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식 정치’ 없었더라도 이대남·이대녀의 갈라짐은 필연적 [임명묵의 MZ학개론]
  • 임명묵 작가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0 14: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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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과 ‘이대녀’의 대선 표심 돌아보기…각자 방황 끝에 전열 갖추고 정치적 전장에서 마주 서

앞으로 5년의 대한민국을 결정할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초유의 관심사가 된 것은 20대들의 표심이었다. 엄밀히는 “20대는 누구를 찍을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대 남자와 20대 여자는 누구를 찍을까?”의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두 집단의 성향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연한 느낌은 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뽑았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국민의힘은 그 뒤 ‘이대남’ 공략을 향한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전통적 텃밭으로 여긴 청년층에서 대대적 반발이 등장한 것에 당황했다. 국민의힘 안에서 이준석 대표를 둘러싸고 전통적 지지층인 노년층과 새로 유입된 청년층이 부딪치자, 민주당에서는 자신들이 이대남의 표심도 다시 돌려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의 승부수를 띄웠고, 그 시점에서 이미 청년 남성층의 표심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거 직전, 민주당에서는 방향을 틀어 ‘이대녀’라고 불리는 청년 여성층을 끌어오고자 노력했다. 지금 비대위원장이 된 n번방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 위원장을 섭외한 것은 가장 상징적인 제스처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월10일 광주 백운교차로에서 윤석열 당선인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3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줌을 통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이대남을 反민주로 돌려세운 젠더 문제

선거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무척 모호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세훈 시장을 탄생시킨 ‘72.5%’는 없었다. 20대 남성은 출구조사에서 62%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을 보여주었고, 그 안에서도 윤석열 당선인에게 58%, 이재명 후보에게 36%로 나뉘었다. 윤 당선인이 크게 상회하긴 했어도, “고작 이런 결과를 위해 그 난리통을 만든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은 당연했다. 한편 20대 여성 표심은 신기하게도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는 58%를, 윤 당선인은 33%를 얻었다. 이를 두고도 이른바 ‘이준석식 정치’가 20대 여성을 반대편으로 결집시켜, 결과적으로는 득을 본 것도 없이 갈등만 키워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하지만 20대 남녀의 데칼코마니가 보여주는 바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 어떤 세대도 이와 같은 극명한 성별 분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지금까지 20대가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표를 던지던 성향이 강했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대남들은 이른바 청년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는 ‘조국 사태’ 이후의 선거인 2020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에 더 표를 많이 던진 이들이었다. 따라서 58%는, 그다지 강렬해 보이지 않지만, 함의 자체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대다수 20대 남성은 2016년의 탄핵이라는 열광적 대중운동에 참여했고, 그 운동의 경험을 기초로 민주당에 강한 정치적 지지를 던지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국민의힘을 당장 찍으라는 것은, 2016년 전후 자신의 선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을 겪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젠더 이슈가 아닌 여러 이슈에서도 청년 남성층은 민주당 정부와 계속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특히 중국과 북한을 대하는 외교 문제에서 민주당에 대한 청년 남성층의 반감은 결코 젠더 문제를 둘러싼 반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가열찼다. 5년간 개선되지 않은 불평등 문제, 자산 격차 문제,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이 자신들이 바로 직전에 내렸던 정치적 선택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가는 데는 중요한 계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온라인상에서 가장 격렬한 전장으로 타오르고 있던 젠더 문제였던 것이다. 한 번 젠더 문제를 통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20대 남성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정권을 향한 가장 격렬한 반대자로 변신하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모든 것을 공격했다.

 

남성 정체성 정치에 위기감 느낀 이대녀

20대 여성은 어떤가? 2021년의 서울시장 선거는 당시 시점에서 20대 여성들이 표심을 어디에 둘지 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20대 남성보다 더 충성스러운 민주당 지지층이었지만, 광역자치단체장 셋이 성범죄를 일으켰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서울시장 선거 자체가 애초에 그 문제 때문에 다시 열리는 선거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자산 격차 확대 등을 비롯한 각종 문제 또한 20대 남성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에 대한 불만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20대 남성을 흡수할 조짐을 보였던, 그리고 여전히 지지가 꺼려지는 국민의힘을 지지하기에도 껄끄러운 점이 많았다. 당시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표심은 오세훈 후보 41%, 박영선 민주당 후보 44%, 기타 15%로 나타났다. 사실 이런 구도를 고려했을 때 민주당이 20대 여성에게서 거둔 58%의 지지는 새롭게 얻어낸 지지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민주당 자신의 문제로 20대 여성이 이탈했던 상황에서 가까스로 회복해낸 것이라고 봐야 옳다.

20대 여성이 다시 민주당으로 결집한 이유는 명확하다. 20대 남성의 정체성 정치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20대 여성의 정체성 정치가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아무리 실망스러웠더라도, 남성 정체성 정치라는 구호에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마련이다. 물론 20대 남성들도 할 말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정치로의 결집이, 20대 여성들의 정체성 결집과 민주당 정권의 강고한 동맹에 대한 반응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20대 여성들은, 이미 한국 사회, 특히 청년층의 온라인 공간에도 만연해 있던 가부장제와 성차별 문화에 맞선 자연스러운 대응이라고 맞받아칠 것이다.

사실 이쯤 되면 이미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갈등이 갈등을 낳고 결집이 결집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이준석식 정치’가 없었더라도, 이대남과 이대녀의 표심이 이런 식으로 갈라지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표심의 결집 양상이 선거 국면과 맞물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는 정치인들의 의지와 우연적 사건 등의 맞물림에 달려있지만 말이다.

20대 대선이 확인해준 것은, 어쨌든 이제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양쪽 진영이 각자의 방황 끝에 전열을 갖추고 정치적 전장에서 마주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전장이 당분간은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 전장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각 정치 세력은 서로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멈추라고 소리친다 해서 멈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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