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통령’ 꿈꾸는 이재명의 ‘민노총 딜레마’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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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앞두고 親기업 행보에 민노총 반발
5년 전 한상균 사임 말하며 민노총에 러브콜

“한상균 위원장을 사면시켜 노동부 장관 시키겠다.”

2017년 2월1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후보(당시 성남시장)는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출연해 “(대통령이 되면) 노동자에 대해 애정있는 사람을 (임명)하고 싶은데 가능하면 노동운동가 중 지명하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진보진영에선 ‘소년공’ 출신 이 후보의 선명한 ‘친(親)노동자’ 성향을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5년 뒤, 이 후보의 노동관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9대 대선 당시 세고, 강하게 민노총을 응원했던 이 후보가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민노총 관련 발언을 삼가는 모양새다. 대신 성장에 방점을 찍은 ‘이재노믹스(이재명+이코노믹스)’를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치권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경제 회복과 성장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이 후보가 더는 민주노총의 ‘방패’를 자처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월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디지털·혁신 대전환위원회 정책 1호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월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디지털·혁신 대전환위원회 정책 1호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 대통령’ 꿈꾸는 이재명

지난 2017년 이 후보는 19대 민주당 경선 당시 경제 성장보다 노동과 공정한 룰(rule)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2017년 2월14일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출연해 “노동부 장관이 제일 중요하다. 대한민국 노동부는 사용자편을 주로 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500억원 이상 영업이익 내는 440개 대기업에서 8% 이상 증세하면 15조원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복지정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되는 게 맞다”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대통령’을 꿈꿨던 이 후보의 정책 초점이 20대 대선 들어 미묘하게 바뀌었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세계 5강(G5)’ ‘국민소득 5만 달러’ ‘코스피 5000’ 등 성장에 중심을 둔 ‘555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며 성장 담론을 선점했다. 마치 과거 ‘747 공약’을 내세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하는 모양새다.

이 후보는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관에서 대기업 경영진을 만나 친기업 행보를 펼치기도 했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완화를 강조했지만, 막상 기업인의 체감규제는 늘고 있다”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의 지적에 이 후보는 “현장에서 동떨어진 행정 편의주의와 탁상행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정부 책임론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해 말고 족쇄라도 풀어줘서 (기업이) 자유롭게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자신의 우군이던 노조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지난 11월10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노동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며 “안온한 환경을 누리는 일부 소위 강성노조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과거와 비교해 이 후보의 경제 정책이 보수화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는 지난 12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경제 정책을 보면) 두 사람(윤석열과 이재명) 이름을 바꿔도 될 것 같다”며 이 후보의 ‘우회전’을 비꼬기도 했다.

 

달라졌지만…노동계도 경제계도 ‘쓴소리’

일각에선 달라진 대선 환경이 이 후보의 변화를 낳았다는 진단도 나온다. 19대 대선은 이른바 ‘촛불 민심’이 대두됐던 시기다. 반면 20대 대선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경제 회복과 성장이 화두가 됐다. 여기에 캐스팅보터로 떠오른 MZ세대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강성 노조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신규 입사자가 아닌) 기존 노동자들의 보상 체계나 고용 체계를 유지하는 쪽만 강조하고 있다. 젊은 세대로서는 본인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본다고 느낄 수 있다. MZ세대의 외면은 민주노총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후보가 딜레마를 안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집토끼’인 진보 진영에서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재계에서는 아직도 이 후보가 ‘기업옥죄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 후보가 중도층을 공약하는 과정에서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2월14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이 후보에 대해 “유시민 작가가 이 후보에 대해 현안 중심의 대응을 한다고 했는데 이는 노동자, 민중의 삶에 대한 일관된 철학을 갖지 못한 것”이라면서 “임기응변식 표심을 위한 정책을 남발했다 철회하고 있다. 노동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철학이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후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 후보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추구해온 가치를 거부하고 우클릭을 구사하고 있다”며 “다만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클릭은) 부동산 정책에 한정된다. 실상은 노동 개혁 등은 빠진 좌클릭을 고수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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