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김종인, ‘시한부 원톱’의 숙명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0 14:0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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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에 갇힌 우리 정치의 현실이 그를 독보적인 킹메이커로 키워
‘킹’이 무너져도 아무런 책임 지지 않는 한계

“아무리 자유주의에 심취했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이 자유주의 경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신봉하는 자유주의 때문에 놔두겠다? 그렇게 무책임한 얘기를 할 수 있나.”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12월6일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코로나19 난국으로 국민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데 무슨 자유주의 신봉이냐면서 이 말을 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자유주의에 심취’한 사람을 꼽으라면 평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을 인용해온 윤석열 후보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역설해온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담긴 그런 얘기를 눈치 보지 않고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국민의힘에서는 김종인 위원장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얘기가 돋보이는 것은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정당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짚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부동산 정책 같은 반시장적 정책들이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하지만, 코로나 민생 위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간섭 없는 자유경제만을 부르짖는 것은 국민의 고달픈 삶과 동떨어진 얘기임이 맞다. 진영에 갇힌 완고한 이념주의자들이 아니라면 그런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김종인을 가리켜 야권에서 선대위 사령탑으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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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왼쪽)이 12월7일 중앙선대위 1차 회의에서 발언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젊은 정치인들보다 더 젊은 사고 보여주기도

결국은 전권을 달라는 김종인의 요구를 수용하며 윤석열이 우여곡절 끝에 그를 모셔왔다. ‘권력의 분산과 견제’를 말하며 여유를 부리던 윤 후보가, 김종인 없이는 선거를 치르기 어렵겠다는 절박한 판단을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톱이 된 김병준 위원장이 ‘예쁜 브로치’ 발언으로 설화에 휩싸였고, 이준석 당 대표는 윤 후보와의 갈등으로 돌연 잠적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심각한 난국이 조성되고 있지만 아무도 수습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윤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해 ‘골든크로스’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오던 상황에서 콩가루 집안이 되고 있는 위기를 맞자 김종인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어쩌면 김종인 위원장도 ‘어디 한번 너희들끼리 해보라’는 마음으로 그런 상황을 내다보았을지 모르지만, 그 시점은 생각보다도 곧바로 찾아왔다. 김 위원장이 원톱이 되어 선거를 이끌지 않으면 지금의 난국을 돌파하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표의 파업이 윤석열-이준석 화해와 김종인의 합류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게 해준 것일 수도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일단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면 김종인 위원장이 과연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 걸까. 80대 노정객에게 매달리는 야당의 모습을 보면서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김종인은 괴팍해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언제나 자신이 전권을 갖고 마음대로 하려는 독불장군식 김종인에게는 진즉부터 ‘짜르’(절대군주)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그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체 김종인에게 어떤 남다른 능력이 있길래 정치권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번번이 모셔 가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현재의 정치권이 갖지 못한 것들을 그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의 흐름과 선거판을 읽는 능력, 전략적 사고 능력, 의제 선점 능력에 조직 장악력에 이르기까지 큰 선거를 이끄는 데는 여러 면에서 최적화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이 여든이 넘었지만, 젊은 정치인들보다 더 젊은 사고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나이 많은 정치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정치 주역들이 겸연쩍어해야 할 일이다.

 

킹메이커의 힘은 킹의 탄생과 동시에 소멸

물론 2022년 대선을 앞두고 82세의 노정객이 유일무이(唯一無二)의 킹메이커로 또다시 야권에 소환된 장면을 정상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 인물이 여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듭해서 그 역할을 하는 상황은, 대체 그 많은 정치인은 무엇을 했길래 자신들의 힘으로 해내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낳게 된다. 사실 김 위원장이 던지는 화두들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기상천외한 것들은 전혀 아니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약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 중도의 방향을 지향해야 하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모두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김종인 위원장이 이끌어야만 그러한 방향 찾기가 가능한 현실은 우리 정치가 그만큼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어쩌면 상식적일 수도 있는 그런 길을 왜 김종인 없이는 실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국민의힘뿐 아니라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민주당 역시 돌아볼 일이다. 그때 민주당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없었다면 무너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제 와서 김종인에게 매달리는 야당을 비웃는 민주당의 모습도 사실은 ‘내로남불’이다. 김종인을 독보적인 킹메이커로 키워놓은 것은 진영의 정치에 갇혀 중도의 길을 잃은 우리 정치의 현실이었다.

김종인의 실력은 그동안의 실적이 입증해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길 수 있는 선거에만 뛰어들었던 것이지 그의 실력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박근혜가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 것도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인혁당 사과’까지 하게 만든 김종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능했던 것도 김종인이 20대 총선에서 최후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무망했던 오세훈을 서울시장으로 만든 데도 김종인의 전략적 뚝심이 결정적이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모든 성과들에도 김종인의 한계는 분명하다. 킹메이커는 정작 킹이 아니라는 자명한 이치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사에는 많은 킹메이커가 명멸해 왔다. 킹메이커의 힘은 킹의 탄생과 동시에 소멸한다는 정치의 법칙은 김 위원장에게도 어쩔 도리 없는 숙명이다. 실제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로부터 ‘팽’당했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결별하게 되었다. 지금의 문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만든 문 대통령이 진영의 대통령으로 왜소화되어 민심이 등 돌리는 상황이 초래되었어도 이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보증수표가 부도가 나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우리가 보아온 킹메이커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만약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김종인이 말한 ‘국민에게 약속한 것 지키는 정직한 대통령’이 될지는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다. 김종인은 윤석열이 아니기에, 만약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다. 결국, 킹메이커가 아닌 후보 자신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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