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의 시행착오와 성장통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5 13: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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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같은 예능’과 ‘넷플릭스 플렉스’의 엇박자 드러낸 《먹보와 털보》

《무한도전》에 이어 《놀면 뭐하니?》까지 트렌디한 예능으로 스타 PD로서의 독보적 위상을 얻은 김태호 PD가 이제 MBC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최근 MBC와 공조해 내놓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먹보와 털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2021년을 마지막으로 MBC를 퇴사해 새로운 도전의 길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김태호 PD였다. 그래서였을까. 김태호 PD는 《먹보와 털보》를 넷플릭스에 처음 도전하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20년을 다닌, 사랑하는 MBC에서 마지막 기억을 남겨준 프로그램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로도 《먹보와 털보》는 그간 그가 MBC에서 해온 《무한도전》이나 《놀면 뭐하니?》의 잔상들을 여러 군데서 드러낸다.

넷플릭스 《먹보와 털보》의 한 장면ⓒ넷플릭스
넷플릭스 《먹보와 털보》의 한 장면ⓒ넷플릭스

넷플릭스 플렉스가 만든 화려함에 대한 불편함

일단 출연진으로 세워진 비와 노홍철이 그렇다. 비는 《놀면 뭐하니?》가 최고 정점을 찍었던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유재석, 이효리와 함께 출연해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노홍철 역시 《무한도전》 시절부터 김태호 PD가 지금 같은 리얼리티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능인으로 꼽았던 인물이다. 노홍철은 《무한도전》이 종영한 후 1년간 휴지기를 거쳐 돌아온 김태호 PD가 시도했던 《같이 펀딩》에도 출연했다. 게다가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환불원정대로 인연이 깊은 이효리가 첫 회 ‘제주 여행’에 남편 이상순과 함께 출연한다.

이상순은 《먹보와 털보》의 음악감독으로 방송 중 비와 노홍철이 멋진 풍광 속에서 “상순이 형, 뮤직 큐!”를 외칠 때마다 음악을 채워주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악감독이 따로 세워진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지만, 그걸 다른 인물도 아닌 이상순이 맡았다는 건 그만큼 김태호 PD도 그 프로그램의 색깔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먹보와 털보》가 아주 색다른 예능 도전을 보여준다기보다 여행과 먹방 같은 그간 지상파에서도 익숙한 예능을 보여준다는 점도 김태호 PD가 이 프로그램을 ‘MBC에서 마지막 기억을 남겨준 프로그램’이라 말한 이유처럼 보인다. 콘셉트는 김태호 PD의 예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순하다. 먹보인 비와 털보인 노홍철이 바이크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멋진 풍광을 즐기고 지역의 맛집을 찾거나 특산물로 요리해 먹는 것이 그것이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지만 김태호 PD는 이 빈 도화지 같은 단순함을 가져와 그 위에 그간 지상파에서는 하지 못했던 ‘아트 워크(Art work)’를 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화려한 자막이나 드론 및 러시안 암 촬영으로 달리는 바이크를 다이내믹하고 스피디하게 잡아내는 영상들, 게다가 디자인이라 해도 될 법한 알록달록한 색감을 느끼게 하는 톤 앤 매너는 지상파 예능에서는 좀체 보지 못했던 하나의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왜 예능도 작품이 되면 안 되냐”고 줄곧 주장해 왔던 김태호 PD의 열망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먹보와 털보》는 김태호 PD의 예술적 욕망이 더해져, 저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들을 연출해 낸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의식한 듯 욕심 가득한 영상 연출은 아마도 해외에서는 한국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해변에서 달리는 말과 함께 바이크를 타고, 제주도의 유채꽃이 만발한 도로를 한없이 달려가며, 암벽등반을 하는 이들을 보여주는 드론 카메라가 절벽 꼭대기까지 쭉 타고 오르다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그런 광경 속에 포착된 풍광들은 한국인인 우리가 봐도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비와 노홍철이 전국 각지에서 먹는 음식들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제주도에서 해 먹는 갖가지 전복요리들로 채워진 만찬과 부산에서 독도새우를 한 바구니 가득 가져와 말 그대로 플렉스하며 먹는 광경은 보는 이들을 부럽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화려함이 어딘가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이질감을 주고, 때론 불편한 정서까지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에서 회당 6억원씩 제작비를 쏴줬기 때문에 가능한 그런 ‘플렉스’는 통상 우리네 예능이 지향하던 ‘서민 정서’와는 사뭇 괴리감을 주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여행이라는 탈일상의 시간이기는 하지만 20만원씩 하는 자연산 독도새우 특대를 두 번씩 시켜 마음껏 플렉스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긴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에 돈으로 플렉스하는 그런 광경을 서민들이 원할 리 없다. 서민들에게 더더욱 필요한 건 정서적 포만감일 테니 말이다.

ⓒMBC 제공
김태호 PDⓒMBC 제공

드라마는 되는데 예능은 안 된다?

게다가 첫 넷플릭스 출연이라는 사실에 들뜬 노홍철이 시도 때도 없이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를 외치고, 그 광경을 재미나 웃음의 요소인 양 계속 집어넣은 부분은 이런 정서적 괴리감을 더더욱 크게 만든다. 비가 “사대주의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대목에서 《먹보와 털보》를 통해 제작비가 좀 들어가더라도 완성도 높은 작품 같은 예능을 하려던 김태호 PD의 의도는 엉뚱하게도 대자본이 들어가 ‘넷플릭스 플렉스’를 하고 있는 모습처럼 비친다. 왜 이런 엇박자가 만들어진 걸까.

사실 노홍철이 제주도의 한 유명한 스테이크집에 자신이 연예인임을 밝히고 어려운 예약을 해내는 광경은 《먹보와 털보》가 가진 문제들의 원인을 잘 보여주는 면이 있다. 물론 그것이 편집 과정에서 전후 사정이 잘려 야기된 해프닝이라고 제작진이 밝혔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밑바닥에 깔린 생각이다.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 정도 수위도, 표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실제로 드라마의 경우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그간 지상파나 케이블보다 훨씬 자극적인 소재나 높은 수위들을 담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던 게 사실이다. 글로벌한 열풍을 일으킨 《킹덤》 《D.P.》 《오징어 게임》 《지옥》 같은 작품들이 대부분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는 볼 수 없던 소재와 수위를 담았지만, 이에 대한 정서적 반감은 없었다. 그렇다면 예능은 어떨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리얼리티쇼화되고 있는 점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 특성상 허구의 세계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지만, 리얼리티 예능은 현실을 소재로 끌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방송에 나간 어떤 내용들은 현실과 마찰을 일으킨다. 노홍철의 예약 해프닝은 이 부분이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고가의 바이크를 타고 전국을 돌며 꽤 비싼 음식들을 마음껏 먹고 즐기는 《먹보와 털보》의 장면도 그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대중이 할 수 없는 것들을 대리해 줌으로써 어떤 위로를 주겠다는 의도로 마련된 프로젝트지만, 보여지는 저들의 현실과 서민들의 현실 사이의 괴리들은 즐거움보다는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이제 막 지상파에서 벗어나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도전에 나서는 김태호 PD의 시행착오이자 성장통으로 보인다. 로컬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동시에 글로벌한 공감대를 얻어가야 하는 글로벌 OTT의 특성을 찾으려 했지만, 로컬의 정서까지 보듬어야 하는 예능의 또 다른 숙제가 도전 과제로 제시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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