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p가 던진 숙제…‘이준석 리스크’와 ‘졌잘싸 딜레마’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9 14: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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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안철수 ‘지분 싸움’ 감지…인수위 넘어 합당도 삐걱
민주당, 지선 앞두고 ‘어떤 반성문이냐’ 두고 내분…구심점도 없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을 마친 지금 새로운 정치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바로 정산의 시간이다. 대개 선거에 이긴 쪽에선 논공행상이, 진 쪽에선 책임론이 휘몰아치기 마련이지만 0.73%포인트 차로 승패가 갈린 이번 성적표를 두고는 유독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긴 쪽에서 책임론이 불거지는가 하면, 진 쪽에서는 ‘어떤 반성문’을 쓸 것이냐를 두고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대선 후 권력지형은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승자인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당선인 중심의 헤쳐모여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친윤(親尹)’이 이제 국민의힘의 새로운 중력이다. 패자인 민주당에는 가혹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권력은 결코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당을 쇄신할 새로운 구심점 찾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대선 못지않게 치열할 전망이다. 6·1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만큼 양당은 혹여 내분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조심하고 있지만, 대선 성적표와 당 개편을 두고 물밑 주도권 경쟁은 이미 시작된 모습이다.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16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참모들과 산책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이준석 책임론’ 딜레마, 세대포위론 계속 갈까

대선 후 국민의힘 쪽에서 일차적으로 나타난 갈등은 ‘이준석 책임론’이었다. 3월9일 대선 출구조사가 접전으로 발표된 직후부터 국민의힘 소속 인사들은 언론을 통해 이 대표의 이른바 ‘세대포위론’ 전략을 실패로 규정하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이 대표식 ‘성별 갈라치기’ 전략이 쉽게 이길 승부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은 선거 후 며칠간 이 대표를 향한 옹호글과 비방글로 도배됐다. 한편에선 이번 대선 결과로 이른바 ‘윤핵관’이 당내에서 득세하면서, 상대적으로 이 대표의 입지가 좁아질 거란 관측도 나왔다.

파열음이 증폭되자 당 지도부는 지방선거를 의식해 빠르게 내분 가능성을 차단했다. 대표적인 ‘윤핵관’ 권성동 의원은 “윤석열 당선은 2030세대의 지지 덕분”이었다며 이 대표에게 공을 돌렸고, 이 대표 역시 주요 당직을 빠르게 개편하며 당무 주도권을 확보해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살아있다는 관측이 많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성별 갈라치기’에 기반한 ‘세대포위론’ 전략을 지속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후폭풍은 상당할 수 있다. 이미 그 반작용으로 민주당에는 2030세대 여성의 ‘입당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방선거 공천권과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합당을 앞둔 국민의당과의 지분 다툼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선거 후 일주일 내에 합당을 마무리 짓겠다던 양당의 공언과 달리, 논의는 생각보다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국민의당 측에선 국민통합정부를 약속받고 후보 단일화에 응했으며, 공동대표나 당명도 국민의힘에 양보했으니 이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보상이란 지방선거에서의 공천 약속을 일컫는데, 이 또한 이준석 대표가 확고한 경선 원칙을 내걸고 있어 향후 갈등의 소지로 남아있다.

이러한 양측 간 지분 신경전은 이미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취재에 따르면 안철수 인수위원장 측에서 전체 인수위원의 3분의 1을 지명할 권리를 요구하면서 인수위 구성이 다소 삐걱거렸다. 안 위원장이 특히 여러 분과 중 과학기술교육 쪽 인선에선 사실상 전권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월10일 선대위 해단식을 마치고 당직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尹-安, 합당 전부터 인수위 지분 두고 신경전

안 위원장이 인수위 지분을 요구하면서,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 측은 새로운 TF를 만들어 이곳에 윤 당선인의 추천 인사를 대신 배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인수위원 외에 각종 특보 및 상임고문을 다수 임명한 것도 안 위원장 측과의 지분 조율 과정에서 내놓은 대안이라는 전언이다. 실제 3월16일 정책특보로 임명된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와 김현숙 숭실대 교수 역시 당초 윤 당선인이 인수위원으로 임명할 계획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안 위원장 측과의 지분 신경전 끝에 이들을 특보로 임명하는 것으로 우회했다고 전해진다.

당장은 아니지만 국민의힘 안팎에선 2년 후 총선에 앞서 대대적인 정계개편설도 다시금 나돌고 있다. 정계개편설은 지난해 말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윤석열 후보 직속 새시대준비위원장으로 임명됐을 당시에도 불거진 바 있다. 최근 김 전 대표가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재등판한 데 이어, 민주당 출신·호남 인사가 인수위 안팎에 대거 중용되면서 정계개편설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내 세력이 미약한 윤 당선인과 그 주변 민주당 출신 인사들의 머릿속엔 정계개편 그림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며 “기존 영남 중심 보수정당 국민의힘을 호남과 중도까지 아우르는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고 민주당 내 일부 세력까지 흡수해, 차기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탈피하겠다는 구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당을 지켜온 구성원들과 새판을 짜려는 세력 간 대립은 불가피하다.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딜레마’를 마주하고 있다.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고작 0.73%포인트’라는 득표율 차에 방점을 찍으면서 쇄신의 동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당내에선 근소한 패배 요인을 분석하기보다 곧장 지방선거 대비에 다 같이 몰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괜히 패인을 따지다 보면 분란만 더욱 조장돼 당이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3월14일 출범한 새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러한 당 분위기의 단적인 모습으로 꼽힌다. 지방선거까지 당을 이끌 비대위 수장으로 윤호중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민주당이 통렬한 반성을 포기하고 안정적 선거 관리를 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 곳곳에서 윤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의 조기 등판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이 구심점을 잃은 상황에서 이 고문이 바로 일선으로 복귀해 다시 지지자들을 규합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지방선거에서의 ‘이재명 역할론’에 대해선 아직까지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의 자산인 이 고문을 좀 더 아껴 써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대선 패장으로서 반성의 시간도 없이 복귀하는 모습은 당 쇄신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같은 ‘이재명 역할론’ 주장은 당내 대선 패배에 대한 ‘네 탓 공방’으로 번져나가는 분위기다. 5년 만에 이뤄진 정권교체의 책임을 두고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실패인지, 이재명의 실패인지 이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향후 당내 인적 쇄신의 청사진도 극명히 갈릴 것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대선 후 양당은 각각 크고 작은 갈등에 직면해 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리스크와 국민의당과의 지분 경쟁을, 더불어민주당은 새 비대위 체제에 대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0.73%만 쇄신하려나” 문자폭탄도 재등장

당 내부에서 조심스레 거론되던 책임 공방은 점점 더 당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권지웅·채이배 비대위원 등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문제 삼으며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지방선거 공천 제외 등 인적 청산을 주장했다. 김두관 의원은 노영민·김현미·김수현 등 실명까지 거론하며 이들을 출당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박용진 의원은 “이번 대선 패배는 이재명의 패배, 민주당의 패배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오히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왜 우리가 대선에서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임 공방과 균열 조짐에 강성 지지층들까지 가세하면서 당 분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친문·친이재명계 할 것 없이 모두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라는 수천 건의 문자폭탄을 연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강성 지지층의 가세와 문자폭탄의 재현은 당을 향한 마땅한 쓴소리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일례로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위선·오만, 패거리 의식 등을 지적한 5선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연일 원색적인 혐오가 담긴 문자폭탄을 받느라 일상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새 비대위원 다수에게도 ‘윤호중 퇴진’ ‘이재명을 불러오라’ ‘이낙연을 소환하라’ 등 각종 요구가 담긴 문자가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당을 향한 비판을 ‘내부총질’ ‘배신’이라고 낙인찍던 과거 조국 사태 때의 모습이 다시 아른거린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갈등이 잦아드느냐 폭발하느냐의 분기점은 3월말 실시되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일정 부분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민주당은 계파싸움을 피하기 위해 원내대표 선거를 이른바 ‘콘클라베(교황 선출 방식)’로 치를 계획을 밝혔다. 공개적인 선거 경쟁 없이 내부 투표로 최종 한 명을 추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박홍근(이재명계)·이원욱(정세균계)·박광온(이낙연계) 등 이미 원내대표 하마평에 오른 후보마다 계파가 뚜렷하게 갈리는 만큼, 물밑에선 이들 간 주도권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내 586, 세대교체 여론 따를까

민주당 내에서 커지고 있는 세대교체 여론과 지방선거 결과도 커다란 갈등의 불씨로 살아있다. 꾸준히 이어져온 ‘586 용퇴론’이 대선 패배로 인해 재점화될 전망이다. 지난 1월 대선 과정에서 이미 송영길 당시 대표가 586 용퇴론을 공식 제안했지만 사실상 아무도 따르지 않으면서 용두사미에 그친 바 있다. 용퇴 당사자들이 계속 침묵을 지킬 경우 당내 세대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의 가장 큰 분기점은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1~2년 민주당의 분위기가 좌우되는 것은 물론, 대대적인 정계개편까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민주당으로선 정권교체 시점에 선거가 치러질 뿐 아니라 지켜야 할 자리가 많은 만큼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의 압승으로 민주당은 현재 전국 지방의회를 90% 이상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지켜내 선방하더라도 상대적으론 패배로 평가될 수 있다. 지방선거 후에도 당 분위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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