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정년퇴직 할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 만들고 싶다”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3 14: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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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상헌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
“산업은행은 비전문적 판단으로 조선업을 몰락시켰다”

유럽연합(EU)은 1월14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심사를 불허했다. 이에 금융권과 업계 안팎에서는 ‘안 될 일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며 정부와 산업은행 ‘책임론’을 거세게 제기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이날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중심에 정상헌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장이 있다. 정 지회장은 1월18일 본지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 빅딜 무산과 관련한 플랜B 등 향후 추진계획에 반드시 우리 구성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상헌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이 1월18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무산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이상욱
정상헌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이 1월18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무산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시사저널 이상욱

유럽연합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심사를 불허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EU가 기업결합 심사를 3년 동안 끌어온 터라 전체 대우조선해양 구성원은 많이 지쳤다. 애초부터 합병이 성사되지 않는 분위기였고, 언제 결론이 날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EU의 결정이 새로운 숙제를 남긴 것 같다.

“사실 우리가 투쟁을 통해 막은 부분도 있고, 현대중공업 등이 스스로 포기한 부분도 있다. 당연히 결과를 반기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해야 한다. 이제 조선산업이나 대우조선해양 전체 구성원의 살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지회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을 텐데.

“산업은행이 2019년 1월31일 매각을 발표할 당시에도 대의원으로서 투쟁 조끼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12월10일 지회장 조끼를 입는 순간 무거운 무게를 느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힘든 과정이 너무 많았다.”

힘든 과정이라면.

“어쨌든 정책을 결정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 있다. 매번 그것이 과연 전체 구성원한테 좋은 결정인지, 회사 발전에 좋은 부분인지 결정할 때마다 고심했다. 우리는 치열하게 논의하며 모든 사안을 결정했다. 특히 결정 이후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노조는 산업은행 등이 EU 공정위에 대한 사전정보나 상식적인 절차도 모른 채 허술하게 기업결합 심사를 추진했다고 평했다. 

“EU는 제도적으로 판단 기준이 분명했다. 정보는 공개적이었고, 특히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문제는 공정인데, 독과점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유럽에 가서 ‘한국은 일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 대해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EU는 ‘승인해 주면 우리가 피해를 보는데 왜 해줘?’라는 의도를 이미 깔고 있었다. 합병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보기 힘들었다.“

심사를 3년 동안 끌어오면서 대우조선해양이 거의 고사되다시피 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주회사 변경을 통한 경영권 세습과 자금 조달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 이후 자료 미제출로 3년을 끌면서 경쟁사인 대우조선해양을 고사시켰다. 산업은행과 공정위, 현대중공업 3개 기관이 대우조선해양과 지역경제를 총체적으로 말아먹은 셈이다. 나는 지난 2015년부터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시작됐다고 본다.”

사전 정지작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회사는 2015년부터 내부 리스크를 정리했고, 임금도 계속 동결해 왔다. 공적자금 지원을 받아야 한다느니,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계속 회사 가치를 줄여 나갔다.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수주 실적은 형편없었다. 회사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 수많은 인재를 영입했지만, 급여나 복지환경은 날로 열악해졌다. 실제로 근속이 올라갈수록 임금이 계속 내려가면서 젊은 세대의 미래가 불투명했다. 결국 많은 인재가 회사를 떠나버렸다.” 

인재가 없는 회사, 미래가 암울하다는 견해인가.

“그렇다. 미래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 선박과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에 맞춰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암모니아·수소 추진 선박, 자율운항 선박 등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투자를 못 한 탓에 현재 연구인력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조만간 서울에 R&D센터를 만들 예정인데, 우리 회사 인력을 빼가는 건 순식간이라고 본다. 우려스럽다.”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등이 1월1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정문 앞에서 ‘대우조선·현대중공업 유럽연합(EU) 기업 결합심사 불승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등이 1월1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정문 앞에서 ‘대우조선·현대중공업 유럽연합(EU) 기업 결합심사 불승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산업은행은 합병 불발의 책임을 노조 쪽으로 돌리는 듯한데.

“산업은행은 6조4000억원 가치의 대우조선해양을 2800억원에 인수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공적자금 투입도 고스란히 현대중공업에 주는 방식이었다. (합병은) 명백한 재벌 특혜고, 조선업 생태계 붕괴를 초래하는 구조였다. 노조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정치권 모두 잘못된 매각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조건부 승인도 수용하겠다고 말했고, 노조의 반대로 합병이 성사되지 않는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정작 독과점에 대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망언이다.”

합병이 조선업 생태계 붕괴를 초래하는 구조였다면, 산업은행의 애초 판단이 그르다는 의미인가.

“맞다. 산업은행은 내수와 대우조선해양의 1200여 개 협력업체 문제, 기자재 납품업체의 생사를 산업적 측면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정치적 입장으로 밀어붙였다. ‘유럽에서 반대하면 우리도 반대할 거야’ 이런 생각의 사람들이 합병을 추진하지 않았나.”

산업은행의 비전문적이고 독단적인 판단이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인가.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인데도 조선산업 전반을 알지 못했다. 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대한 전문성은 있지만, 조선산업의 미래에 대한 정책적 방안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런 산업은행이 우리나라 조선업 생태계를 뒤흔드는 이슈,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했다는 자체가 문제였다.”

3년이 지나면서 회사의 인력 사정이 나빠졌을 텐데.

“최근 수주 호황으로 물량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협력업체 8000명, 대우조선해양 4000명 정도 인력이 더 필요한데, 돌아올 사람이 없다. 이미 3년의 고난을 겪으면서 우수 인력들은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외국 회사로 유출돼 버렸다.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를 보면 대우조선해양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모양새다. 산업은행과 정부의 잘못된 판단이 초래한 결과다.”

정부에 수주 지원과 인재 확보를 위한 장기적 투자방안 마련을 요구한 이유는.

“산업은행은 현재 1년 단위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연장하고 있다. 마치 우리 말을 들으면 1년 연장해 주고, 안 들으면 연장 안 해주고 이런 방식으론 책임경영을 할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 채권단의 간섭을 배제해야만 경영진이 인재 확보와 미래 투자에 매진할 수 있다.”

노사정 상시 협의회 구성도 제의했다.

“향후 우리가 독자생존으로 갈 것인지, 공기업 형태로 갈 것인지 이런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근데 여태까지 당사자인 대우조선해양 구성원은 제외돼 있었다. 이제는 우리 구성원도 함께 회사 미래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산업은행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3년 동안 멍들었다. 여기서 한 번 더 멍들면 대우조선해양은 없어질 것이다. 지회장으로서 내 후배들이 정년퇴직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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