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 완화?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
  • 유길연 시사저널e. 기자 (gilyeonyoo@sisajournal-e.com)
  • 승인 2022.03.23 10:00
  • 호수 169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TV·총량 규제 완화로 대출 숨통 트일까…역대급 가계대출 증가로 위기 올 수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까지 높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생애 최초 구입이 아니더라도 지역에 관계없이 LTV를 70%로 통일할 계획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이 금융사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도 풀 것으로 예상된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0월 “가계대출 총량 규제는 전형적인 문재인표 이념형 정책”이라고 규정한 바 있어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조만간 총량 규제 완화 세부안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주택 구매에 어려움을 겪던 소비자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해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가 시행되면서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크게 증가한 바 있다. 특히 내 집 마련에 나서는 2030세대들이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시사저널 박정훈
대선 직후인 3월15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시사저널 박정훈

규제 완화로 ‘금융 불균형’ 심화 우려

하지만 대출 규제를 풀면 금융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집권 직전인 2016년부터 가계대출은 역대급으로 늘어났다. 2016년 국내 가계대출 잔액 증가액은 약 132조원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이후 코로나 사태 기간인 2020년(126조원), 2021년(124조원)의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각각 역대 2, 3위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급증의 영향으로 금융과 실물경제 간 괴리는 크게 심화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을 포함한 민간신용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이 2019년 4분기부터 2021년 4분기까지 2년간 26.5%포인트나 올랐다. 이는 외환위기(+13.4%포인트), 신용카드 사태(+8.9%포인트), 글로벌 금융위기(+21.6%포인트) 등 과거 경제위기 당시 증가폭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정연 한은 금융안정국 관리총괄팀장은 “민간 신용의 총량이나 증가율이 과거 위기 당시보다 높은 수준에 있다”며 “그래서 지금 당장 위기 상태라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사례로 미뤄 이런 상태에서 대내외 충격이 발생하면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우리 금융이 그만큼 위기에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더해 대외적 불확실성이 최근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물가가 크게 오른 점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긴축정책을 예고하고 있어 부담이 되고 있다.

대출 규제 완화로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부동산 시세는 가까스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경기(-0.04%)의 집값은 각각 1년9개월, 2년7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대출 규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가계대출 잔액은 가계대출 규제 강화의 영향으로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사상 최초로 세 달 연속 감소했다. 가격 하락의 핵심 요인인 대출 규제를 다시 푼다면 집값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에 맞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올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대선 직후인 3월10일 보고서를 내고 “새 행정부의 LTV 완화 같은 거시정책 기조가 통화정책의 매파적 경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더 올리면 중소기업,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대규모 부실 사태의 ‘뇌관’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터널을 지나오면서 대출은 크게 늘어났지만 매출은 회복되지 못해 상환 능력이 크게 저하됐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리면 큰 위기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제 완화로 가계대출이 더 늘어나면 이를 관리할 다른 방법이 많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시사저널 박은숙
3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감사 메시지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규제 완화폭 예상보다 적을 수도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출 완화 공약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금융권에선 대출 규제 완화 효과가 있으려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도 추가로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DSR은 연소득 대비 전체 금융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뜻한다. 상환 능력 이상의 대출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규제다. 현재 총대출액이 2억원 이상이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 이내로 제한된다. 오는 7월이면 규제 적용 대상이 1억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은 DSR에 대한 공약을 내지 않았다. 일각에선 DSR 완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이 DSR 완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탓이다. DSR 규제 완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결국 규제 완화 혜택이 고소득자에게만 돌아갈 것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이들은 DSR 규제로 대출 가능한 액수가 크지 않다. LTV가 완화된 만큼 대출을 더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대규모 부실 사태를 막기 위해선 DSR 규제의 현행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주요 국가들도 대출 건전성 관리를 위해 국내 DSR과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규제 강도 수준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유럽연합(EU) 소속 각 국가는 DSR과 비슷한 제도(DSI)를 운영하고 있다. EU 국가들은 DSI가 30% 또는 40%를 초과하는 경우 가계가 파산에 이를 위험이 크다고 본다. 영국과 미국의 규제 기준선도 20~48%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현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대출 규제 완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재 금융 환경을 고려해 봤을 때 완화폭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더구나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출 규제에는 신중히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