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중원지대, ‘안철수의 시간’ 오는가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8 14:00
  • 호수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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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석’ 후보가 ‘105석’ ‘180석’ 후보 꺾는 기적 같은 일 벌어질 수도
‘이유 모르게 얄미운 전교 1등’ 이미지 넘어서야

‘안철수의 시간’은 다시 한번 올 수 있을까. 2017년 5월 대선 때 안철수의 시간이 오기는 했었다. 당시 4월 둘째 주에 들어서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앞서며 여론조사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안철수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형 단설유치원 설립 자제’ 발언의 후폭풍을 맞은 안철수는 특히 여성층에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주일 천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뒤로 안철수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대선에서 3위로 패한 뒤 국민의당이 쪼개지는 사태를 야기하며 바른미래당을 만들었지만 민심의 외면 속에서 실패로 끝났다. 대선 패배 이후 서울시장 선거에 두 차례나 나섰지만 역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10년 전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이 어느덧 ‘선거만 있으면 출마한다’는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도 안철수가 출마했지만 처음엔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다시 안철수가 주목받는 시간이 오게 된 것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21년 12월10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지도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연금 개혁 공약 등 표 눈치 보지 않는 소신 평가

여론조사마다 편차는 있지만, 최근 들어 안 후보의 지지율이 10%대로 급상승한 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일단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 측면이 커 보인다. 정권교체를 바라던 층에서 윤 후보와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그렇다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싶지는 않은 층들이, 일부는 부동층이 되고 일부는 안 후보에게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상황이 말해 주듯이 윤석열과 안철수의 지지율은 서로 연동돼 있는 구도다. 윤석열이 안정을 찾아 다시 반등하는 흐름으로 가게 되면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은 다시 멈추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윤석열이 계속 난맥을 드러내고 정권교체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심리가 확산하면 안철수의 지지율이 상승하게 돼있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아직은 자력보다는 윤석열 지지율 추이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한계는 있다. 다만 지지율 15% 정도 지점에 근접하는 순간, 안철수는 자력으로 윤석열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쯤 되면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 승자가 누가 될지 예측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이 현재 야권의 지형이다. 마침 국민의힘 쪽에서는 윤석열과 김종인이 결별했다. 보수정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넘어선 중도 확장성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조타수 역할을 할 선거 사령탑의 부재 속에서 선거운동은 계속 난맥을 빚을 위험성이 커졌다. 지지율 추이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윤석열의 지지율이 하향세로 접어든다면 안철수에게는 큰 기회를 의미한다.

원내 3석짜리 소수 정당의 후보임에도 안철수가 갖는 강점은 윤석열이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이라 여러 실수를 반복하는 윤석열과는 달리 기본적인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안철수는 정치생활 10년을 거치면서 큰 선거를 여러 차례 치러본 경험이 있기에, 정책을 비롯한 선거 수행 능력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 정치인이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보면 ‘더 좋은 정권교체, 준비된 안철수’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이 말은 단지 정권교체만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윤석열에 비해 자신이 더 나은 대안임을 호소하려는 메시지일 것이다. 실제로 그가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 개혁 공약을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내놓은 것은, 미래 의제를 선도한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일이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가 安에게 더없는 기회 될 수도

지금은 윤석열, 안철수 누구도 후보 단일화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안철수가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일단은 자신의 지지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후보 단일화 프레임이 장애가 됨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이 정권교체를 내건 윤석열과 안철수의 독자 완주가 공멸을 가져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다면 두 사람 모두 정치적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지율이 높았을 때는 안철수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윤석열도, 이제는 안철수와의 후보 단일화라는 지렛대 없이는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윤석열의 하락세 속에서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안철수로서는 이참에 두 야당의 단일후보가 되어 이재명과 최종 승부를 겨루겠다는 목표를 가질 만도 하게 되었다. 그러니 결국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시점이 문제일 뿐 결국 이루어진다고 내다보는 게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소리를 듣는 이번 대선은 안철수에게는 더없는 기회일 수 있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재명에게도, 국정 운영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윤석열에게도 마음이 가지 않는 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현재의 대선 환경이다. 안철수의 약진을 가능하게 할 중원지대는 제법 넓어 보인다. 그래서 안철수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허황된 얘기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안철수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높고도 많다. 의석 3개짜리 소수 정당의 후보가 105석을 가진 제1 야당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나아가 180석에 가까운 여권 후보를 이긴다는 것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소수파 정당이라는 한계는 ‘집권해도 불안한 후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사실상 ‘안철수로의 후보교체’라는 인식이 형성되어야 보수층의 지지도 얻어 윤석열을 제치고 최종 본선에 올라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안철수 정치에 실망해 등을 돌렸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정서적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안철수 정치 1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가 마음이 떠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정치도, 선거도 사람을 얻어야 할 수 있는 것일진대, ‘함께했던 사람들 가운데 남은 사람이 거의 없더라’는 세간의 평판은 정치인으로서는 큰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 왔던 자신을 성찰하며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유 모르게 얄미운 전교 1등’이라는 시선의 장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가 똑똑한 사람임을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란 똑똑하다고 해서 1등을 하는 게임이 아님을 안철수도 이제는 알 것이다. 번번이 드루킹들에 의해 모진 ‘조리돌림’을 당해 왔던 안철수였다. 정치적으로 미숙하기는 했어도 흠잡을 데 없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던 그였지만, 드루킹들은 온갖 마타도어를 뿌려대며 그가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를 막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평가받고 도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안철수는 이제 두 달 남은 대선의 마지막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안철수의 시간은 다시 올 것인가.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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