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광란’에 뛰어든 이현중…NBA 진출 교두보 마련에 ‘청신호’
  •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0 15: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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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AA 디비전1 출전, 남자 주전급으로 사실상 국내 1호

최근 국내 팬들 사이에서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디비전1 68강 토너먼트가 뜨거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매년 봄에 미국에서 개최되는 대학농구 최대 규모의 토너먼트로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지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회다. 국내로 따지면 1970년대 고교야구 열기를 생각하면 된다. 미국 현지에서는 스포츠 축제라는 의미에서 해당 토너먼트를 ‘춤추러 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 대학농구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68강 토너먼트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미국 아마농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일 뿐 아니라 대학은 물론 지역 간 자존심까지 걸려있는지라 농구에 별반 관심이 없는 팬들까지도 뜨거운 시선을 집중하는 진검 승부의 장이다.

ⓒ연합뉴스
3월12일(현지시간) 미국 대학농구 2022 애틀랜틱10 준결승에서 데이비슨대의 이현중이 세인트루이스대를 상대로 리바운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FIFA 월드컵을 능가하는 ‘아마농구의 월드컵’

단판 승부를 통해 승부를 결정하는 만큼 약팀이 강팀을 잡아내는 이변도 속출한다. 이때만큼은 NBA조차도 화제성에서 밀리기 일쑤다. 말 그대로 해당 기간 동안 미국 전체가 미쳐버린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NCAA 토너먼트를 슈퍼볼(미식축구 결승전), 올림픽에 이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스포츠 이벤트로 평가하기도 했다. FIFA 월드컵(4위)을 능가하는 그야말로 아마농구의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왜 갑자기 한국 팬들의 관심이 몰리기 시작한 것일까. 미국 대학농구에서 활약 중인 데이비슨대 3학년 이현중(22·201cm)이 이 대회에 참가한 이유가 크다. 이전에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현재 국내 분위기는 농구에 별반 흥미가 없던 이들까지도 “3월의 광란이 뭐야?”라면서 주목하고 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68강 토너먼트에 이현중이 한국인 최초로 진출한 것으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남녀 통틀어 한국인 최초로 NCAA 토너먼트 무대를 먼저 밟은 선수는 옥은정(59)이다. 숭의여고를 졸업한 그녀는 1981년 당시로는 흔치 않았던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다음 해 미국 루이지애나먼로대학에 입학해 한국인 최초 NCAA 디비전1 선수가 되어 소속팀 주전 가드로 4년간 뛰었다. 그녀는 NCAA 토너먼트에서 팀을 파이널포(4강)까지 올려놓는다. 물론 남자농구의 인기와 비교할 순 없지만, 전미 최고의 농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네이스미스 어워드의 최종 후보까지 올랐으며 1991년에는 루이지애나주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남자선수로 따져도 이현중은 두 번째다. 현재 국내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최진수(현대모비스)가 있다. 그는 2008~09 시즌 메릴랜드대 소속으로 토너먼트 무대를 밟았다. 당시 메릴랜드대는 1라운드에서 캘리포니아대를 이겼으나 다음 라운드에서 강호 멤피스대에 패해 탈락했다. 하지만 최진수는 1라운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2라운드에서 패배가 확정되기 직전 마지막 3분을 뛰는 데 그쳤다. 기록도 파울 한 개가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이현중은 현재 소속팀 데이비슨대의 주전 선수이자 주축 멤버다.

이현중이 고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 NBA 진출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경쟁하는 NBA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인들에게 높은 벽과 다름없다. 월등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엄청난 기량을 뽐내는 괴물 같은 선수들이 모여있는 무대인지라 어지간해서는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성공 여부를 떠나 NBA 무대를 밟아본 동양 선수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숫자가 적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하승진(221cm)이 2004년 2라운드 46번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된 바 있다. 아쉽게도 통산 46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6.9분을 소화하며 평균 1.5득점과 1.5리바운드에 그쳤다. 신체조건은 현지 선수들과 비교해도 꿀릴 것이 전혀 없었지만 운동능력과 기량 등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승진의 실패 이후 한국인들에게 NBA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이현중의 도전은 바짝 말라버린 한국 농구계에 단비와도 같은 셈이다. 단순히 이현중 개인의 성공만이 아닌 이후 미국 무대에 도전할 후배들에게 경험과 길을 알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 지린 청소년팀 김용식 총감독은 “선수든 지도자든 외국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많이 힘들다. 하물며 이현중은 고등학생 시절에 미국으로 건너갔지 않은가. 언어·생활·공부 등 여러 면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난관을 이겨내고 소속 대학팀에서도 인정받고 있고 현지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된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현중 부모님 제공
이현중이 롤모델인 탐슨의 소속팀이었던 워싱턴주립대의 유니폼 앞에서 찍은 사진ⓒ이현중 부모님 제공

스토리 통한 인지도 상승…플러스 효과 기대

이현중은 이번 68강 토너먼트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현중은 현지에서 NBA 최고 스타 스테판 커리와 종종 비교되는 모습이다. 물론 커리처럼 슈퍼 유망주까지는 아니지만 같은 대학 출신에 비슷한 슈터 스타일, 다른 유망주들과 비교해 조금 아쉬운 운동능력까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현지 언론에서 이를 놓칠 리 없다.

더불어 각종 매체의 평가도 이현중에게 점점 후해지고 있으며, 드래프트 예상 순위 또한 상승 중이다. 최근에는 해당 시즌 중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스몰포워드에게 주어지는 ‘줄리어스 어빙 어워드’의 최종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현지에서도 많지 않은 2m대 장신슈터 스타일이면서 팀플레이에 능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현중은 어린 시절부터 NBA 명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열성팬이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워리어스를 인기팀으로 이끌고 있는 프랜차이즈 3인방은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이다. 이현중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스타들과 ‘보이지 않는’ 인연을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롤모델인 탐슨의 워싱턴주립대와 우상인 커리의 데이비슨대 사이에서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데이비슨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번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는 데이비슨대 소속으로 그린의 모교 미시간주립대와 맞붙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워리어스를 응원하던 소년이 자신이 응원하던 스타들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이다. 한 발 한 발 꿈을 향해 다가서는 이현중의 걸음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한편 19일 벌어진 데이비슨대와 미시건주립대의 ‘2022 NCAA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이현중이 뛴 데이비슨대는 접전 끝에 73-74, 1점차로 분패했다. 이날 이현중은 주전 포워드로 선발출전해 3점슛 3개를 포함 11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시즌평균(16득점)에 다소 못미치며 아쉽게 탈락했다. 하지만 울산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NCAA 68강 토너먼트에서 주전으로 뛰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현중은 한국 농구의 자부심”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이현중은 한국 농구사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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