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중이 있어 더 이상 ‘NBA 넘사벽’은 없다
  •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5 11: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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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데이비슨대 에이스로 NCAA리그에서 맹활약
현지 매체, NBA 1라운드 25번 지명 예상자에 올려

국내 스포츠의 지속적인 발전이 거듭되면서 예전에는 넘기 힘든 벽으로 여겨졌던 세계의 문턱이 하나씩 깨져가고 있다. 메이저리그, 유럽 프로축구, LPGA와 PGA 등은 이제 TV 속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던 꿈의 무대만은 아니게 됐다. 국내에서 톱클래스 재능을 갖춘 선수는 충분히 도전할 만한 무대가 된 지 오래다. 류현진·손흥민·고진영 등은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월드 스타들과 경쟁하며 넘버원 자리를 넘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공불락으로 꼽히는 무대가 바로 NBA(미국 프로농구)다. 대한민국에서 농구는 전통의 인기 스포츠지만 국제 경쟁력은 그리 크지 않다. 어떤 종목보다도 신체 능력의 차이를 크게 받는지라 세계 무대와의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축구로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기는 것보다 농구로 아시아 최강 중국을 이길 확률이 더 낮다”는 말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한국 농구는 미국·유럽·남미는커녕 아시아 무대에서도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과 이란이 여전히 강세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필리핀·일본·중동 국가 등과도 경쟁이 쉽지 않아졌다. 특히 일본의 경우 닉 파제카스 등 뛰어난 기량의 귀화선수를 지속적으로 영입하는 것을 비롯해 하치무라 루이, 와타나베 유타 등 연이어 NBA리거를 배출하며 차세대 아시아 맹주를 향한 준비를 다져가고 있다. “한국은 뭐 하고 있나?”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20년 2월28일 미 NCAA리그 경기에서 데이비슨대의 이현중(가운데)이 데이턴대의 공격에 맞서 수비하고 있다.ⓒ연합뉴스

201cm 신장에 포워드 포지션에서 기량 인정

사실 NBA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모든 국가에도 넘사벽이다. 아시아 선수 중 NBA 무대를 잠깐이나마 밟아본 선수는 그야말로 손에 꼽힐 정도다. 그래도 일정 기간 동안 주전급으로 뛰며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는 케이스는 중국의 야오밍과 대만의 제레미 린 정도뿐이다. 린조차도 핏줄만 아시아계일 뿐 미국 본토에서 농구를 배우고 성장한 케이스다.

그런 점에서 한국 농구 역사상 두 번째 NBA리거에 도전하고 있는 이현중(21·201cm·미국 데이비슨대)의 행보는 국내 농구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스포츠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이 작용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팬들의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아쉽게도 국내에서 농구는 마니아 스포츠로 떨어진 지 한참 됐다.

다행히 최근 허웅·허훈 형제의 등장으로 인해 인기 부활의 희망이 커져가고 있는데, 여기에 이현중이 꿈의 무대 NBA 진출에 성공한다면 폭발적인 관심을 모을 수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들의 높은 인기는 각 구단의 투자로 연결된다. 파이가 커지면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이는 인기와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현중 이전에 국내 NBA 진출 1호 주인공은 하승진(221cm)이었다. 2004년 2라운드 46번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된 바 있는데, 아쉽게도 통산 46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6.9분을 소화하며 평균 1.5득점, 1.5리바운드에 그쳤다. 당시 하승진은 기량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미국 현지에서도 보기 드문 압도적 신체조건이 영향을 미쳐 입단한 경우였던지라 적응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이현중은 순수하게 기량을 앞세워 빅리그에 도전하고 있다. 201cm의 신장은 분명 본인이 뛰고 있는 포워드 포지션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신체조건으로 관심을 받을 만큼은 아니다. 이현중이 NBA에 입성한다면 기량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박찬호·박세리 등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뭐든지 처음이 가장 어렵다. 제2, 제3의 이현중 탄생을 위해서라도 이현중의 현재 행보가 매우 중요하다.

이현중 선수가 데이비슨대 농구팀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이비슨대 홈페이지
이현중 선수의 부모도 농구인 출신이다. ⓒ김종수 제공

ESPN, NBA 최고 스타 커리와 나란히 이현중 소개

현재 이현중의 NBA 입성 가능성은 밝은 편이다. 1학년 시절 식스맨과 주전을 오가며 적응을 마쳤고, 2학년 때는 야투 성공률 50.3%, 3점슛 성공률 43.6%, 자유투 성공률 90.5%로 데이비슨대 역대 최초로 180클럽을 달성하며 확실한 주전 자리를 굳혔다. 1992~93 시즌 이후 NCAA(전미대학체육협회)에서도 10번째 기록이다. 3학년인 현재는 팀내 에이스급으로서 위상을 뽐내며 미국 현지에서도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22일 있었던 NCAA 정규리그 경기에서는 전미 랭킹 톱10팀으로 꼽히는 앨라배마대를 꺾었다. 이는 데이비슨대의 레전드로 불리는 스테판 커리가 뛰었던 2008년 이후 13년 만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날 경기에서 이현중은 17득점(3점슛 4개), 4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공식 SNS에 커리와 이현중의 사진을 나란히 올리며 데이비슨대의 승리를 전한 바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NBA 최고 스타와 함께 언급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인지도 상승에 적지 않은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상 드래프트이기는 하지만 현지 매체에서는 이현중의 지명 순위를 1라운드 25위까지 보고 있다.

1984년 LA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농구 은메달의 주역이자 이현중의 모친인 성정아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본래부터 NBA를 노린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꿈을 향한 아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좋은 과정으로 이어지는 듯하다”며 “NBA를 가느냐 못 가느냐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단순히 운동만 잘한다고 대학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부를 병행하며 정해진 학점을 넘어야 계속 운동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현중이 역시 어려서부터 공부에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았다”는 말로 미국 진출을 노리는 국내 유망주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친인 이윤환 삼일상고 농구팀 감독 또한 “국내에 남았더라면 나름대로 안정적인 상황에서 농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중이는 가능성을 저울질하지 않은 채 꿈에 대한 도전을 선택했다. NBA 진출에 대해 기대는 하고 있지만, 설사 안 되더라도 실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간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대학에서 온전히 4년을 마치고 풍부한 NCAA 경험까지 쌓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이현중의 미국 진출 의미를 설명했다.

이현중의 행보는 자녀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는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유영주 전 부산 BNK 프로농구단 감독은 “현중이가 미국에서 잘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며 “성정아 선배의 길게 보는 교육관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농구를 하고 있는 제 쌍둥이 아들도 현중이를 롤모델로 삼아 인성·지성을 두루 갖춘 재목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중이 NBA 입성에 성공할지 여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도전과 경험은 유형·무형으로 한국 농구의 중요한 자산이며 한 걸음 한 걸음이 역사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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