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中’ 홍콩 언론 잇따라 폐쇄…“직원 안전 위해 자진 폐간”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0 12: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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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보안법 앞세운 당국의 탄압수사로 신변 위협…중국 눈치보는 기업의 광고 거부 등도 배경

1월4일 밤 홍콩의 한 언론매체가 자진 폐간을 선언했다. 1996년 일간지로 출범했다가 1998년 정간했고, 2018년 온라인신문으로 복간했던 ‘전구일보’다. 이 매체의 사주인 레이몬드 웡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매체 운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웡은 홍콩의 전설적인 MC이자 시사평론가, 언론인, 정치인이다. 1993년부터 홍콩의 지상파 방송국이었던 ATV 진행자로 명성을 떨쳤다. 웡이 맡았던 시사 대담 프로 《용문진》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매서운 비판과 비평을 가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앙심을 품었던 한 사업가 형제가 사주해 웡을 상대로 고의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다행히 웡은 가벼운 부상만 입고 무사했으나, 정계와 재계의 거듭되는 견제와 압박 속에 《용문진》은 1994년 말 폐지되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자, 웡은 직접 전구일보를 차리는 결단을 내렸다. 전구일보는 창간 때부터 자유주의와 반공주의를 사시로 내걸고 공격적인 보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재계로부터 광고를 계속 따내지 못한 데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기간에 웡이 주식 투자에 잇달아 실패하면서 2년 만에 정간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홍콩의 ‘입장신문’ 편집국장 대행 패트릭 램이 2021년 12월29일 선동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연합뉴스

전구일보·입장신문 등 “자진 폐간”

그 뒤 레이몬드 웡은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MC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2006년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사회민주연선’을 창당했다. 그리고 2008년 입법회(홍콩 국회) 선거에 출마해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2012년 선거에서도 연임에 성공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웡의 정치 인생이 바뀐 것은 2013년 성향을 홍콩본토주의로 전환하면서부터다. 홍콩본토주의는 홍콩인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정치 사조다.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배하던 시절부터 시작되어,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전후해 점차 세력화했다.

그러다가 2003년 홍콩기본법 사태,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민주화 시위 등을 거치면서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극단파는 홍콩본토주의에서 출발한 일파다. 본래 레이몬드 웡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은 아주 강했으나, 홍콩특별자치구 정부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정치 성향을 홍콩본토주의로 바꾸면서 홍콩 당국에 반대하는 깃발을 들어올렸다. 그로 인해 홍콩 내 친중(親中)파의 집중 견제를 받아 2016년 선거에서 낙선했다. 한동안 재야에서 활동하던 웡은 2018년 전구일보를 온라인 매체로 복간하면서 사회 전면에 다시 나섰다.

전구일보는 2019년 민주화 시위 내내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기자들은 각종 시위 현장의 생중계를 통해 명성을 떨쳤다. 사주인 웡은 수시로 유튜브 채널에서 많은 홍콩 정치인과 중국 및 홍콩 정부를 비판하는 대담을 진행했다. 이런 게릴라식 라이브 보도 방식은 홍콩 2030세대에게 크게 어필했다. 그러나 홍콩 당국에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따라서 2020년 7월 홍콩국가보안법이 시행되자 웡은 점차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결국 그해 9월 외과 수술을 명목으로 처자와 함께 대만으로 도피했다. 웡의 처가 대만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레이몬드 웡이 대만으로 건너간 뒤 전구일보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열성 기자들이 남아 뉴스 제작을 이어갔으나, 경영은 갈수록 악화됐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6월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反中) 일간지였던 ‘빈과일보’가 홍콩 경찰의 급습을 받아 핵심 간부들이 체포됐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빈과일보는 폐간을 선언했다. 또한 사주이자 민주화운동가였던 지미 라이도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2월29일에는 홍콩 경찰이 ‘입장신문’ 사무실로 쳐들어가 전·현직 편집인들을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입장신문(스탠드뉴스)은 2014년 우산혁명 직후 창간했던 온라인 매체다. 2019년 민주화 시위 내내 전구일보와 쌍두마차를 이뤄 경찰의 시위대 탄압 현장을 생중계했다. 1월3일에는 또 다른 온라인 매체 ‘시티즌뉴스’가 SNS를 통해 “4일부터 폐간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배에 탄 모든 이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기 위해서”였다. 레이몬드 웡이 밝힌 전구일보의 폐간 배경도 직원들의 안전 문제였다. 웡은 “나는 안전한 대만에서 매일 홍콩 정부를 비판한다”면서도 “홍콩의 직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6개월 동안 반중 논조를 견지하거나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4개 매체가 잇달아 문을 닫자, 홍콩 언론계의 위기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비록 자진 폐간 형식을 취했지만, 홍콩 당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빈과일보와 입장신문은 홍콩보안법을 앞세운 홍콩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면서 회사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전구일보와 시티즌뉴스의 보도에 대해서는 홍콩 보안국이 자주 비판해 왔다. 보안국은 공안 사무를 총괄하는 부처다. 보안국장인 크리스 탕은 2019년 민주화 시위 당시 강경 대응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2022년 1월초 탕 국장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안보를 해치는 외부세력이 가짜뉴스를 이용해 사회 대립을 부추기고 정부를 공격했다”면서 “가짜뉴스를 겨냥한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언론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및 홍콩 정부를 비판하는 매체를 싸잡아 ‘가짜뉴스’로 매도한 것이다. 게다가 탕 국장은 “가짜뉴스를 법률이나 다른 방식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탕 국장의 인터뷰 직후 시티즌뉴스와 전구일보가 폐간을 선언했다.

ⓒAP 연합
홍콩 매체인 시티즌뉴스의 크리스 융 사주 겸 편집국장(오 른쪽)이 1월3일 폐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 연합

명성 높았던 ‘명보’는 진작 친중국으로

더 큰 문제는 지금 홍콩 언론계가 처한 상황이다. 반중 성향의 매체가 소멸됐을 뿐만 아니라 중립적인 매체도 친중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중국 당국이 암암리에 홍콩 경제계에 압력을 가해 반중 논조를 보이면 광고를 주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홍콩은 인구가 757만 명에 불과하지만 53개 중문, 12개 영문, 13개 중·영문 혼용 신문사가 과열 경쟁 중이다. 이들은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인 홍콩의 장점을 극대화해 신문을 발행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정기 구독자보다 광고에 의존한다. 따라서 기업의 광고를 못 받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현실 탓에 과거 중립적인 매체로 명성이 높았던 일간지 ‘명보’와 주간지 ‘아주주간’이 친중으로 돌아섰다. 명보는 1959년 무협 소설가 김용이 창간한 정론지였다. 오랫동안 홍콩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했다. 아주주간은 1987년 창간해 중국공산당의 치부를 고발하는 수많은 특종을 보도해 왔다. 그러나 두 매체는 2014년 우산혁명 이후부터 중국을 향한 비판의 칼날이 조금씩 무뎌지더니, 2019년 민주화 시위 때는 홍콩 당국을 옹호했다. 홍콩인들은 “홍콩에서 비판언론이 사라졌다”고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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