도 커져

중흥그룹의 가업 승계 작업이 대우건설 인수로 방점을 찍은 모양새다. 대우건설이 이번 인수전을 주도한 중흥토건 품에 안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중흥토건은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의 장남인 정원주 부회장이 이끄는 회사다. 정 회장은 2세 승계의 일환으로 오랜 기간 중흥토건 에 공을 들여왔다. 대우건설 인수로 확실한 외형을 갖춘 만큼 경영권 승계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중흥그룹은 12월9일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내용의 본계약을 산업은행과 체결했다. 7월 우선협상자 선정 이후 5개월 만이다. 기업결합심사를 끝내면 내년 초 중흥그룹 체제의 대우건설이 공식 출범한다. 중흥그룹은 대우건설 주식 50.75%(2억193만1209주)를 약 2조1000억원에 매입해 대우건설 최대주주로 오르게 된다. 중흥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자산이 두 배 늘어나며 단숨에 재계 20위권대로 도약하게 된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중흥그룹의 자산은 9조2070억원(재계 47위), 대우건설은 9조8470억원(재계 42위)이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19조540억원으로 20위 미래에셋그룹(19조3330억원)에 이어 21위 규모다.

대우건설이 중흥그룹 품에 안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창선 회장(사 진)의 숙원이 해결될지 주목된다.ⓒ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정창선 회장 ‘재계 20위권 도약’ 꿈 실현되나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의 숙원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1983년 중흥그룹의 전신인 금남주택을 세웠다. 이후 1993년 중흥종합건설과 세흥건설을 세우면서 건설업 위주로 사업을 확장했다.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한 중흥건설은 수도권 공공택지사업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며 30여 개 주택·건설·토목업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호남 출신 지역 건설사’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이번에 대우건설을 인수함으로써 ‘전국구 건설사’로 도약할 전망이다. 올해 시공능력평가에서 6위를 기록한 대우건설과 17위 중흥토건, 40위 중흥건설이 합쳐지면 평가 순위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에 이어 3위가 된다. 동시에 오랜 해외사업 경험과 정보력을 지닌 대우건설을 통해 해외투자에 대한 숙원도 해결할 수 있다. 중흥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19개에 달하는 대우건설 계열사에 대한 인수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해외 소재 법인도 8개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숙원인 가업 승계 작업 역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 중흥그룹의 성장 기반은 중흥건설이지만 현재 실질적 주력사는 중흥토건이다. 이는 승계 구도와 관련이 깊다. 중흥토건은 정 회장의 장남 정원주 중흥건설 부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해 개인회사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8년생인 정 부회장은 광주 광일고등학교와 호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중흥건설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3년 중흥건설 사내이사에 올랐으며 지난해부터 부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정 회장은 2세 승계를 위해 중흥건설 지분을 정 부회장에 넘기지 않고, 1994년 중흥토건을 설립해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중흥토건의 외형 성장에 공을 들여왔다. 중흥토건은 내부거래를 통해 급성장했다. 설립 초기만 해도 중흥건설의 시공 보조 역할을 전담했지만 2011년부터 직접 택지 매입자금을 조달하고 주택사업에 주도적으로 뛰어들었다. 중흥건설이 택지 매입 과정에서 지급보증에 나서면서 자금조달 부담을 덜었고, 계열사로부터 공공택지 주택사업 일감을 대거 확보해 매출이 급증했다.

그룹 역량이 집중되면서 중흥토건의 매출은 2009년 103억원에서 3년 뒤인 2012년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15년에는 6168억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중흥건설을 뛰어넘었다. 지난해의 경우 중흥토건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중흥건설보다 각각 3배가량 많았다. 외형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지난해 중흥건설의 자산총액은 8539억원, 중흥토건은 2조400억원으로 2.4배가량 차이가 난다. 2015년까지만 해도 중흥건설과 증흥토건의 자산총액이 각각 2820억원, 2711억원으로 비슷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 중심이 이동하는 방증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경영 쏠림 현상은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하는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도 볼 수 있다. 중흥건설은 2016년 33위에서 △2017년 39위 △2018년 59위 △2019년 43위 △2020년 35위 △2021년 40위 등으로 정체된 상황이다. 반면 중흥토건은 같은 기간 △2016년 42위 △2017년 35위 △2018년 22위 △2019년 17위 △2020년 15위 △2021년 17위 등으로 5년 전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대우건설 인수로 중흥그룹의 오랜 가업 승계 작업 역시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인수의 실질적인 주체는 중흥토건이다. 중흥토건은 인수자금 마련을 비롯해 전체적인 매입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여도를 감안할 때 대우건설은 중흥토건의 계열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연합뉴스
7월2일 서울 중구 을지트윈타워 앞에서 대우건설 매각 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힘 받는 중흥토건, 가업 승계 작업 속도 낼 듯

중흥건설이 아닌 중흥토건을 전면에 내세운 건 향후 경영권 승계·지분 정리 작업이 복잡해질 수 있어서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중흥건설 지분을 각각 76.7%, 10.9% 보유했다. 대우건설을 인수해 중흥건설의 몸집이 커질 경우 지분 정리 이슈가 불거질 우려가 있다. 반면 중흥토건이 대우건설을 안고 갈 경우 정 부회장은 향후 부친이 소유한 지분만 인수하면 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때 세금 문제나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대우건설 인수를 중흥그룹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봤다. 대우건설의 지난해 매출액은 8조2550억원으로 중흥그룹 전체 매출 3조1520억원의 2.6배에 이른다. 이런 대우건설 지분을 50% 가져가는 중흥토건은 단번에 건설업계 최상위권으로 진입하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흥그룹은 중흥토건을 중심으로 가업 승계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며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자연스럽게 승계구도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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