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인터뷰] “윤석열 정부,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임명해야”
  • 구민주·김종일·이원석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0 11:0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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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병준 국민의힘 상임선대위원장
“김종인 대 김병준의 노선 갈등, 사실 차이가 없다”
“이재명, 국가주의-포퓰리즘 조합…나라 불행해져”

좌우 진영을 넘나들며 활동한 정치인은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김병준 국민의힘 상임선대위원장의 정치 이력은 단연 다채롭다. 여야가 자리를 맞바꿔온 지난 20여 년간 김 위원장은 때마다 요직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노무현이 아끼는 책사였고, 박근혜가 탄핵 위기 때 찾은 책임총리 후보였다. 이번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의 정책 총괄로서, 당 선대위의 ‘왼쪽 날개’를 담당하게 됐다.

김 위원장이 주요한 시기마다 소환되는 이유는 그의 지난 정치 궤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탈국가주의를 강조한다. 최근 출간한 저서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에서도 언급했듯, 무딘 칼날로 개인과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권력의 타파를 주장한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분배 담론 없는 보수는 사이비 보수, 성장 담론 없는 진보는 사이비 진보”라며 양 진영의 기존 이데올로기 모두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의 주요 어젠다 중 하나인 지역균형발전은 김 위원장의 전공 분야다. 행정학자였던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인 것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지방분권 비전을 공유하면서였다. 1994년 노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했고, 이듬해부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신(新)행정수도 정책을 구상하며 사실상 지금의 세종시를 설계한 주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서 김 위원장을 향한 평가는 분분하다. 정치의 출발지와 멀어진 그에겐 ‘철새’ 또는 ‘배신자’ 꼬리표가 붙어있다. 보수진영에서도 그는 양면의 인상을 남겼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정부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탄핵이 이뤄지며 씁쓸히 물러났던 이미지는 여전히 강하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후 몰락의 길을 걷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인적 쇄신과 당 지지율 회복을 이뤄낸 기억도 있다. 또 한 번의 대선을 앞두고 중책을 맡은 김 위원장은 지금 다시 정치적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대선을 90일여 앞두고 국민의힘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은 경쟁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국가주의와 포퓰리즘 성향이 결합한 인물로 ‘가장 불행한 조합’”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자신이 윤석열 선대위에 합류한 이유 역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윤 후보에 대해선 “속에 있는 이야기를 뒤틀어 하지 않고 인내심도 있다”며 지도자의 덕목을 갖췄다고 치켜세웠다.

12월8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균형’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세종시 설계를 주도한 그는 “세종시를 잇는 ‘윤석열표 균형발전’ 메가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집권 후 대통령이 가져야 할 국정운영 기조로도 권력에 대한 균형감각을 강조했다. 대권에 도전하려는 정치인들에게 늘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조언해 왔다는 그는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에서 집권 후 협치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국회에서 추천한 국무총리를 임명해 실질적인 총리를 세울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특히 여야가 분야를 나눠 내각을 책임지는 ‘협치 내각 밑그림’을 제시하며 “정치적 합의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선대위 합류는 어떤 계기로 했나. 윤 후보의 무엇을 봤나.

“윤 후보뿐 아니라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찾아오면 제가 늘 하는 질문이 있다. ‘대통령 권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마음먹은 것들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저는 ‘대통령은 그럴 힘이 없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고 답해 준다. 지금 대통령은 과거 박정희·전두환 시절과 분명히 다르다. 행정부처에서 법안 하나 만드는 것도 국회에서 통과하기까지 평균 35~36개월 걸린다. 인수위 때 시작하면 레임덕이 다 돼서야 통과하는 것이다. 통과되지 못하는 것도 많다. 이런데도 대통령을 할 자신이 있는지 묻는다. 대부분이 자신 있다고 답한다. 대통령은 권력으로 인해 얻는 고통이 너무 심하다. 이걸 후보들이 알아야 하는데, 윤 후보는 비교적 알고 있는 편이었다. 다행이었다. 스스로 전·현직 대통령 수사를 하면서, 대통령 권력의 한계를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이 정도 알고 있으면 최소한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총칼이 아니라 마이크를 들고 국민 앞에 호소할 수 있다고 봤다.”

반대로 김 위원장에게 윤 후보가 당부한 말은.

“우선 제가 자꾸 (선대위에) 안 들어가겠다고 하니, 들어와서 국정 경험을 자신과 국가를 위해 써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선대위에 안 들어가는 게 더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정말 중요한 전략이나 정책은 조직 밖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생각을 다듬을 여유가 있다. 선대위에 들어오면 일상적 운영에 치여 좋은 생각을 놓칠 수 있다. 밖에서 일하는 것이 제게 더 맞는다고 생각해 거절했는데, 후보가 ‘지금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합류하게 됐다.”

이재명 후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폭력적 심성이 있는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전제적(專制的·자기의 의사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판단을 한다. 강한 실행력 뒤에는 이러한 성향이 있다. 그리고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하다. 무엇이든 쉽게 내놓았다가 여론이 나쁘면 다시 집어넣는 것이 포퓰리스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권력으로 모두 재단하겠다는 국가주의와 포퓰리즘적 성향의 결합은 가장 불행한 조합이다. 독일과 러시아, 아르헨티나에서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되돌아보면 알지 않나. 나라가 불행해진다. 솔직히 이 후보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선대위 자리에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이낙연·정세균 후보만 선출됐어도 (국민의힘에) 굳이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 후보에겐 그런 성향이 없나. 그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아직 면면이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비교적 격의가 없다. 검찰 이미지 때문에 꽉 막혀 있고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격 없이 사람을 대한다. 뒤에서 꼼수를 부리지 않고 말하는데 대체로 투명하다. 그래서 때때로 실수도 나왔지만, 속 이야기를 뒤틀지 않는다. 그게 윤석열다움이다. 인내심도 크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쉽게 내놓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 이번 선대위 구성할 때도 자신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기다렸다. 결국 김종인 위원장이 합류하지 않았나.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검찰에만 있어서 사회 전체를 운영하는 데 여러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는데, 물론 그럴 수 있다. 저처럼 국정 중심에서 내리 5년을 있었던 사람도 사회가 변하면 바로 자신 없는 부분들이 생긴다. 인사를 통해 좋은 분들을 모시고 차차 보강해 나가면 된다. 경제 운용이나 사회정책에 대한 기본이 비교적 탄탄하다.”

윤 후보가 정치보복을 하진 않을까.

“제가 본 윤석열은 대통령 수사를 해본 사람이기에,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다시 그 쓰디쓴 악몽을 불러낼 수 있을까. 권력형 비리에 대해선 단호히 해야겠지만, 순수한 의미의 정치보복은 있을 수 없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세종시 잇는 균형발전 메가 공약 준비 중”

‘김병준표 정책’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아직 구체적으로는 밝힐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이 성장의 축이 돼야 하고, 성장의 축이 되려면 좀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규제를 완화해 모든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그 자유주의가 가져오는 차별과 불공정에 대해선 정부가 단호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와 정반대다. 정부가 없어야 할 곳, 즉 시장 규제나 개인의 자유권에 국가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 진짜 국가가 있어야 할 곳, 복지 등 사회정책 영역에선 여전히 개입이 약하다. 이젠 성장만 주장하는 보수는 없고, 분배만 주장하는 진보도 없다.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시장의 역동성을 더 강조하고 있고, 스웨덴을 비롯한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의 시장 자율성이 우리보다 더 높은 게 무얼 의미하겠나.”

일각에선 김종인 위원장과의 노선 충돌을 우려한다.

“지금 언론에선 ‘김종인 대 김병준’을 ‘국가주의 대 자유주의 갈등’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큰 차이가 없다. 보수와 진보가 수렴하는 시대다. 굳이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서로 대립하는 건 의미가 없다.”

‘세종시 설계자’다. ‘노무현 정신’이 담긴 지역균형발전 같은 메가 공약이 나오나.

“아직 이야기하긴 그렇지만 분명 그냥 지나가진 않을 것이다. 필요한 부분이다. 균형발전은 교육, 일자리, 부동산 모두와 연결돼 있다. 반드시 이와 관련한 큰 공약들을 내고 갈 것이다.”

지금의 권력구조와 국정운영 체계가 낡았다고 비판한다. 개헌을 말하는 건가.

“개헌을 꺼내면 모든 이슈를 개헌이 다 삼켜 버리기 때문에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그동안 개헌이 안 된 이유가 다 있다. 권력구조만이라도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고 꺼내 놓으면 금방 이것저것 다 나와 붙으면서 원포인트가 어렵게 된다. 실질적 개헌은 뒤로 가고 사회적 논쟁이 발생한다. 일단 지금은 개헌을 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야 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윤 후보는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주는 방안을 정치 개혁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면 그 총리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총리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각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다 잘못하면 당에서 책임을 지는 책임정치도 가능해진다. 이원집정부제 혹은 내각제 요소가 담기게 되고 연정도 가능한 구도가 된다. 경제정책은 국민의힘에서, 사회정책은 민주당에서 주로 맡아 정부 부처를 운영할 수도 있다. 정치적 합의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이런 고민을 먼저 해야지, 개헌부터 꺼내면 세상을 시끄럽게만 만든다.”

윤 후보부터 이른바 ‘3金(김병준·김종인·김한길) 지도부’까지 모두 반문으로 평가받는다. 왜 이런 구도가 나타났을까.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 첫 번째 원인이다. 다음으로는 우리 정당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과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가 지난 후 우리는 전통적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적이 없었다. 노무현은 기존 정치권과 치열하게 싸운 외톨이였고, 이명박은 기업인 이미지가 컸다. 박근혜도 전통적 정치인은 아니었다.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0선’ 후보들이 맞붙고 있다. 그만큼 우리 정당정치 자체가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여러 곡절을 겪었다. 계속해서 당 대표조차 외부인사로 채웠다. 이번엔 파격적으로 30대가 선출되기도 했다. 기존 당 운영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양당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 지금 진영논리가 워낙 강하다 보니, 상대편에 가까웠던 사람이 합류할 경우 파급력과 여론의 점유율이 더 높아진다. 이런 여러 요인이 몰려서 지금 같은 구도가 만들어졌다.”

윤 후보의 2030 지지율, 특히 여성 지지율이 부족한데.

“2030세대 여성들은 대체로 진보를 선호해 왔다. 진보가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왔고 우리 당은 그런 데 있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우리가 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본다. 이번 민주당의 ‘조동연 논란’에서도 보였듯, 민주당은 일단 사람을 앉히고 본다. 후보와의 충분한 논쟁과 토론,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고 임명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제가 ‘예쁜 브로치’라고 표현한 것도 조씨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의미였다. 우리는 적어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앉히진 않는다. 당장 지금 배석해 있는 청년보좌역(인터뷰에는 1989년생 장능인 청년보좌역이 배석했다)도 이 인터뷰 전에 모든 의견을 저와 나누고 실질적으로 일에 관여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유권자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한다.”

안철수·김동연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한 구상은.

“윤 후보의 특징이 앞으로 잘 나타나고 우리가 시대 변화에 걸맞은 정책들을 내놓으면, 전 박빙 승부가 아니라 크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문재인 정부,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이겼을 경우 들어설 정부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사람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좀 더 안정적으로 이길 수 있고 향후 국정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단일화는 할 수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

대선 후 어떠한 임명직·선출직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저도 제 나름의 행복추구권이 있다(웃음). 권력은 제게 항상 책임과 고통이었다. 국정에서 공직자가 된다는 게 한 번도 달콤하다거나 영광스럽다고 생각된 적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직을 제안했을 때 제가 전권을 다 달라고 했다. ‘제가 권한과 권력을 달라는 게 아니라 책임과 고통을 달라는 것입니다. 임기 13개월을 남겨 두고 이미 권력과 권한은 없어졌습니다. 남은 건 책임과 고통뿐인데, 제가 남은 기간 떠안을 테니 전권을 주십시오’라고 요구했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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