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분야 조명해 한국 미술의 텃밭을 가꾸다
  •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0 12: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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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3~28일 ‘2022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展’ 개최
전통 회화 비롯한 다양한 한국 미술작품 선봬

언론사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문화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들은 이러한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1970~80년대에는 메이저 언론사들이 전국 규모의 공모전을 열어 이러한 사업에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민전’이라고 불렀다. 국가에서 주관하는 전시회를 관전(국전)이라고 부르는 데 대한 상대적 명칭이었다.

이런 전시 사업은 미술의 특정 흐름을 만들었고, 미술의 영토를 넓히는 데 나름의 성과를 보여줬다. 공모전은 횟수를 거듭하면서 시대 흐름에 맞춰 형식을 바꿨다. 현재까지 주요 언론사에서 계속하고 있는 공모전은 지명 공모나 아트페어와 결합한 성격을 띠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김경희 작가의 《피어나다》ⓒ시사저널 박정훈

스타 탄생보다 새로운 작가 발굴에 초점

올해로 7년째를 맞는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그러나 대형 언론사들이 추진해온 미술 지원 사업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대형 언론사들이 진행하는 공모전은 스타 발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사실이다. 이들 전시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은 공모전 수상 경력을 발판 삼아 작가적 위치를 굳히기도 했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는 스타 탄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민주적으로 작가를 발굴해 미술계의 텃밭을 기름지게 하려는 데 목표를 두었다. 따라서 특정 경향이나 장르 혹은 미술 활동 경력, 나이에 상관없이 대상 작가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150여 명의 작가를 발굴했는데, 이 중에는 미술계에 첫발을 내디딘 작가가 있는가 하면 활동 경력이 풍부한 작가도 있다. 또 본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작가도 나왔고, 작품 활동의 모멘트가 된 작가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협회’가 만들어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결실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최근에 소개한 시즌7 작가들을 모아 ‘2022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展’이 열린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소외된 분야를 적극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제일 소외된 분야는 전통 회화, 즉 동양화로 통칭되는 회화와 서예다. 한국 미술의 뿌리와 줄기를 만들어온 전통 회화는 서양 미술이 미술계의 주류가 되기 시작한 지난 세기 중반 이후부터 소외됐고 최근에는 대학 교과 과정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현대미술은 이미 순수미술 분야를 뛰어넘어 디자인, 공예, 만화, 거리 낙서까지도 미술 언어로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미술계는 유독 전통 회화에 대해 문턱을 높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는 그동안 전통 회화와 서예 분야에서도 꾸준히 작가를 발굴하고 성과를 내왔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전통 회화와 서예가 현대미술의 새로운 언어로 도약하는 데 자그마한 힘을 보태고자 이번 전시에는 이 분야 작가를 더 많이 선보인다.

ⓒ시사저널 박정훈
김미순 작가의 《족적》ⓒ시사저널 박정훈

김경희는 전통 산수와 화조를 모티브로 현대적 풍경을 구성하고, 행복 이미지를 심는 작업으로 눈길을 끈다. 먹의 속성을 이용해 정신성이 강한 추상 화면을 보여주는 김미순은 인간 삶의 흔적을 추적하는 회화를 선보인다. 박종걸과 박창수는 전통 수묵 기법으로 이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 풍경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회화를 현장 산수화라고 부른다. 박종규는 서예의 한 분야인 서각 기법을 현대 회화 기법으로 발전시키는 의미 있는 시도로 주목받는 작가다. 정원희는 서예의 필법으로 새로운 감각의 산수화를 만들었던 조선 후기 기법을 이어받아 보통사람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작업을 한다. 김유경은 먹을 찍어서 만든 점을 집적해 서양 회화처럼 보이는 풍경을 그리며, 백설아는 전통 회화의 핵심인 선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전통 채색 기법을 고집하는 안해경은 화조화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며, 이현정은 고려 불화 기법을 응용해 고급스러운 화면을 연출한다. 최서원은 민화의 구성과 이미지를 자신의 회화 언어로 승화해 현대 민화를 탐구하고 있다.

이현정 작가의 《empty, but full》ⓒ시사저널 박정훈

‘2022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展’은 전통 회화 외에도 한국 미술의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작가를 소개한다. 신세대 감성은 분명하다. 기성세대가 화면을 바라보고 기다려주며 감동을 찾아가는 태도라면 앞으로의 미술을 이끌어나갈 세대의 감성은 만화 같은 상상력과 기법의 개방적 활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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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현 작가ⓒ시사저널 박정훈
박찬상 작가ⓒ시사저널 박정훈
이상민 작가ⓒ시사저널 박정훈
이상민 작가ⓒ시사저널 박정훈

한국 미술의 지형을 한눈에 감상

우리 시대 어둠에 대한 메시지를 레고 블록을 통해 유쾌한 경고로 풀어낸 권지현, 이미지의 힘을 통해 디지털 감성 회화를 추구하는 구인성, 브랜드를 이용해 상업주의의 허상을 보여주는 박찬상, 인간의 이중적 모습으로 우리 시대 인간상을 탐구하는 황인란, 핸드백의 모양과 색채의 배합으로 하모니에 대한 갈증을 담아내는 홍자경 등이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작가다.

반려묘를 통해 삶의 진실을 깨달은 고양이 작가 정지연, 제주 신화와 자기 삶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제주 작가 안진희, 겨울나무를 관찰해 외로운 예술가의 모습에 다가가는 장종균의 작업이 이런 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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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작가의 《약사여래야옹》ⓒ시사저널 박정훈

정통 회화는 시대 흐름에 조금 뒤처진 느낌이 들지만, 언제나 회화를 지탱하는 밑바탕이 됐다. 그래서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에서도 매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드리핑 기법으로 숲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김명희, 보통사람들의 꿈을 우화적으로 풀어낸 성태훈, 정원의 변화로 자연의 순리를 표현하는 이명화, 색채의 안정적 대비로 풍경의 의미를 새롭게 보여주는 이상민, 여행을 통한 서정성을 담아내는 최수란 등이 정통 회화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회화 언어에 도전하는 작가들이다. 2022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展은 인사아트센터에서 3월23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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