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정책, 이게 최선입니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3 10: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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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상승률 2011년 이후 최고치…“유신 시절의 물가 대책으론 한계” 지적 나와

물가 상승률이 심상치 않다.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최고치이자 201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3.7%를 기록했다. 급격히 오른 집값까지 고려하면 국민의 체감 물가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9년 만에 최고치인 6.8% 급등했다. 유로존의 11월 물가 상승률도 4.9%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9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고물가 현상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따른 비용 상승이 주된 원인이다. 여기에 유가 인상과 천연가스 수급 문제로 인한 에너지 쇼크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특징은 물가 상승이 일부 품목에 좌우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축산물, 원자재, 유가 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정부가 내년도 물가 상승률 관리 목표치를 기존 1.4%에서 2%대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12월14 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고물가 지속

특히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전년 동월과 비교해 35.5% 올랐다. 정부로서는 내년 초에 있을 대선 때문에라도 적극적인 물가 관리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외변수가 많다 보니 정책 수단이 많지 않다. 사실 물가 관리는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보다 물가를 잡는 게 더 어렵다. 성장률은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통해 돈을 풀면 일정 부분 수치를 높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물가에는 대외변수가 워낙 많은 데다 심리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흔히 물가정책은 종합적 물가정책과 개별적 물가정책으로 나눈다. 총수요 관리나 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량의 공급 조절 같은 게 종합적인 물가정책이라면, 개별 물가정책은 생활필수품이나 공공요금의 개별적인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종합적인 물가정책이 여의치 않다면 남는 방법은 개별 물가정책인 ‘품목별 가격 관리’뿐이다. 하지만 말이 가격 관리이지 실상은 규제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규제의 역사는 길다. 유신정권 시절에는 1975년 제정된 ‘물가안정법’이란 게 있었다. 쌀과 보리쌀, 연탄과 비료 가격의 통제뿐만 아니라 서비스 요금까지 규제하는 강력한 물가단속법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행정지도를 통해 ‘가격 중점 감시 품목’을 지정하고 감시와 관리로 생활물가를 안정시키려 했다. 행정지도는 물론 법령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지금도 관리물가(Administered prices)는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을 대상으로 추정 또는 편제한 가격지수를 지칭한다. 관리물가가 전체 소비자물가의 변동성을 줄여온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행정지도를 통한 개별적 품목별 가격 관리는 물가 안정에 큰 역할을 해왔다. 감시와 규제를 통해서든 아니든 물가가 안정되면 소비자의 편익은 증가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누리는 편익의 증가는 생산자 잉여 감소분을 상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산 측면에서의 비효율성이 누적된다는 게 문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후생손실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지나친 가격 조정이 추후 통제가 어려운 수준의 급격한 가격 변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도 유가 급등에 따른 원가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서울의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은 6년째 동결 중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도 2015년 4.7% 인상 이후 6년째 제자리다. 물가정책도 원칙적으로는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바탕 위에서 실현돼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법령에 기반하지 않은 행정지도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두 번째 경제부총리는 정재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었다. 1993년 12월21일 취임식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그는 규제 개혁과 가격 자유화를 천명했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당장은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겠지만 그 폐해가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온갖 후유증을 낳는다는 지론에서였다. 그의 취임 기자회견은 그동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물가 관리 정책의 대전환으로 받아들여져 주목을 받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정재석 부총리는 임기 1년을 못 채우고 1994년 10월4일 물러났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는 공공요금 동결과 가공식품 담합 모니터링을 물가 대책으로 내놓는다. 전기·가스 요금 동결과 함께 지하철·시내버스·택시 등 대중교통 요금과 상하수도 요금, 종량제 봉투 요금 등 지방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할 방침이라고 한다. 내년 설 명절을 대비해서는 관계부처 합동 대응팀을 만들고 분야별 물가 부처 책임제를 도입하며 지방자치단체들도 물가 종합상황실을 운영하도록 해서 배추, 무, 사과, 계란, 갈치, 고등어 등 16대 성수품에 쌀을 포함해 17개 품목을 중점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시장 관리인가, 규제인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도 가격은 결국 생산요소 비용인 임금과 이자, 지대에 이윤을 더해 결정된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은 국내외 수요와 공급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요인이 얽히면서 일어난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한계에 따른 구조적 모순에서 일어나는 고질병으로 볼 수도 있다. 진단과 처방이 다 어렵고 단시일 내 해결이 쉽지 않다. 관리 물가는 필요하다. 때로는 당장 조치가 필요한 일도 있기 마련이다. 농축수산물 등 안정적인 공급 시스템 구축이 미흡해 외부 충격에 취약한 품목들은 특히 일시적인 공급 확대 조치가 적절하다. 하지만 관리와 규제, 흔히 말하는 ‘지도’가 물가정책의 근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물가정책의 원칙은 이미 다 알려져 있다. 물가 상승이 초과수요 때문이라면 통화량의 적정 공급이 필요하고 재정금융 정책에 의한 총수요 관리도 해야 한다. 수입물가가 높다면 관세 인하와 환율 조정도 검토할 수 있다. 높은 유통 비용과 독과점적인 시장구조가 문제라면 경쟁 촉진을 통한 산업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원래 물가정책은 국민경제 전체 또는 산업구조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원칙에 충실한 물가 대책의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일 것이다. 정공법이 박수 받기는 어렵다. 효과는 즉시 나타나지 않고 힘은 더 든다. 하지만 이게 정상이다. 정부가 가격 감시라는 명분으로 시장을 관리하는 일을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유신 시절의 물가 대책을 마냥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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