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오징어 게임》·BTS, 국내에서는 임영웅이 두각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8 13: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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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호령한 K컬처 트로이카의 위엄…내년에도 열풍 이어갈까

2021년은 한국 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이 정점에 달한 한 해였다. 연초부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영국과 미국에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크게 화제가 됐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중에서 누군가를 콕 집어 시상할 때는 그 시대의 분위기가 작용하는 법인데, 올해 윤여정의 사례도 그랬다.

작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때부터 이어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기대가 윤여정의 수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윤여정이 출연한 《미나리》는 미국 영화지만 한국계 감독이 만든 한국계 이민자들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과의 연관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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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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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골든글로브마저 무릎 꿇린 《오징어 게임》

아카데미 시상식이 2020년 《기생충》에 작품상까지 주면서 찬사를 받았지만, 연기상 부문에선 아예 후보에서조차 배제했던 것 때문에 빈축을 샀었다. 아카데미 입장에선 그 연기상 부문의 오명에 대한 만회가 필요했고, 대중문화 영역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결국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한국 배우 윤여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여정의 연기상 수상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성과지만 동시에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윤여정의 시상으로 찬사를 받은 아카데미 시상식과는 달리 오명을 뒤집어쓴 곳이 글든글로브였다. 글든글로브는 《기생충》 때도 이 작품을 외국어 영화 부문으로만 분류해 빈축을 샀었는데, 《미나리》도 역시 외국어 작품상 후보로만 올렸을 뿐 윤여정 등을 배제해 비난을 받았다. 외신이 먼저 나서 비판 여론을 주도했다.

그랬던 골든글로브마저 입장을 바꾸게 만든 초대형 히트작이 올해 한국에서 나왔다.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12월13일(현지시간)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가 발표됐는데 이정재와 오영수가 각각 TV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BEST PERFORMANCE BY AN ACTOR IN A TELEVISION SERIES)과 남우조연상(BEST SUPPORTING ACTOR) 후보로 지명됐다. 심지어 《오징어 게임》은 TV 시리즈 부문 작품상(BEST TELEVISION SERIES) 후보로 지명되기까지 했다. 가장 핵심적인 부문 중 세 부문에 한국 드라마가 후보로 지명된 것이다. 골든글로브는 지금까지 비영어권 드라마를 TV 작품상 후보로 올린 적이 없다. 재작년, 작년까지만 해도 《기생충》이나 《미나리》 등 한국계 작품을 무시하다시피 했던 골든글로브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입장을 바꾸게 만들 정도로 한국 콘텐츠의 부상과 《오징어 게임》 열풍이 거셌다.

이런 신드롬은 우리에게도 놀랍고 서양인들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미국 NBC는 지난해 “《기생충》으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정점을 찍는 듯했으나 올해 《오징어 게임》으로 위상이 더 올라갔다”며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K팝 가수, 한국 배우, 한국 영화제작자, 한국 운동선수 등 한국 인재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기 때문에 미국의 모든 회사가 그들을 불러모으는 방법을 찾으려 혈안이 되고 있다” “한국 연예산업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전문가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다.

《기생충》이 작품성 면에서 서구의 인정을 받았다면 《오징어 게임》은 대중성 면에서 전 세계로부터 직접 인정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제3세계 작품이 비평적으로 주목받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는 넘기 힘든 장벽이었는데, 한국 콘텐츠가 그 장벽을 계속 넘어왔고 마침내 올해는 세계 최고 히트 드라마까지 배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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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이 놀라운 사건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오징어 게임》 직전에 《D.P.》가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고, 《오징어 게임》 이후엔 《마이 네임》이 인기를 끌더니 《지옥》이 다시 한번 대박을 터뜨렸다. 2000년대만 해도 우리 콘텐츠가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얻는 것에 우리 스스로 감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뉴스로 잘 다뤄지지도 않는다. 세계적 히트 수준은 돼야 뉴스가 될 정도로 우리 눈높이가 높아졌다. 그만큼 자신감도 높아졌다.

방탄소년단의 위상도 올해 놀라운 수준이었다. 작년의 성과도 대단했는데 올해는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대상 포함해 3관왕에 오른 것이다. 대상을 받았다는 건 모든 팝스타를 제쳤다는 뜻이다. 최고의 아이돌에서 최고의 팝스타로 격상된 순간이었다. 연말엔 2028년 LA올림픽 개막식이 예정된 소파이 스타디움을 4회에 걸쳐 매진시키며 총 21만 명을 동원하는 초대형 콘서트를 열었다.

이런 대형 콘서트는 팝스타의 상징이다. 과거엔 음반 판매량으로 스타성을 가늠했는데, 요즘엔 음원이나 유튜브 스트리밍 또는 거대 콘서트 투어가 스타성의 지표가 됐다. 방탄소년단은 소파이 스타디움을 4회 전체 매진시킨 첫 번째 가수가 됐고, 올해 한 장소에서 개최된 단독 콘서트로는 세계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방탄소년단이 당대 최고의 팝스타라는 점을 이런 수치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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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잇단 히트에 자신감 ‘정점’

한국에서 이렇게 세계적인 콘텐츠가 잇따라 나오자 급기야 옥스퍼드 영어사전 측에서 “한류는 전 세계적 현상” “한국 스타일은 이제 쿨함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는 골든글로브도 한국 콘텐츠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대중문화 산업 역량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도 올해 최고조에 달했다.

올해 또 다른 특기할 만한 현상은 국내에서 지속된 임영웅 신드롬이다.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올해 국내 유튜브 사용자들의 최다 시청 영상 1위에 올랐다. 지니 올해의 노래 1위로도 선정됐다. 과거 같았으면 해외에서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른 방탄소년단이 국내에서도 자동적으로 최고 가수로 군림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구권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고 국제적 인정에 목말랐기 때문에 해외에서의 성과에 대단히 민감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에서의 임영웅 신드롬이 세계 최고 스타 방탄소년단 신드롬 못지않다. 10월과 11월에 연속으로 임영웅이 국내 스타 브랜드 평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위는 방탄소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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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송년특집 《위아히어로 임영웅》의 한 장면ⓒKBS 제공

이렇게 국제적인 인기와 별개로 국내에서 독자적인 스타덤이 형성되는 것은 대중문화 산업이 발달하고 자신감이 있는 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선 세계적 팝스타들과 별개로 자국 내 컨트리 스타들이 위상을 지켜 나간다. 우리나라도 국제 스타와 국내 스타가 함께 공존하는 좀 더 다변화된, 풍성한 시장이 된 셈이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매년 상상을 초월해 왔는데 내년에도 상상 이상의 사건이 터질 것인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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