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마이스(MICE)…‘제 살 뜯기’ 사업 될라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2.01.13 07:30
  • 호수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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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래동, 성남 백현동, 부산 북항 등 개발 진행…‘기존 13곳+신규 20곳’에 공급 과잉 우려도

전국에 마이스(MICE) 산업 조성 붐이 일고 있다. 마이스는 Meeting(회의), Incentive Travels(포상 관광), Convention(회의·전시의 복합 이벤트), Exhibition(산업·대중 전시회)의 앞글자를 딴 약어다. 기업 임직원이나 관광객을 단기간 대규모로 유치하는 행사를 말한다. 대형 회의만 개최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지역이 홍보되고 숙박·교통·관광·무역·유통 등 연관 산업에서 상당한 부가적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마이스 산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역대 민간 복합시설 개발사업 중 최대 규모인 ‘잠실 스포츠·마이스 복합공간 조성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서울 송파구 잠실운동장 일대 약 35만㎡ 부지에 2조1600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코엑스 3배 크기의 컨벤션과 3만3000석 규모 야구장, 900실 내외 특급호텔, 수상 레저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2023년 하반기 착공, 2029년 완공이 목표다.

잠실 외에도 수도권 곳곳에서 조(兆) 단위 마이스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 ‘마곡 마이스 복합단지 개발사업’이다. 2019년 사업자로 선정된 롯데건설은 월드컵경기장 면적의 9배 부지에 컨벤션센터와 호텔·업무·판매시설 등이 결합된 마이스 복합단지 ‘르웨스트(Le west)’를 2024년까지 지을 계획이다. 사업비는 2조5000억원대다. 서울시는 마곡동 인근 김포공항 부지에도 마이스 시설이 포함된 복합시설 개발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 제공
사업비만 2조원대로 역대 민간복합시설 중 최대 규모인 ‘잠실 스포츠·마이스 복합공간 조성사업’(사진)이 최근 본격화되면서 마이스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서울시 제공

제2 코엑스 꿈꾸는 지자체들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도 대표적인 마이스 사업으로 꼽힌다.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은 서울시가 중구 봉래동 일대에 위치한 코레일 부지를 서울역과 연계해 개발하는 사업이다. 국제회의가 가능한 수준의 컨벤션과 호텔·판매·업무시설 등이 들어서 ‘강북판 코엑스’ 사업으로 주목받았다. 총사업비만 2조원에 이른다. 내년 착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경기도에선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일대 20만6350㎡ 부지에 전시·회의·관광 등 마이스 산업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2조2000억원 규모 ‘성남 백현마이스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부산 역시 ‘2021년 MICE 산업 육성 계획안’을 확정해 현재 추진 중인 벡스코 제3 전시장과 서부산권 제2 전시장 컨벤션센터 건립을 완료하고 북항 원도심권에 대규모 마이스 복합지구를 개발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가 마이스 산업 활성화에 나선 건 지역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다. 마이스는 사람과 사람, 비즈니스와 비즈니스, 산업과 산업을 끊임없이 연결해 잠재된 성장 가치를 끌어내는 산업이다. 만남과 교류가 근간이 되는 만큼 공해가 없고 수익성이 높아 대표적인 ‘미래 산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정부가 국가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지정하면서 마이스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2010년 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를 계기로 가속화됐다. 대표적인 마이스 시설로는 서울 ‘코엑스’, 일산 ‘킨텍스’, 부산 ‘벡스코’, 대구 ‘엑스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등이 있다.

지자체들은 마이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단기간에 대규모 외국인을 유치하는 동시에 숙박·교통·관광·무역·유통 등 관련 산업과 연계된 ‘고용 창출’과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이 발표한 ‘코엑스 C페스티벌 2019 개최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5월2일부터 4일간 국내외 관람객 155만 명이 코엑스를 찾았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효과 1535억원, 소득유발효과 315억원, 세수유발효과 97억원, 고용유발 111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스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해지는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국제회의 참가자의 경우 각국의 여론 주도층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회의 참가 후 고국으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행사가 개최된 지역도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이미지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 “‘선택과 집중’ 필요”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건립이 예정된 마이스 시설은 전국적으로 20곳에 이른다. 이미 전국에 13개 컨벤션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시장에선 공급 과잉으로 향후 ‘제 살 뜯기식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는 각 지역의 컨벤션센터들과 기존 대형 컨벤션센터들이 한정된 컨벤션·전시 시장을 놓고 출혈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입지가 떨어지는 마이스 시설의 경우 유령 시설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전시·컨벤션센터와 관계된 자금의 상당액이 지역민의 세금에서 충당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같은 대외적 변수까지 맞물리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적 거리 두기’ 등으로 대표되는 코로나19 대응 조치는 비대면 혹은 대면 최소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만남과 교류가 기본인 마이스 행사엔 치명적 상황이 됐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화된 이후 국내 마이스 산업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서울 코엑스, 일산 킨텍스, 부산 벡스코 등 전국의 모든 컨벤션센터는 2020년 적자로 돌아섰다.

전문가는 산발적으로 마이스 시설 건립을 허용할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 과잉은 무리한 국제행사 유치경쟁을 유발할 수 있고 오히려 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새로 짓는 마이스 시설이 경제적 타당성을 갖고 있는지 인근 지역과 비교해 중복투자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인우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연구위원도 “가치 창출 가능성과 경제적 효과, 시설의 사후 활용 여부 등 조건을 좀 더 면밀하고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며 “마이스 산업 성장을 위해선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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