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성사시킨 한마디 “尹 정권 성공이 안철수의 미래”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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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막전막후…안철수 ‘빨간 넥타이’에 윤석열 응답
자정 넘은 150분 담판…安 “신뢰” 질문에 尹 “운명 공동체” 화답

오전 8시8분. 당초 8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 시간이 지체되자 ‘혹시 또…’라는 술렁거림이 나왔다. 그때 두 사람이 등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3월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단일화를 전격 선언했다.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투표용지 인쇄일(2월28일) 전 단일화가 무산돼 사실상 단일화는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대반전이 이뤄졌다. 대체 물밑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두 후보의 단일화 합의는 전날인 3월2일 밤 3차 TV토론 전후 급박하게 진행됐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2일 마지막 TV토론에 앞서 양측 단일화 협상 주체였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이태규 국민의당 선대본부장의 채널이 복구됐다. 4일부터 진행되는 사전투표 전에 두 후보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타진하자는 데 두 사람이 의견을 같이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3월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3월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사전투표 하루 앞두고 장제원-이태규 라인 재가동

이태규 본부장은 오후 6시쯤 “윤 후보가 먼저 안 후보에게 연락해 주면 만날 수 있다”고 장제원 의원에게 알렸다. 장 의원은 즉각 윤 후보에게 보고했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이런 소식을 전달받은 윤 후보는 “우리가 왜 안 만나겠느냐”고 반색하며 6시20분쯤 만남 일정 조율을 지시했다.

안 후보는 오후 8시부터 진행된 TV토론에 예정대로 나갔다. 붉은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붉은색은 국민의힘을 상징한다. 안 후보가 이미 여론조사 없는 단일화를 결심하고 ‘단일화의 복선’을 깔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장 의원과 이 본부장은 TV토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오후 9시쯤 만나 구체적인 장소 등을 협의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이 마지막 단일화 협상도 깨지면 우린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대화를 나눴다.

TV토론 직후 윤 후보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최인아 책방’에서 정치광고 촬영 일정을 우선 소화했다. 그사이 만남 장소가 확정됐다. 이에 이 본부장은 안 후보에게 국민의당 당사로 이동해줄 것을 요청했다. 안 후보가 이후 이 본부장과 함께 먼저 만남의 장소로 이동했고, 곧이어 윤 후보가 장 의원과 함께 도착했다.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다.

만남의 장소는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성광제 카이스트 교수의 자택이었다. 성 교수는 2012년 안 후보가 안랩 주식 절반을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을 맡는 등 안 후보와 막역한 사이다. 안 후보 부부와는 카이스트에서 만나 친분이 깊어졌다. 장 의원의 매형이기도 하다. 이후 두 사람은 2시간30분 동안 허심탄회하게 국민통합정부 구상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배석자는 장 의원과 이 본부장이 유일했다. ‘극적 단일화’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대통령이 없었는데,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보자”는 공감대 형성이 핵심 배경으로 작용했다. 150분간 진행된 협상의 주요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지분·자리 논의 없이 정권교체 대의 모아

안철수 후보는 이 자리에서 지분이나 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정권을 성공시킬 것인가” “성공한 공동정부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특히 “어떻게 신뢰를 줄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윤 후보는 ‘운명 공동체’라는 열쇳말로 화답했다. 윤 후보는 “제가 안 후보를 믿고, 안 후보가 저를 믿는다. 이게 운명 공동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 번도 성공한 정부가 없는데, 처음으로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데 안 후보가 도와달라. 그게 바로 안철수의 미래 아닌가”라고 했다.

그렇게 안 후보는 여론조사 없는 양보를 전격 결정했다. 이후 공동선언문 작성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장 의원과 이 본부장이 뼈대를 세운 것을 기반으로 국민의당에서 초안을 작성했고, 윤 후보가 3월3일 오전 내용을 확인하고 내용 전체에 동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각 핑크색(윤 후보)과 붉은색(안 후보) 넥타이를 매고 국민 앞에 단일화 성사를 알렸다. 야권 단일화가 완성된 순간이다.

한편 국민의힘에서는 최근까지도 단일화 없이 다자 구도에서도 승리하는 내부 여론조사가 계속 보고됐다고 한다. 10%포인트 격차가 나는 여의도연구원 조사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윤 후보는 자강론보다는 단일화를 통한 확실한 정권교체 카드를 택했다. 안 후보는 지지율 하락과 내외부의 계속된 단일화 설득과 비판 등에 당이 적잖게 동요하자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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