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지 말라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2.03.11 17: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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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이 모여 만든 당구 모임 덕분에 한 달에 두 번 당구를 친다. 편을 나눠 승부를 겨루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슨 ‘밥 내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게임값’을 부담하는 경쟁이지만, 묘하게도 악착같이 이기고 싶다는 승부욕이 발동하곤 한다. 누군가 개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면 셋이서 당구를 치는데, 이땐 승부욕이 동하지 않는다. 꼴등이 ‘게임값’을 내야 하는 경쟁이건만, 모두 다 점잖아져 김 빠진 승부가 되고 만다.

편을 나눈 ‘2자 게임’과 편이 없는 ‘3자 게임’의 차이가 그렇게 크단 말인가? 그렇다. 이미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겨야 할 상대가 분산되면 승부욕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와 ‘우리’는 다르다. 두 사람만 돼도 ‘우리 편’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며, ‘우리’의 규모가 커질수록 상대편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성마저 강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제 대선은 끝났지만, 그런 관점에서 잠시 돌아볼 게 남아있다. 어차피 한 명을 뽑을 수밖에 없는 선거에서 누군가를 택했겠지만, 선택이 달랐던 사람들끼리 서로 싸울 필요는 없다. “너는 누구 편이었느냐”고 추궁하거나 적대시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개인으로 있을 땐 그렇지 않은데, 자신을 집단의 일원으로 간주하는 순간 무섭게 달라진다.

열정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상대편을 원수처럼 여기는 비난과 마타도어까지 난무했던 대선에서 특정 후보와 정당을 반대한 사람들이 그 지지자를 곱게 보기는 쉽지 않을 게다. 우리는 ‘나’의 선택은 가치와 명분과 소신에 따른 것이지만, ‘너’나 ‘그’의 선택은 어리석음이나 탐욕이나 증오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간혹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대선 이야기를 했다간 싸움이 나기 십상이었다. 처음엔 점잖게 시작했다가도 종국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느냐”고 따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양쪽 모두 열을 받는다. 그래서 대부분 정치 이야기는 금기시하는 슬기로운 자구책을 찾은 걸로 보인다. 싸우지 않으면서 정치 토론을 하는 게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의 이상이겠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그런 현실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지 않는 세상일 게다. 비밀투표의 취지도 바로 그게 아닌가. ‘최선’이라고 생각해 표를 던진 사람과 ‘차선’이나 ‘차악’이라고 생각해 표를 던진 사람이 같은 편으로 묶인다는 것도 영 이상하다. 그러니 아예 묻지 말자.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엘리아스 카네티는 “인간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을 집단으로 분류하려는 강한 욕구를 갖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욕구가 갈등과 적대감만 낳는 게 현실이라면, 그건 자제해야 할 욕구로 분류하는 게 옳으리라. 사실 유권자들에겐 편가르기보다는 통합을 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간 온갖 아름다운 가치와 명분을 내세운 집단일지라도 종국엔 사적 관계를 중시하는 ‘부족집단’이자 사적 이익을 취하는 ‘이권집단’으로 전락하더라는 걸 질리도록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 부족집단과 이권집단이 선거를 통해 획득한 전리품은 일반 유권자들에겐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 힘을 합쳐 정치를 사유화하는 부족정치와 이권정치를 박살낸 후에 편가르기를 해도 늦지 않을 게다. 당분간 편가르기 욕구는 당구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이나 스포츠를 통해 해소하자.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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