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유골 감당 못해…코앞에 닥친 ‘화장 후 유골 대란’ 위기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3 07:30
  • 호수 16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등 전국 장묘시설은 포화상태…상주·울주 등에선 납골당 반대 투쟁 격렬

우리 선조들은 묏자리를 살아있는 사람의 집터 못지않게 중요시했다. 명당의 기운을 받아야 후손들이 잘 풀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가 화장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사망자 수가 늘어 매장지가 부족하고, 핵가족화로 대를 이은 분묘 관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화장 후 유골 대란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이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화장률(52.6%)이 매장률(47.4%)을 넘어선 이후 지난해 전국 화장률은 90.1%로 집계됐다. 하지만 화장 후 유골을 안장할 장묘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제주도는 유골을 안장할 공간이 부족해 쩔쩔매고 있다. 제주도 첫 자연장공원인 한울누리공원의 화초형·수목형·정원형 안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한울누리공원은 2012년 4월 개원 당시 1만5678기 수용 규모로 조성됐다.

하지만 밀려드는 유골을 감당하지 못해 최근 2만20기로 확장했으나, 잔여분은 1200구에 불과하다. 매년 2400구의 유골이 들어오는 걸 감안하면 조만간 꽉 차게 될 전망이다. 제주시가 대체 공간을 찾고 있지만, 시민들의 반대가 관건이다. 부산시 유일의 화장시설인 영락공원도 수용 한계치를 넘어섰고, 정관추모공원 역시 포화상태다. 전국의 봉안시설 여유분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장례업계는 현재 시설 규모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주민대책위 제공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 하동마을 입구에 ‘납골당’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주민대책위 제공
ⓒ주민대책위 제공
문경 시민들과 시의회 의원들이 2021년 12월27일 상주시청 앞에서 공설 추모공원 조성 반대 집회를 열었다.ⓒ문경시의회 제공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해양장례식’ 등장

경북 상주시가 추진하는 공설 추모공원 조성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인근 주민들이 결사반대에 나서면서다. 문경시의회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해 12월27일 첫 집회를 열고 “납골당 건립을 끝까지 막겠다”고 결의했다. 울산 울주군에서도 납골당 반대투쟁이 격렬하다. A재단법인이 지난해 10월 두서면 활천리에 5만3000여 기의 납골당 건립 허가를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남 양산과 대구 동구에서도 집단민원 때문에 납골당 건립 신청이 취소되거나 중단됐다.

현재 육지 봉안시설은 목까지 꽉 찬 상태다. 그래서 생을 마치고 바다로 돌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해양장례식’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양장례식이 허용된 바다는 인천 연안부두 앞바다와 부산 수영만 단 두 곳이다. 최근 해양장례가 주목받는 건 저렴한 장례비용과 관리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족들이 바다에 유골을 산분하고, 그 장소를 기억할 수 있게끔 GPS 좌표를 기록해 언제든지 찾아가 추모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부산에 위치한 S사는 부산 해안에서 5km 이상 벗어난 지점에서 해양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고인의 화장 유골과 상주 일행은 요트를 타고 장례 장소로 이동한다. 안전을 위해 항해와 인명구조 자격(면허)증을 갖춘 전문인력이 배치된다. S사는 지난해 500여 건의 해양장례를 치렀다. S사 측은 “최근 해양장례 건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며 “납골당 포화상태를 해소하고 장사시설을 둘러싼 주민과 지자체 갈등 문제, 무연고 사망자 봉안 문제, 경관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는 산 자와 떠나는 자의 존엄한 이별을 진행하는 절차다. 장묘는 시신을 보관하는 형태다. 효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매장을 선호했지만, ‘전 국토의 묘지화’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2010년부터 화장이 대세를 이뤘다. 유골 봉안 방법으로는 시신을 화장해 땅에 묻는 납골묘와 유골을 별도 공간에 모시는 납골당, 뺏가루를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 등이 있다. 그런데 유지·관리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수목장은 태풍과 장마에 유실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울산 중구에 사는 B씨는 “수목장으로 안장해 놓은 가족 유골이 2020년 여름 장마 때 산사태로 유실된 적이 있다”며 “망인에게 죄스럽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하소연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납골당은 벌레나 곰팡이 문제로, 납골묘는 침수 문제로 유족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유골함에 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유족들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 유해를 합장하려다 유골함에 물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강력 항의했다. 현충원 측은 두 고인의 유골함을 현충원 내 납골당에 정중히 모신 후 유족에게 사과했다. 납골당에 보관된 유골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기온 변화와 온도 차이로 습기가 차고 결로 현상이 생겨 부패하거나 변질돼 유족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업체들은 이런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울드·송운사 제공
부산 해안에서 5km 이상 벗어난 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양장례식(왼쪽 사진), 울산 송운사가 유골을 흙과 섞어 여러 형태의 도자기로 만들어 봉안하는 방법이 발명특허를 받았다.ⓒ소울드·송운사 제공

현재 장묘시설로는 장례 건수 소화에 역부족

송운사 화룡스님은 유골을 반영구적으로 봉안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청으로부터 발명특허를 받았다. ‘골분이 포함된 도자기 제조방법’이다. 유골을 흙과 섞어 1300도 고온에서 구워, 여러 형태의 도자기로 만들어 봉안하는 방법이다. 출세·벼슬·권위를 상징하는 용(龍)과 무병장수·재물·부를 상징하는 거북이, 자비의 상징인 부처님 등 유족들이 원하는 도자기 모양을 만들어 반영구적으로 봉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해 1600여 개를 만들어 유족들에게 전달해 호응을 얻었고, 현재 300여 개를 주문받아 제작 중이다. 이 봉안 기술은 일본에서도 특허를 받았고, 중국에서는 특허 절차가 진행 중이다. 화룡스님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납골당처럼 별도 공간 없이도 유족들이 원하는 장소에 보관할 수 있고, 유골의 부패와 벌레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국내 수요도 증가하고 있지만, 특히 일본과 중국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생의 마침표를 찍는 장례식. 유족들은 고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장부터 장례물품, 봉안 방법 등을 결정한 후 빈소를 차리고 장례를 치른다. 사망자 10명 중 9명은 화장을 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런데 유골을 봉안할 장묘시설은 포화상태다. 신규 시설 확충은 민원에 막혀 불투명하다. 해양장례와 골분을 포함한 도자기 제조 봉안 등 새로운 장묘 방법이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0년 815만 명에서 2024년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게다가 2070년에는 1747만 명으로 늘어 전체 인구의 46.4%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사망자도 해마다 늘어 지난해 총 사망자는 30만4948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3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2년 후 사망자는 37만 명을 넘어선다. 장례 건수도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현재 장묘시설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화장 후 유골 대란’ 위기가 우려되는 이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