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이 없는 ‘이재명의 민주당’
  •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1 10:0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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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 개인기에만 의존…野 ‘삼각편대 가동’과 비교돼
“자기 정치 하는 송 대표 탓에 대선 필패” 당내 비판도

“이재명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원톱’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제기되고 있다. 비대한 선거대책위원회를 전면 쇄신하고 기동력을 높였지만, 여전히 ‘백업’ 없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개인기’에 의존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이준석 당 대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등 이른바 ‘삼각편대’를 가동해 전방위적인 메시지를 가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셈이다. 오죽하면 이 후보가 직접 당 소속 의원들에게 “169석 여당 국회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드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친전을 보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당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현역의원들 역시 절실함이 없다는 이 후보의 절박한 호소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에펨코리아
이재명 후보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있다.ⓒ에펨코리아

일정과 메시지 빽빽해 ‘백업’ 필요성 제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12월7일 저녁 예정됐던 이재명 후보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재명이네 마을 커피숍 댓글잼 브이로그’ 일정을 갑작스럽게 취소했다. 이 후보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시민들의 글을 읽고 직접 댓글을 달면서 소통할 계획이었다. 권혁기 선대위 공보단 부단장은 일정 취소와 관련해 “일정이 너무 많다는 선대위 내부 논의 결과에 따라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후보는 전날 이미 ‘서울대 금융경제 세미나 초청 강연’ ‘주택청약 사각지대 강연’ ‘전국 시·도당위원장단 연석회의’ 등 3개 일정을 진행했다.

실제로 이 후보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선언한 뒤 하루 평균 4~5건의 일정을 소화하며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매주 타는 민생버스(매타버스)’로 전국을 돌며 주말 강행군도 이어가고 있다. 이 후보 옆을 지키는 실무자들도 입을 모아 “일정과 메시지 강약 조절과 전략이 부재한 채 후보 혼자 그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수도권 한 의원은 “선대위 개편을 통해 후보의 ‘원톱’을 부각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원팀’의 시너지는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은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는 동시에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는 장점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잦은 메시지가 집중도를 떨어트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90여 일이나 남은 대선 일정을 고려해 ‘백업’의 필요성이 당 내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을 봐도 백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후보는 12월3일 전주의 한 가맥집에서 청년들에게 쓴소리를 듣는 일정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힘을 얻는다는 취지의 말을 하던 도중 “그래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 하시다가 힘들 때 대구 서문시장을 갔다는 것 아닌가. 거기 가면 힘이 쫙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정은 유튜브로 생중계됐고, 지금도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아무런 뉘우침도 반성도 없고 국민에 대한 사과도 안 하는 상황”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반대한 이 후보가 보수 표심을 고려해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을 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후보는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며 “‘표 얻으려고 존경하는 척하는 것 아니냐’ 하는데 전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집단지성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SNS 등에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등 부정적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오른쪽)이 이재명 선대위에 참여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선대위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뉴스1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오른쪽)이 이재명 선대위에 참여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선대위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뉴스1

‘이해찬·양정철 등판설’에 “중도 확장 제약”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재명 후보 개인기로만 선거를 끌고 갈 수는 없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우리 의원들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여러분의 동지 이재명’이란 이름으로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저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다” “남은 90일, 의원님께서 이재명이 돼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의원들이 열심히 움직이지 않아 당원과 지지자들이 갈피를 못 잡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선 “선대위 자리를 내려놓고 ‘하방’하라고 해서 지역구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데, 무엇을 더 하란 건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후보가 공중전, 현역의원들이 지상전을 펼치겠다는 구상이 맞아떨어지지 않은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실에서 공중전을 도울 인재 군단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이 후보의 공중전 백업을 위해 일각에서는 이해찬 전 대표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판설도 나오지만 이에 대해 선대위 핵심 관계자들은 일축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중도 확장 역량이 있다면, 이해찬·양정철 등판은 오히려 중도에서 더 멀어지는 악수라는 지적이다. 선대위 관계자는 이해찬·양정철 등판설과 관련해 “그 저의가 민주당의 대선 패배를 기대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총괄선대위원장을 비워두고 있는 것도 이재명 후보의 일정 부담을 늘리고 메시지 집중도를 떨어트리는 이유로 꼽힌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 후보가 당 대표인 송영길 상임선대위원장을 배려해 총괄선대위원장을 세우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송 대표가 그만큼 이 후보의 백업 역할을 충분히 해주리라는 기대감도 반영된 선대위 인선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당내에서 송 대표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수도권 한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 같은 당내 ‘어른’을 모셔서 그에게 전권을 주고 당 대표는 말 그대로 ‘하방’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원팀 시너지·중도 확장 열쇠는 ‘이낙연’ 등판

결국 눈길은 이낙연 전 대표에게 옮겨지고 있다. 원팀 시너지와 중도 확장 키를 쥐고 있는 이 전 대표가 이 후보 혼자 뛰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후보의 전남·광주 매타버스 일정 중 이 전 대표가 등판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당 안팎에 있었지만, 막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이 전 대표가 아직 경선 앙금을 씻어내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낙연 전 대표 측 속사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이 전 대표는 전남·광주 매타버스 일정에 대해 문자 하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 대표나 지도부 일원 누구도 직접 찾아 일정 조율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송 대표가 “존경하는 총리님, 대표님, 후보님, 고문님”이라고 문자를 보내 이 전 대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니 당내 사정에 밝은 여권 인사는 “송영길 대표가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간 지지율 골든크로스를 자신의 공으로 삼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치게 크다”며 “이낙연 전 대표 등판을 자꾸 미뤄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해당 인사는 “성급하게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30대 여성 워킹맘’이라는 이미지를 좇아 당 대표와 동급의 상임선대위원장에 임명했다가 역풍을 맞는 식의 자기 정치를 하다가는 대선 필패로 가게 될 것”이라며 송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지난 총선에서 이 전 대표가 선대본부장을 맡아 180석 대승을 거뒀다는 점을 당 지도부가 자각하고 삼고초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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