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메르켈’의 독일, 여기저기서 신호등 깜빡깜빡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6 11:00
  • 호수 16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건·식품농무 장관, 느슨한 방역·물가 인상으로 국민 반발 초래
녹색당 출신 외무장관, 중국과 인권·환경 마찰

독일 총선은 지난해 9월말에 시행되었지만 ‘포스트 메르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는 2개월 넘게 걸렸다. 선거 직후부터 예상되었던 ‘신호등 연정’(사민당·녹색당·자민당)은 지난 12월8월 연방하원 동의를 얻었고, 이어 신임 총리 올라프 숄츠를 중심으로 한 새 내각이 발표되었다. 그 결과, 총 16개 연방장관직 중 내무부·노동부·국방부·보건부·개발부·주거건설부와 총리실장은 사민당이, 경제기후부·외무부·식품농무부·환경부·가족부는 녹색당이, 그리고 재무부·법무부·디지털교통부·교육부는 자민당이 각각 나눠 갖기로 했다.

‘중도 우파’ 기민·기사련의 메르켈 정부를 누르고 정권교체를 이룬 ‘중도 좌파’ 사민당의 신호등 연정 실험은 성공할까. 좌파 녹색당과 우파 자민당의 동거는 가능할까. 출범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독일 사회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3명의 장관을 통해 ‘포스트 메르켈’ 시대의 독일을 들여다본다.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운데),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왼쪽),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 겸 경제기후변화에 너지부 장관(오른쪽)이 2021년 12월7일 베를린에서 연정 합의서를 들고 있다.ⓒAP 연합

환경 문제 못지않게 생활비 상승에 예민해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보건 및 복지 관련 부처가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다. 독일도 다르지 않다. 독일연방 보건부 장관 카를 라우터바흐는 사민당 소속의 건강 및 보건 전문가로서 코로나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언론에 등장하며 항상 강경한 정책을 옹호해 왔다. 특히 코로나19가 독일에 퍼지기 시작할 시점에는 한국의 코로나 대응책을 예로 들며 이를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던 인물로 유명했다. 한때 하루 최고 사망자가 1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세우는 등 다소 지나친 과장을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고 백신 접종에도 2021년 가을에 독일이 역대 최고 하루 확진자 수를 경신하는 상황이 오면서 ‘지나치게 비관적인’ 라우터바흐를 연방 보건부 장관으로 원하는 국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전 보건부 장관 옌스 슈판이 건강이나 보건과는 무관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국민은 좀 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원했고, 현재 정치권에 있는 인물 중 가장 언론 노출이 많았던 라우터바흐의 입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래서 숄츠는 라우터바흐를 차기 보건부 장관으로 발표할 때 그를 “국민이 현재 가장 원하는 장관”이라는 수식을 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라우터바흐는 정작 장관에 임명된 후에는 국민이 예상했던 것만큼 강경책을 펼치지 않고 있다. 독일의 명절에 해당하는 성탄 시즌을 앞두고 질병관리본부장 등은 즉각적인 락다운을 주장했지만, 라우터바흐는 다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지난 12월28일부터 모임 인원 제한 등의 조치들을 하는 등 다분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현재 락다운보다 예방접종, 특히 부스터샷 접종률을 높이고 백신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데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 국민은 일정 부분 수긍하고 동의하는 반면, 지역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시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 상당수 독일 국민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 당국이 좀 더 강력한 규제 정책을 펼칠 것을 원하고 있다.

코로나19 외에 현재 독일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또 다른 문제는 ‘물가’다.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에 많은 이가 장바구니 물가 상승을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물가는 매우 저렴한 편이다. 물품에 붙는 부가세는 기본적으로 19%지만 식료품을 비롯한 각종 위생용품을 포괄하는 생필품에 대해서는 7%만 부과되는 등 생활비가 한국과 비교해 더할 수 없이 적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의 평균 수입을 기준으로, 월급의 40~50%는 세금이나 4대 보험 등으로 나가고 남은 월급의 상당 부분은 주택의 월세로 지출된다. 즉 지금 수준의 물가를 정부에서 유지하지 못하면 국민은 실질적으로 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녹색당 소속 식품농업부 장관 쳄 외츠데미어가 독일의 식료품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밝히면서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육 제품을 생산하는 현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소비자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현지 언론 차이트지에 따르면, 현재 일반 마트에서 다짐육은 ㎏당 5유로(약 6733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으나, 유기농일 경우에는 가격이 두 배로 상승한다. 이러한 추세가 증가한다면 전체적으로는 5% 정도의 물가상승이 예측될 수 있다고 한다. 독일 국민은 환경 문제에선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이고 있으나, 식료품 가격 상승은 실질적인 생활비와 직결되는 문제이니만큼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트위터에서는 외츠데미어 장관을 비난하는 글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독·중 외교에 자칫 외무장관 패싱 우려도

녹색당 총리 후보였던 안나레나 베어복은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자마자 파리와 브뤼셀 등을 방문하며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행보는 전직 장관인 하이코 마스와는 달리 자기 정치색만 뚜렷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가 친환경 정책을 중요시하는 녹색당 소속이니만큼 원자력발전 문제와 관련된 프랑스와의 추후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럽 내 외교보다는 향후 중국과의 외교 갈등이 더 주목받고 있다.

가장 가깝게는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 문제가 있다. 베어복 장관은 유럽연합 전체가 합심해 결정할 문제라며 판단을 보류하는 듯 보였지만, 기존 녹색당에서 중국의 인권이나 환경오염 등을 심각하게 문제 삼았기 때문에 그 역시 이러한 당의 입장을 견지하며 취임하자마자 중국에 대해 메르켈 정권보다 더 강경하게 대처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러한 부분이 우려되었는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숄츠 총리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중·독 관계가 현재처럼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했으며, 이를 보도한 슈피겔지에 따르면 이는 메르켈 때와 같이 중국과 독일 간 수교가 외무부 장관보다는 총리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독일 사회 각계에서 중국의 인권 및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독일이 좀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베어복 장관의 대중 강경 입장을 환영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독일이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심한 현실적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탓에 과연 베어복의 이런 노선이 실질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숄츠 총리는 취임하면서 독일 사회의 분열을 언급하며 지금 독일이 겪고 있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소수의 ‘반항자’들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는 메르켈 정권도 이루지 못한 독일 사회의 통합을 숄츠와 그의 내각이 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제 첫걸음을 뗀 숄츠 내각, 비록 기대는 크지만 아직은 삐걱거리는 듯 보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