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W1H’ 법칙으로 재계 新성장 물꼬 튼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2 07:3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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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회공헌활동은 ‘선택’ 아닌 ‘필수’
가치소비 늘어나면서 재계 사회공헌 트렌드도 변화

# 탐스슈즈는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한 신발 회사다.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창업자가 휴가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가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비포장길을 맨발로 걷는 아이가 적지 않았다. 이들이 토양의 기생충이나 상피병 등에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신발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업 모델은 ‘원포원(One for one)’이었다. 소비자가 한 켤레의 신발을 구입하면 회사가 한 켤레를 제3세계 어린이에게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탐스슈즈의 사업 모델에 감명받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탐스슈즈는 전 세계 70개국 이상, 100곳 이상의 파트너와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 스라이브마켓(Thrive Market)은 천연·유기농 식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60달러의 연회비만 내면 산지에서 직접 재배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최대 50%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배달 서비스를 정기 구독하는 회원만 올해 30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매출도 20만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창업 초기만 해도 이 회사는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50개 이상의 벤처캐피털(VC)에 투자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뒤늦게 이 회사가 운영하는 ‘스라이브 기부’ 프로그램이 알려졌다. 학생이나 퇴역 군인, 저소득층 가정에 무료 멤버십을 제공하는 사회공헌활동이었다. 데미 무어나 존 레전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투자가 이어졌다. 결국 VC들도 투자에 참여했고, 1억5000만 달러를 투자받아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듯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과거에는 기업의 최대 미덕이 ‘이익 추구’였다. 모로 가도 돈만 잘 벌고, 주주들에게 배당만 잘하면 좋은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가치소비에 익숙한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이런 추세가 바뀌었다. ‘이윤 추구’보다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기업이 최근 크게 늘어났다. 최근에는 사회공헌 개념이 확대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의 가치와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새로운 투자 지표가 됐기 때문이다.

현대 마케팅학의 창시자이자 세계 경영학의 구루(Guru·위대한 스승)로 평가받는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경영대) 석좌교수도 최근 시사저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비슷한 조언을 했다. 그는 “사회적 책임을 다한 기업들의 수익이 이윤만 추구한 기업보다 컸던 경우가 많았다”면서 “사회공헌활동이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자극해 이직률을 낮추고 우수한 직원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 내추럴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현장 실습 모습ⓒLG 제공
LG생활건강 내추럴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현장 실습 모습ⓒLG 제공

500대 기업 사회공헌 지출액 14.8%↑

그래서일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년 발간하는 ‘2020년 주요기업 사회적 가치 보고서’(옛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500대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액은 2조9928억원으로 전년 대비 14.8% 증가했다. 이 기간 기업이익 평균이 48.1% 급감했음에도 사회공헌 지출액은 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경련은 평가했다. 유환익 기업정책실장은 “사회공헌 비용을 지출하는 기업의 경우 단기적 경영 성과보다 고유의 철학과 비전, 사회적 이슈 여부에 더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들이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주요 기업들의 사회공헌 특징을 ‘5W1H’라고 설명했다. 사회공헌의 주체(Who), 시기(When), 대상(Whom), 내용(What), 방법(How), 목적(Why) 등에서 과거와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례로 LG전자는 현재 직원식당에서 ‘기부식단’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 가격대로 받되, 반찬을 줄여 원가를 낮추고, 절감된 반찬 금액만큼 기부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사내 기부문화 조성을 위해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임직원식당의 ‘기부 식단’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공헌활동을 할 수 있는 이른바 ‘When’이다.

GS칼텍스도 현재 사내에 ‘우리동네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가족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이를 위해 회사 측은 서울 지역을 6개 권역으로 분할했다. 각 권역별로 복지기관을 지정한 뒤, 가족과 함께 원하는 권역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면 되는 것이다.

현물 기부 대신 기업 노하우 전수나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What)과 기업이 보유한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법(How)도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양극화’ 해결을 위한 스마트스쿨을 2012년부터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삼성전자의 디바이스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교육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자사의 스마트 기기를 지원해 교육 격차를 없애도록 한 것이다. 환경에 따라 멘토링과 교육 콘텐츠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2019년까지 이 사회공헌활동의 수혜를 받은 어린이는 전 세계적으로 382만 명에 이른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이 창업이념이자 경영철학인 CJ제일제당 역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CJ제일제당이 가장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것이 식품사업의 근간이 되는 농가와의 상생이다. 단순히 농가를 통해 원료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원료 단계부터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아우른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종합미곡처리장이 대표적이다. 2019년 문을 연 이곳은 계약재배부터 수매, 가공, 선별 등 햇반 전용 쌀을 종합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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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의 동반성장 브랜드인 ‘즐거운동행’모습ⓒCJ 제공

현물 기부 대신 기업 노하우 전수 

CJ제일제당은 경쟁력 있는 협력사를 발굴해 필요한 자금과 역량, 판로 등도 지원하는 ‘즐거운동행’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협력업체는 기존의 저가형 떡류 제품에서 탈피해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부터는 ‘나눔냉장고’ 캠페인을 벌여 청년 1인 가구에 햇반과 볶음밥, 떡갈비 등을 지원하며 서울시 ‘착한 먹거리’ 지원사업에도 동참하고 있다.

NHN의 커머스 자회사인 NHN커머스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자상한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성공적인 온라인 판로 진출을 지원하고 축적해온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영세업체의 성장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재 NHN커머스는 온라인 쇼핑몰 구축 솔루션인 ‘샵바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관리나 마케팅 교육 등도 병행하고 있다.

임직원이 직접 기획을 주도하고(Who),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기존 목표를 넘어 사회문제 해결(Why)에 나선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2009년 출범한 포스코의 클린오션봉사단이 대표적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는 스쿠버다이빙 동호회가 있다. 이전부터 이 동호회들이 자체적으로 양식장 불가사리 제거나 해안·수중 쓰레기 제거 등의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클론오션봉사단은 이 동호회들을 통합한 조직이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가진 임직원들이 직접 바다에 잠수해 폐타이어나 폐플라스틱, 폐어구 등 해양 쓰레기 수거에 나서고 있다. 2013년부터는 전용 선박을 통해 대형 해양 폐기물 수거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11년간 수거한 해양 폐기물만 1000여 톤에 달한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클린오션봉사단은 올해 3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국민추천포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LG생활건강이 2018년부터 환경 전문 비영리단체(NGO)인 ‘환경재단’과 운영 중인 ‘내추럴 뷰티 크리에이터’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2030대에게 새로운 사회 진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맞춰 전체 커리큘럼의 70% 이상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라이브 커머스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라이브 커머스 전문가 교육’ 과정도 신설했다. 이 과정을 이수한 뷰티 크리에이터는 LG생활건강 제품들을 소개하는 라이브 커머스 판매자로 발탁돼 실제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오른쪽)은 매년 지역사회 환원 차원에서 서원밸리 자선 그린콘서트를 개최해 왔지만 올해는 코로 나 팬데믹으로 인해 기부금으로 대체됐다.ⓒ대보그룹 제공

효성·대보그룹이 지역사회에 ‘올인’하는 이유 

취약계층, 복지 사각지대는 물론이고 지역사회 전반으로 대상을 확대(Whom)하고 있는 점도 최근 기업들이 진행하는 사회공헌활동의 특징이다. 대보그룹은 기업 이윤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5월 서원밸리컨트리클럽에서 자선 그린콘서트를 개최해 왔다. 평소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골프장을 무료로 개방해 온 가족이 잔디에서 뛰놀고 자선바자회를 통한 기부에도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BTS와 워너원, 아이유, 걸스데이 등 한류 스타와 연예인들도 재능 기부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누적 관람객은 44만 명, 기부금은 5억원 규모다. 관람객이 증가하면서 2008년부터는 골프장 페어웨이를 주차장으로 개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행사가 2년 연속 열리지 못했다. 대신 대보그룹은 최등규 회장의 뜻에 따라 사랑의 휠체어 운동본부, 파주보육원, 파주시 등에 기부금 4170만원을 전달했다. 서원밸리 회원과 출연 연예인, 소속사 관계자들도 기부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효성 임직원들이 생필품 나눔 등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효성그룹 제공

서울 마포구에 본사를 둔 효성그룹도 현재 지역사회 취약계층에 생필품을 지원하는 ‘사랑의 쌀’과 ‘사랑의 김장김치’ 캠페인을 16년째 이어오고 있다. 마포구청을 통해 비대면으로 사랑의 쌀과 김장김치를 전달받은 가구는 올해만 각각 500가구, 1500가구에 이른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효성이 안정적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도 지역사회의 변함없는 지지 덕분”이라며 “효성 역시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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