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패스’ 없는 ‘코로나 3년 차’ 김주영 대리의 하루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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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력으로 접종 미뤘지만 방역 패스로 사회적 고립”
모임 및 협력사 미팅 불가 소식에 백신 접종 결정

정부가 코로나19 방역망을 강화하면서 ‘방역 패스’는 일종의 ‘통행‧입장권’이 됐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철저히 혼자가 돼야 한다. 식당이나 카페에 지인과 갈 수 없고 모임에도 참가할 수 없다. 백신 미접종자가 늘면 감염이 폭증할 수 있고 중증화율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연 ‘방역 패스’ 없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어떤 상황을 마주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지난 3일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마치고 2차 접종을 앞둔 직장인 김주영씨(27‧가명)를 만나 그의 하루를 재구성해 봤다.

'방역패스 의무화' 둘째날인 14일 점심시간 시민들이 QR체크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역패스 의무화’ 둘째날인 지난 14일 점심시간에 시민들이 QR체크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장병 가족력에 미루게 된 백신 접종

김씨는 4년 차 직장인이다. 2018년 취직하고 이듬해 말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 절반 가까이를 코로나와 함께한 셈이다. 지난해 여름 회사는 코로나 하루 확진자가 300명에 육박하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몇 달의 재택근무와 단축 근무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면 나아지겠지’ ‘내년이면 괜찮아겠지’를 반복했지만, 상황은 되레 악화했다.

“처음에는 부서별로 재택근무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죠.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거예요. 회사도 지쳤는지 지금은 정상 근무로 다시 돌아왔어요.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오히려 늘었는데 말이죠.”

그러는 사이 희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됐다는 소식이었다. 얀센, 화이자, 모더나 3가지 종류의 백신 선택지가 있었다. 가장 먼저 김씨의 남자친구가 백신을 접종했다. 군필자에게 우선 접종권이 부여된 얀센이었다. 그런데 그의 남자친구는 백신을 접종하고 다음 날 오한과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36시간이 지난 뒤 증상이 호전됐지만, 김씨는 그제야 백신 휴가 필요성을 알게 됐다.

김씨 역시 백신을 맞으려 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자가 증가하면서 같이 늘어나는 후유증 관련 뉴스, 부작용 사례자들의 이야기가 발목을 잡았다. 그 중 김씨의 걱정을 키운 건 접종 후 심장마비와 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사례였다. 김씨는 건강검진에서 3년 연속 심전도 이상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정밀검진을 받았으나 큰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관련 기저질환을 앓았기에 김씨는 건강에 민감했다. 그런 김씨에게 ‘백신 포비아(공포증)’는 루머로만 치부하기엔 현실하는 공포였다.

“저도 당연히 백신을 맞고 싶었어요. 그런데 불안하더라고요. 코로나19도 무섭지만 걸리면 바로 죽는 병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심장과 혈관 관련 질환을 앓으셨기 때문에, 코로나19 부작용이 더 큰 공포로 다가왔어요. 가족력이 있는 분들은 공감하실 거예요. 단지 진단받은 병이 없으니까 백신을 맞지 않을 핑계가 없었죠.”

12월18일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역 패스’ 도입에 사라진 선택권

김씨는 그렇게 백신 없이 여름을 보냈다. 백신을 맞지 않는 대신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을 삼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는 사이 주변 지인들은 하나, 둘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뉴스에서는 국내 성인 백신 접종률이 60%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를 발표했다. 길거리와 술집에 사람이 붐비기 시작했다. 2차 백신 접종까지 완료한 동료는 해외 여행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루 확진자가 수천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지난해만 해도 재택근무를 시작했어야 하는 확진자 수지만, 회사는 사내 마스크 착용만 강조했다. 김씨의 일상을 바꾼 건 코로나19가 아니었다. 정부가 ‘방역 패스’를 강제하면서 김씨는 다시금 백신 포비아에 직면해야 했다.

“누군가는 백신을 맞지 않는 게 이기적이라고 탓할지도 몰라요.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죠. 저는 제 건강 하나를 위해 백신 접종을 미룬 셈이니까요. 욕을 먹더라도, 그 정도 결정권은 저에게 있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백신 패스가 도입되니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겠더라고요.”

김씨는 지난 3일 화이자 1차 접종을 했다. 백신 접종 전 심장전문병원을 내원해 다시금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상담을 받았다. 역시 심전도 이상 결과가 나왔지만 의사는 “너무 염려하지 말고 백신을 맞으라”며 김씨를 달랬다. 그러면서 “혹 심장이 너무 빨리 뛰기 시작하면 바로 응급실을 찾으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김씨는 1차 접종 후 근육통 외에는 이상이 없었다. 2차 접종은 오는 24일로 예정돼 있다.

김씨는 아직 ‘백신 미접종자’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 점심에 동료와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을 수 없다. 그 대신 사내에서 배달을 시켜 팀원들과 같이 밥을 먹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예약해놨던 와인바는 취소했다. 그 대신 대형 쇼핑몰은 갈 수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외식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성탄절 교회 예배는 예외라고 한다. 김씨는 혼란스럽다. 2차 접종을 하면 ‘방역 패스’를 손에 쥐고 사회적 지탄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부스터샷이 이어지는 사이 행여 모를 부작용이 발생할까 아직도 그는 불안하다고 했다.

“제게 선택권은 없어요. 백신은 이제 필수가 됐잖아요. 회사 생활을 하려면 미팅도 나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아직 불안해요. 백신 후유증은 정말 극소수인건지, 그 극소수가 내가 되면 어떡하지 생각이 많아요. 바람이 있다면 방역 패스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줄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새해 소원도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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