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는 어쩌다 ‘동네 북’이 되었나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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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0.2%, 논란은 200%…여가부 존폐 논란의 역사
野 ‘폐지’ 與 ‘개편’…여가부 명칭 변경은 불가피할 듯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 모습 ⓒ 연합뉴스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 모습 ⓒ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로부터 촉발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 논란이 뜨겁다. 윤 후보 측은 여가부를 젠더갈등의 진원지로 지목하며 철폐를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폐지보다 개편’을 주장하며 논란에 합류했다. 여야 모두 여가부 폐지 논란을 고리로 젠더 이슈에 예민한 20대 표심에 올라타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가부 폐지 논란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여가부 폐지 청원이 올라왔다. 2017년 대선 때에도 유승민 당시 후보를 중심으로 폐지 주장이 이목을 끌었다. 2001년 여가부의 전신인 여성부가 설립됐을 때부터 줄곧 부서 통폐합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여가부는 어쩌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을까.

 

‘뜨거운 감자’ 여가부 폐지론…“여가부가 존폐 위기 자처했다”

여가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산하에서 구성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2001년 정부부처로 승격되면서 공식 탄생했다. 20년 동안 명칭만 3번 바뀌었고, 2010년 여성가족부로 이름이 확정된 이후 지금의 형태로 굳어졌다. 여가부에 따르면, 여가부는 현재 △성평등 사회 구현 △젠더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다양한 가족 포용 및 돌봄 지원 △청소년 안전망 구축 등 4대 정책 목표를 수행 중이다. 여가부 주도로 시행된 호주제 폐지나 성폭력 범죄 처벌 강화 등은 긍정적 성과로 평가된다.

다만 여가부는 정치권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과 달리, 예산 규모만 따지고 보면 존재감이 거의 없는 수준에 가깝다. 2022년도 정부 예산안 604조원 가운데 여가부의 비중은 1조4000억원으로 0.23%에 불과하다. 소속 공무원 수도 300여 명, 전체 국가직 공무원 중 0.2%이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 국회사진취재단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 국회사진취재단

그렇다면 여가부는 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됐을까. 지난해 7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게재돼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 글을 보면, 당시 청원인은 “여성가족부는 성 평등 정책은 하지 않고 남성 혐오적이고 역차별적인 제도만을 만들어 예산을 낭비했다”고 주장했다. 여가부가 젠더갈등을 조장하고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취지다.

특히 여가부는 국민 여론과 역행하는 일을 벌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권력형 성범죄 해결에 앞장서야 할 여가부가 지난 2020년 벌어진 박원순·오거돈 시장의 성비위 사건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가 하면, ‘피해고소인’이란 단어를 사용해 질타를 받기도 했다. 또 여가부가 주도한 셧다운제는 시대착오적이란 비판과 함께 실효성 논란을 빚었다. 16세 미만의 청소년의 심야 시간대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는 결국 올해부터 폐지됐다. 이외에도 여가부에서 제작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나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안’에 젠더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표현을 담았다가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이 때문에 여가부에 대한 민심은 부정적이다. 여가부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해 11월17일부터 엿새간 만 16~5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가족부에 대한 인식과 존폐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가부에 대한 호감도와 정책에 대한 호감도는 전년 대비 2~3점 떨어져 100점 만점에 40점을 간신히 남겼다. 일각에선 “여가부 폐지론은 여가부가 자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페이스북 캡처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페이스북 캡처

‘이대남’ 공략에 지지율 들썩 

여가부 폐지 논란을 정치권으로 소환하려는 시도는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실권을 잡은 뒤로 거세졌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6일 이 대표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나중에 저희 대통령 후보가 되실 분은 여가부 폐지 공약을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선 때부터 여가부 폐지를 대선의 주요 어젠다로 삼겠다는 점을 공고히 한 셈이다.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가 된 윤석열 후보는 지난 7일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7글자로 파장을 일으켰다.

여가부 폐지 공약에 여론은 벌써 들썩이는 분위기다. 11일 발표된 두 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의 2030 지지율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미디어토마토 조사(뉴스토마토 의뢰, 8~9일 조사, 1017명 대상)에서 윤 후보의 20대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20.0%포인트, 30대에선 10.3%포인트 상승했고, 코리아정보리서치 조사(뉴스핌 의뢰, 8일 조사, 1003명 대상)에서도 윤 후보의 20대 지지율은 17.8%포인트, 30대에서 16.1%포인트 오른 것으로 기록됐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민주당 측은 “젠더 갈등에 편승해 남녀 갈등을 격화시킨다”며 윤 후보 측을 비판하면서도, 여가부 개편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는 대응 기조를 보이고 있다. 여가부 폐지 공약으로 국민의힘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여성 표심을 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이 후보 측도 여가부를 ‘평등가족부’ 또는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어, 대선 이후 최소 여가부의 명칭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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