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운명, 안철수에 달렸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1 12: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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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당선인, 정국 주도권 쥐려면 安 대표와의 ‘합당-공동정부’ 성과 절실
2인자 실리 확보한 安, 정치 개혁 성공 못 하면 명분 잃어

선거가 끝나도 정치는 계속된다. 정치는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 정치 지형과 구도가 바뀐다. 이긴 쪽에게도 진 쪽에게도 마찬가지다. 유권자에게도 그렇다. 이제 수많았던 공약이 지켜질 시간이다. 감시할 몫은 유권자에게도 있다. 아울러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정치 개혁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여론도 상당히 모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났듯 지금 우리의 정치 양극화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치’는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대통령은 대선후보와는 위상과 역할이 다르다. 지도자는 절반의 유권자가 아닌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이젠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당장 ‘180석 야당’이라는 전례 없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와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국회도 선거 이후 상황을 맞이한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합당을 예고했다. 6월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합당 과정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공천권을 어떻게 나누고, 공천권을 누가 어떻게 행사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고차방정식이 될 전망이다. 5년 만에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발(發) 정계개편에 휩쓸려가지 않게 중심을 잡을 정치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당이 쪼개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당분간 정치권은 원심력과 구심력이 경쟁하는 정계개편 중력에 지배당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에게 선거 이후 더 중요한 정치는 정계개편보다는 정치 개혁이다. 윤 당선인은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병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꼽고,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개혁에도 의지를 보였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확정한 정치 개혁안들을 대선 이후에도 추진해 나갈지 주목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다. 안 대표는 다당제 정치 개혁을 위해 양당체제의 한 축인 국민의힘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기대만큼 실망과 비판도 많다. 제3의 길을 상징하던 안 대표가 호랑이굴에 들어가 어떤 ‘새 정치’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의 정치’는 윤석열 정부는 물론 향후 정국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3월5일 저녁)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 광장에서 이준석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함께 공동 유세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누구도 가보지 않은 野 180석 여소야대 정국

윤 당선인이 당면한 첫 과제는 ‘통합’과 ‘협치’다. 180석에 달하는 거대 야당이 존재하는 여소야대 정국은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윤 당선인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윤 당선인은 협치 기조를 앞세우고 있다. 윤 당선인은 3월8일 대선 마지막 유세에서 “압도적 지지로 저와 국민의힘에 정부를 맡겨주신다고 한들 저희가 일당독재를 할 수는 없지 않나. 야당과 협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를 맡게 되면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신속하게 합당해 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장경제를 안 대표의 과학, 미래에 결합하겠다”고 했다. 더불어 “민주당과도 멋지게 협치해 통합을 선사해 드리고 경제 발전을 이룩하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이 말하는 야당과의 협치는 무엇일까. 민주당과 공동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은 제로(0)에 수렴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설사 그 카드를 던진다 한들 민주당이 받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야당의 협조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인위적 정계개편이 아닌 새 정부 출범과 합당 효과 등 컨벤션 효과로 생성된 우호적 여론을 앞세워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을 통해 국회에 좀 더 안정적인 국정 기반을 마련한다. 단순히 ‘1+1=2’를 노리는 합당은 아니다. 3·9 재보선 결과에 따라 의석수가 106석에서 110석으로 늘어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3석)을 합쳐봤자 여전히 172석의 민주당 의석수에 비할 게 아니다. 정의당(6석)과 친민주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을 감안하면 윤 당선인의 앞길에는 꽃길 대신 가시밭길이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반대하면 윤 당선인은 국무총리 임명도 쉽사리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정상 출범 자체가 늦어지거나 미완성 상태에서 시작될 수 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이후 국정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상시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윤석열 정부는 2024년 4월 22대 총선까지는 하염없이 거북이걸음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내각 인선과 합당 과정에서 생길 ‘통합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아름다운 합당과 국민통합정부 정신에 입각한 용광로 내각 인선으로 국민과 언론의 주목 효과를 독식함으로써 높은 지지율을 끌어내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의 핵심은 ①아름다운 합당→②통합정부 완성→③높은 지지율이다. 이 고리가 완성돼야만 야당의 협치를 이끌어낼 정치적 공간이 생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건 타협이나 협치의 과정이 아니다. 윤 당선인의 지지율에 끌려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 윤 당선인은 유세 과정 내내 민주당이 국정에 협조하지 않으면 오는 6월 지방선거나 다음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위협성 메시지를 계속 던졌다.

 

尹-安 ‘한 지붕 두 가족’ 화학적 결합이 관건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에서 예상하고 기대하는 구체적 시나리오는 이렇다. ①지분 다툼이 아닌 정치 개혁을 앞세운 합당 ②통합의 정신에 입각한 공동정부 출범 ③민주당 출신·호남·비문(非文) 인사 등용, 친DJ(김대중)+친노(노무현) 세력 포함, 그렇게 통합정부 완성 ④지지율 연착륙 ⑤높은 지지율을 앞세워 6·1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 탈환 ⑥망설이던 민주당 일부 의원 탈당 ⑦비로소 열린 정계개편의 문. 

국민의힘 입장에선 더없이 장밋빛인 이 시나리오는 사실 곳곳이 지뢰밭이다. 특히 합당 과정은 아름답기보다는 파열음이 나는 험난한 길이 될 수도 있다. 당명은 어떻게 할지, 당권은 누가 가질지, 지방선거 공천권은 어떻게 나눌지 등을 결정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공동정부 구성도 마찬가지다. 안 대표가 우선 양보라는 ‘현금’을 내주고 공동정부라는 ‘어음’을 약속받은 상황이라 서로가 생각하는 바가 크게 다를 가능성도 있다. 윤 당선인 입장에서도 무조건 안 대표만 챙기기도 어렵다. 정치 신인인 자신을 대선 승리로 이끈 개국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안 대표와 그동안 사사건건 충돌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변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윤 당선인의 첫 번째 정치적 고비는 안 대표와의 ‘한 지붕 두 가족’을 얼마나 한 가족처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합당과 공동정부 구성 과정에서 파열음이 나오면 국민은 금세 다시 회초리를 들 수 있다. 정국의 주도권을 세게 쥐고 개혁과제를 실행해 나갈 타이밍도 놓치게 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두 세력이 화학적 결합을 통해 정치적 거리감을 확 좁혀 공동정부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느냐가 새 정부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당선인이 안 대표를 잃거나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단순히 의석 3석을 잃는 것을 넘어 대의와 명분을 상실해 엄청난 후폭풍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그 리트머스시험지가 바로 6·1 지방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3월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누가 되든 통합정부를 하지 않고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도 “과연 실현될 거냐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말로는 뭘 못 하겠나. 과거 ‘3당 합당’ 때도 문서로 약속한 것이 합당 뒤 폐기됐고, DJ·JP(김종필)가 합의했던 내각제 개헌도 DJ가 대통령이 된 다음 무산됐다”고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정치 개혁 두고 동상이몽, 시한폭탄 될 수도

김 전 위원장은 정치 개혁의 핵심은 개헌이라고 주장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1987년 헌법체제를 손봐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개헌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대신 윤 당선인은 “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 중심제라는 헌법 정신에 충실하게 정부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의석수를 고려한 듯 국회의 총리 추천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이 지점이 윤 당선인과 안 대표 사이의 ‘단일화 이후’ 관계를 가늠해볼 두 번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안 대표는 자신의 소신을 내건 ‘다당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민주당의 불안한 어음보다는 윤 당선인이 내건 ‘2인자’ 자리라는 현금을 택하며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안 대표는 3월3일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다당제가 소신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중대선거구제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한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혁과 결선투표제 등에 대한 개혁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그의 소신은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내세웠던 선거제도 개편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안 대표가 새 정부와 합당으로 탄생할 집권여당에서 어떤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느냐는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문제다. 다당제 등 정치 개혁 과제를 얼마나 해내느냐는 그의 정치적 대의, 즉 정치적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향후 정계개편의 핵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이 선거 이전에 안 대표가 원하는 정치 개혁을 법안으로 추진하겠다는 안을 당론으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일깨워준 정치의 진리는 단순하다. 지지 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지난 30년간 연합한 정치 세력은 승리했고 분열한 세력은 패배했다. 예외가 없다. 그리고 이 진리는 ‘선거 이후’에도 적용된다. 역사적으로 정권의 몰락은 외부 공격이 아니라 승리를 가져다준 선거연합이 내부 분열로 해체되면서 시작됐다. 김영삼 정부는 3당 합당 구조가 붕괴하면서, 김대중 정부는 DJP 연합이 깨지면서, 노무현 정부는 열린우리당이 창당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가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습니다”라고 말한 순간, 박근혜 정부는 당과 충돌하면서 몰락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연합이 해체되면서 서서히 가라앉았다. 윤석열 정부는 과연 어떨까. 선거가 끝나도 정치는 계속된다. 그리고 정치는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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