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쿡’ 찌르니 알아서 ‘콕’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 김정희 마케팅 컨설턴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3 12: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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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구매 의사결정 돕는 강력한 넛지 마케팅 전략들

얼마 전 한 온라인 쇼핑몰에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어 세일을 할 경우 소식을 받을 수 있도록 알림 설정을 해두었다. 오늘 휴대폰으로 그 알림이 도착했다. 몰랐으면 모를까, 세일 소식을 접한 이상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다. ‘찜’해 두었던 상품 설명에는 판매가와 할인 가격이 눈에 띄게 표시돼 있었고,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다는 ‘리사이클’ 배지, 그리고 상품의 현재 재고 수량이 표시돼 있었다.

상세 설명 페이지로 들어가니 고객 평가와 후기, 최근 며칠 동안 몇 명의 고객이 해당 상품을 구매했는지 볼 수 있었다. 몇 분간 설명을 읽고 있는데 한쪽에서 몇 명의 고객이 동시에 해당 상품을 보고 있는지 안내하는 팝업창이 떴다. 구매 의사결정을 하고 결제를 하려니 배송비를 절약할 수 있는 상품 안내가 보이고, 결제창에서는 쿠폰과 할인이 최적의 상태로 적용된 최종 가격을 안내해줘 별다른 수고 없이 결제를 완료했다.

ⓒ연합뉴스
고객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해 구매를 유도하는 넛지 마케팅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청역의 피아노 계단ⓒ연합뉴스

무리한 상업 마케팅의 한계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온라인 쇼핑 경험을 할 것이다. 특별해 보일 것 없는 이 과정에는 고객의 클릭을 유도하고 전환율을 높이는 여러 ‘넛지(Nudge)’가 적용돼 있다. 넛지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살짝 쿡 찌르거나 살살 밀다’이다. 그러니까 대놓고 혹은 밀어붙여서 행동을 이끌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행동과학 및 경제, 정치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연구 및 활용돼온 넛지의 개념은 2008년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 두 학자의 책 《넛지》를 통해 대중화됐다.

넛지는 간접적인 제안과 긍정적 강화를 통해 개인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마케팅에서는 이 개념을 활용해 고객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할 환경을 조성하고, 고객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선택하고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세일 정보를 알려줘 웹사이트를 방문하도록 유도하고, 판매가와 할인가 비교를 통해 구매 시 얼마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재활용 제품이라는 표시로 사회적 가치 실현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구매 행동에 동기부여를 한다.  

또 구매한 고객의 수와 평가 및 후기와 같은 사회적 증거를 제시해 고객에게 믿을 만한 제품이란 인식을 주고, 얼마나 인기 있는 제품인지 알려줘 다른 고객들처럼 인기 있는 제품을 구매하고 유행을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도 줄 수 있다. 재고가 얼마나 남아있고 몇 명이 동시에 해당 제품을 보고 있는지 등의 정보는 희소성을 인식시키고 손실 회피 욕구를 자극해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최적의 쿠폰 및 할인의 기본 적용은 복잡성을 싫어하는 고객의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다.

이 모두가 구매 과정을 쉽게 해주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구매 의사결정을 돕는 강력한 넛지 마케팅 전략들이다. 좋은 넛지 전략이 되려면 고객의 구매 여정을 방해하지 않고 원활하게 해줘야 한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비합리적으로 행동을 강요하거나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닌, 부드럽고 합리적이며 암시적이어야 한다. 고객이 어렵지 않게 구매 여정을 거치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되, 선택은 고객이 직접 하도록 자유를 제공할 때 넛지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2016년 GS25는 ‘미니언즈 우유’ 3종을 출시했다. 그중 옥수수 맛, 미니언즈 캐릭터를 형상화한 패키지, 계산할 때 바코드를 찍으면 나오는 미니언즈의 ‘뚜찌빠찌 송’으로 입소문을 타며 큰 인기를 끌었다. 노래를 듣기 위해 우유를 사는가 하면 우유병이 귀여워 구매해 빈 병을 모으는 고객들의 후기가 소셜미디어에 대거 등장했고, 매출도 크게 상승했다. 독특한 옥수수 맛과 인기 캐릭터 패키지로 고객의 흥미를 자극하고 구매 과정에 즐거움을 더한 넛지라 할 수 있다.

구매 여정은 크고 작은 결정들의 연속이다. 기업이 재미있고 간단하게 행동을 유도하는 환경을 제공하면 고객의 긍정적 행동 변화를 강화할 수 있다. 암시적이지만 간단하고 직관적인 장치로 부드럽게 살짝 ‘쿡’ 찌르면, 오늘날 고객은 똑똑하게 알아서 자신에게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콕’ 선택한다. 기업은 장치를 제공하는 방법과 시기를 조정해 고객에게 원하는 행동을 유도할 때 고객을 속이지 말며, 손쉽게 넛지 장치를 해제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

행동경제학 권위자인 리처드 탈러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넛지 마케팅이 따라야 할 세 가지 규칙을 제안했다. 그는 “모든 넛지는 투명해야 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 최대한 넛지를 선택 해제하는 것이 쉬워야 하며, 가급적 한 번의 마우스 클릭을 선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권장되는 행동이 넛지를 받는 사람들의 행복을 향상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넛지 윤리를 둘러싼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넛지는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간단하고 직관적인 안내로 복잡하고 방어적인 고객의 심리를 편안하게 하고 저항을 줄일 수 있다. 암시적으로 미묘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고객은 자신도 모르게 매료돼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 넛지 마케팅은 들인 비용에 비해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고객의 긍정적인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으로 기업은 고객 전환율을 높이는 목적뿐만 아니라 이미지 향상이나 공익 목적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쓰레기를 놀이로 만든 ‘투표 쓰레기통’

폭스바겐의 피아노 계단은 공익 목적 사례로 유명하다. 2009년 폭스바겐은 사람들의 계단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오덴플랜역 에스컬레이터 옆 계단을 피아노처럼 만들고 걸어 올라가면 소리가 나게 했다. 이 캠페인은 에스컬레이터 이용에 따른 전기료 절감과 시민들의 건강 증진에 도움을 주자는 공익 목적 캠페인으로 기획됐다. 당시 이 피아노 계단 설치로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평소보다 66% 더 많아졌다.

2019년 경기도 이천시 고등학생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투표 쓰레기통’은 이천시 거리의 쓰레기를 줄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천시 하면 떠오르는 것은?’이라는 질문이 적힌 쓰레기통은 쓰레기 버리기를 놀이로 만들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넛지는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으세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판단으로 메시지를 수용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연스럽게 올바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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