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과 인권, 새의 날개처럼 균형 맞아야”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4 10:0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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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의 현장 이탈 사건 뒤 오히려 급물살 타는 ‘경찰 책임 감경 법안’

‘여경의 현장 이탈 사건’ 이후 경찰이 직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감경해 주는 법안(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경찰이 총력전에 나서면서 올해 안에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법안을 살펴보면, 면책 범위를 ‘경찰관이 범죄가 행하여지려고 하거나 행하여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을 예방하거나 진압하기 위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경찰개혁네트워크’는 “면책 직무 범위가 과도하게 포괄적이어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형법 20조)’는 법조항이 존재하는 만큼 별도의 규정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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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23일 충북 충주 중앙경찰학교에서 제296기 졸업생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법 엄정히 집행하다 2000만원 물게 된 경찰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형사 면책은 물론이고 민사상 면책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민주직장협의회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는 ‘반쪽짜리’라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경찰관들은 형사 책임 면책뿐만 아니라 민사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야 진정한 면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관을 위축시키고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건 야멸차게 들어오는 민사소송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민사소송에 시달려본 경찰관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남는 게 결국 소송이라는 회의감이 경찰을 더욱 위축시킨다. 이는 경찰관 모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나쁜 메시지”라면서 “경찰 공권력이 이렇게 나약함에도 인권침해 염려를 이유로 법 개정을 당장 중단하라는 시민단체의 입장은 경찰관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경찰 민주직장협의회는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의 경우, 당시 경찰관들이 범인 제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데는 경찰관 개인의 사명감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도 “우리나라가 치안 강국이라는 건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공권력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허약하다. 지구대 경찰관들은 밤마다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뺨을 맞고 멱살을 잡힌다. 경찰 공권력과 인권은 새의 날개처럼 서로 균형이 맞아야 한다. 지금의 균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인권 쪽으로만 쏠려 있다. 기울어진 경찰 공권력에 면책이라는 추를 하나 올려놓음으로써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의 경우 경찰의 부실한 대응이 문제가 됐는데, 반대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 술에 취한 A씨는 인천 부평구 골목길에서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하며 자신의 처를 찾아오라면서 칼을 들고 행패를 부렸다. 경찰관들은 경찰 장구인 장봉을 들고 A씨와 대치하면서 칼을 버리고 진정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지원을 요청해 경찰은 물론 119안전센터 소속 구급대원까지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A씨는 경찰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칼을 휘두르고 칼로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를 찢어버리며 “가까이 다가오면 자해하겠다”면서 계속 난동을 부렸다. 경찰관은 빈틈을 노려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A씨는 그 충격으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는데, 이때 A씨가 들고 있던 칼이 A씨의 옆구리에 박혔다. 결국 A씨는 병원 호송 도중 숨졌다. 유족은 경찰관 2명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약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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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7일 충북경찰청에서 신임 경찰관들이 테이저건 사격 등 실전 대응 훈련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내근·외근 비율 5대5…비정상적 인력 배치

현장 경찰관 커뮤니티인 폴네티앙의 정학섭 회장은 “흉기를 든 범인을 안전하게 검거할 장비가 전무한 실정이다. 방검복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경찰관의 안전이 아닌 범죄자의 안전만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총기 사용 등 물리력 행사에 대한 사후 책임은 경찰관 개개인이 질 것이 아니라 경찰 조직에서 법과 제도에 따른 예산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관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소송을 당해 공무원 책임보험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해 107건이었다. 올해는 10월까지 72건을 기록했다. 이 밖에 2018년 6월 도입된 경찰 법률보험도 있다. 이를 통해 157건의 재판을 지원했다. 경찰개혁위원회 인권분과위원으로 활동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이미 긴급체포 등 정당한 공무집행의 경우에는 형사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민사 책임을 지는 경우는 있지만 2018년 경찰 법률보험이 도입되면서 변호사 비용, 소송 비용, 합의금을 보험에서 지급해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의 공권력 강화를 위해 교육훈련 체계화 등 많은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정학섭 회장은 “경찰 인력을 현장 위주로 완전히 재배치해야 한다”면서 “지금의 경찰 인력구조를 보면 내근직과 외근직 비율이 5대5다. 특히 112신고를 접수하고 제일 먼저 출동하는 지역경찰관 숫자는 2020년 5만1358명에서 2021년 5만769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선진국의 경우 내근과 외근이 3대 7, 4대 6으로 외근 숫자가 월등히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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