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버스’,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9 14: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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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측, 적자 누적에 울산공장 접고 베트남으로 이전 강행
매물로 내놨지만 매각 불투명…노조 “파는 시늉만 한다” 반발

울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자일대우상용차(대우버스)가 매물로 나온 지 7개월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고 있다. 회사 측은 버스를 만들수록 적자가 누적돼 불가피한 선택이며, 그 원인을 노조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베트남 이전을 목표로 울산공장을 파는 시늉만 한다고 반발했다. 회사가 매각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건 팔 생각이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대우버스는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청산 절차를 거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대우버스는 베트남으로 옮겨갈 것으로 자동차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공장 폐쇄와 집단해고로 내홍을 겪던 대우버스 사태가 지난 6월15일 회사 측의 정리해고 철회로 일단락됐다. 지난해 10월4일 공장 문을 닫은 이후 267일,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407일 만에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했다. 그러나 정상화 기대도 그때뿐, 노동자들은 다시 허탈감에 빠졌다. 현재 조합원 절반만 출근하고, 나머지 절반은 순환휴직 상태다. 일감 부족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대우버스 경영진인 영안모자그룹이 울산공장 생산량을 고의로 줄이는 방식으로 청산을 유도하면서 베트남 이전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제공
울산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이 5월13일 울산시청 앞에서 대우버스 정상화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시가 자일대우상용차 매각을 돕고, 폐업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금속노조 제공

노조 “팔 생각이 없는 건지, 안 팔리는 건지...”

2000년대 초까지 국내 버스 시장의 최강자였던 대우버스가 몰락 위기에 처했다. 대우버스 전신인 대우자동차는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공중분해 수순을 밟았다. 승용차 부문은 미국 GM그룹에, 트럭은 인도 타타그룹에 넘어갔다. 그리고 버스 부문은 2003년 영안모자그룹에 팔렸다. 매각금액은 1400억원. 영안모자그룹은 지분 정리 등을 거쳐 2018년 자일대우상용차로 사명을 변경했다.

백성학 영안모자그룹 회장은 2005년 한국형 시내 저상버스 ‘BC211M’ 발표회에서 “1만 대 수준인 대우버스의 연간 생산량을 2010년까지 2만2000대로 늘리고, 매출액을 10억 달러로 끌어올려 1위 버스업체로 도약하겠다”고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우버스는 2006년 4500대 판매 실적을 정점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이후 하락세는 계속돼 2019년 19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급기야 2020년 697대 판매로 울산공장 생산가능물량 6200대의 11% 수준에 그쳤다.

대우버스의 실적 하락 원인은 낮은 품질과 서비스 문제로 지적됐다. 울산의 한 버스회사 대표는 “대우버스가 최고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함이 많고, AS 받기도 어려워 기사들이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대우버스가 제작·판매한 4개 차종 1368대가 연료계통 문제로 화재 발생 가능성이 확인돼 시정조치(리콜)를 한다고 밝혔다. 앞서 2014년에 대우버스 43대를 구입한 한 관광업체는 버스가 시동이 꺼지는 등 결함이 발견됐다며 대우버스 울산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판매 부진은 적자 누적으로 이어졌다. 올해 대우버스가 작성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영안모자그룹이 대우버스를 인수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1635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울산공장 폐쇄와 베트남으로의 이전을 선언하기 직전에 만들어진 이 문건에는 “적자 원인은 노조 문제”라고 적시했다. 노조는 회사 경영 실패를 노조 탓으로 돌린다며 강하게 맞섰다.   

결국 대우버스는 지난해 5월 울산공장을 폐쇄했다. 베트남 공장을 주력 생산기지로 육성하고, 베트남에서 만든 버스를 한국으로 수입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울산공장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과 8월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10월4일 조합원의 99%인 356명을 정리해고했다. 대우버스 노조는 “백성학 회장은 가진 자가 더 가지기 위해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며 “적은 인건비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즉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지난해 12월 울산지방노동위원회와 올해 4월 중앙노동위원회는 모두 ‘회사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 부담을 느낀 대우버스는 울산공장 ‘폐쇄’에서 ‘매각’으로 계획을 선회했다. 노사는 원활한 매각을 위해 지난 6월11일 정리해고 철회와 복직에 합의했다. 1차 목표 매각 기한은 올해 12월말, 2차 매각은 내년 6월말까지로 정했다.

노조는 새 주인을 찾기 위해 많은 분야를 양보했다. 해고기간(9개월) 임금 중 6개월분은 받지 않기로 했다. 또 매각 성사까지 기본급도 10% 삭감하기로 합의했다. 노조 입장에선 내줄 수 있는 건 다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산보다는 매각이 노동자들의 유일한 살길이라고 판단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남아있었다. 박재우 대우버스 노조지회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회사가 합리적인 금액보다 더 높게 불러 매각이 잘 추진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매각 불발 시 회사는 다시 청산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 관계자는 12월14일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한두 곳에서 관심을 가졌으나 불발된 걸로 안다”며 “영안모자그룹이 대우버스를 팔 생각이 없는지, 안 팔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일대우상용차 울산공장 전경ⓒ자일대우상용차 제공

성장 가능성 낮고 부채 많아 매각에 ‘회의적’

자동차 업계도 회의적인 시각이다. 경쟁력이 떨어져 성장 가능성도 낮고, 부채도 많은 대우버스를 탐낼 업체가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견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우버스의 부채비율은 5129.96%에 달한다. 

대우버스는 1955년 신진공업사로 출발해 지금의 자일대우상용차까지 65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긴 시간을 거치며 수차례 주인과 상호가 바뀌었지만, 버스 생산에만 주력해 자동차기업으로서의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다. 그만큼 대우버스의 기초체력이 탄탄하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기버스 자체 개발 능력 및 자가 인증 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완성차업체는 대우버스와 현대자동차 두 곳 정도다. 업계 일각에서는 “비록 영안모자그룹에 인수된 이후 실적이 추락했지만,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 다시 날개를 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조는 “영안모자그룹이 울산공장의 베트남 이전을 염두에 두고 팔 생각도 없이 파는 시늉만 하고 있는 이상 매각은 불가능하다”며 “노동자도 구제하고 지역경제도 살리려면 울산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은 사 측인 대우버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울산공장과 부천 본사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담당자를 찾아 답변을 하도록 전해 주겠다”는 말이 전부였다. 대우버스의 존속 여부는 매각뿐이다.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노동자들은 초조하지만, 영안모자그룹은 느긋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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