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9 15: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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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의 특별한 콘서트…세 개 테마로 나눠 주말마다 다른 공연

그날이 되면 평소보다 조금 신경 써서 차려입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 연인, 가족 혹은 혼자라도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다다른다. 그리고 두 시간 남짓 동안 작은 자리만 하나 차지하고 앉아 주변 사람들의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바른 자세로 앉아 어둠 속에서 여러 불편함을 무릅쓰고 조명이 비치는 한 곳을 응시하며 오감을 열고 무대 위에서 전해지는 스토리와 음악에 빠져든다. 내가 기다려왔던 뮤지컬 관객이 되는 순간이다. 이때 무대와 객석 사이의 긴장감과 열정이 가득한 그 공간에서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가느다란 막대기 봉을 열심히 흔들며, 때로는 악보를 넘기고, 때로는 숨을 고르고, 오늘도 커다란 극장의 공기를 책임지며 지휘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음악감독’이다.

ⓒONLYsketch 제공
신인 뮤지컬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문정 감독이 《2022 김문정 OIVLY》 콘서트를 통해 3년 만에 돌아와 주목된다.ⓒONLYsketch 제공

김문정 ONLY 콘서트 3년 만에 재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트 뮤지컬에 비해 한국에서는 지휘자가 음악감독이 될 확률이 높다. 뮤지컬 창작과 극장가 형성의 역사가 오래된 해외에서는 음악 파트에 슈퍼바이저, 음악감독, 편곡자, 지휘자 등 다양한 포지션의 전문인력이 포진하지만 뮤지컬 대중화 역사가 20여 년으로 짧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 모든 업무를 통틀어 ‘음악감독’이 전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최근에는 해외처럼 각 영역의 인력들로 분화된 대형 프로덕션도 존재하지만 그간 우리나라 뮤지컬에서는 음악감독이 개인기와 카리스마로 여러 어려운 임무를 복합적으로 수행하며 프로덕션의 음악 파트를 혼자 끌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음악감독은 비중이 높고 하는 일도 많지만 거기에 기획자의 능력까지도 필요한 경우가 많다. 새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작곡가와 직접 대화하거나 악보를 보며 음악의 창작 의도를 파악해 내야하고, 이를 해석해 배우들에게 적용까지 시켜야 하는 능력이다. 게다가 연출가를 비롯한 프로덕션 스태프, 유명 스타들이 포함된 배우 집단, 오케스트라 등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때로는 리더와 조정자 역할을 모두 담당하면서 예산에 맞게 편성까지 조율하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지휘봉을 든 음악감독은 안도의 짧은 한숨을 내쉰다.

현재 한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김문정 감독(1971년생)이다. 1997년 《명성황후》에서 건반 연주자로 뮤지컬에 처음 입문하고 2001년 창작 뮤지컬 《둘리》에서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그의 이름을 빼고는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면서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다. 이른바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대표작들인 《맘마미아》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맨 오브 라만차》 《엘리자벳》 《레베카》 《원스》 《제이미》 등은 물론이고 그가 건반을 처음 담당했던 《명성황후》나 한국에서 만든 창작 뮤지컬 《영웅》 《서편제》 《웃는 남자》 《광화문 연가》 등 화제작들의 음악을 모두 그의 손끝에서 빚어냈다. 게다가 《내 마음의 풍금》 《도리안 그레이》에서는 직접 작곡가로 활약하며 크리이에티브로서 빼어난 기량을 보여준 바 있다.

김문정 감독은 공연의 운영뿐 아니라 배우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사실 음악감독은 신인 배우들을 선발하는 데 중요한 캐스팅 권한을 행사한다. 짧은 오디션 순간에 음악을 기능적으로 잘 소화하는 능력뿐 아니라 드라마의 해석력, 향후 발전 가능성까지 살펴본다. 그래서 베테랑 음악감독은 훗날 유명한 스타 배우로 성장하는 이들의 초보 시절을 지켜보고 함께 그 성장의 길을 걸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김문정 감독은 실력 있는 신인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해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열정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한세대 공연예술학과의 제자들, 대형 뮤지컬에서 비중은 작지만 실력이 탄탄한 앙상블 배우들,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심사위원으로 만났던 다방면의 음악 아티스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음악감독의 위치에서 신인 배우를 가장 먼저 만나고 알아볼 수 있다는 것, 그에게 기회를 주고 관객에게도 그들의 숨겨진 능력을 볼 기회를 준다는 것은 김문정 감독이 가진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취지에서 비롯된 특별한 콘서트를 지난주부터 시작했다. 그는 2005년부터 동반자로 뮤지컬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엠씨 오케스트라(The M.C)를 주인공으로 한 《엠씨 위드 프렌즈: 프라이드 콘서트》(2012), 첫 단독 콘서트 《김문정 ONLY》(2019)에서 스타 배우들 너머에 숨겨져 있는 오케스트라와 앙상블 배우들에게 단독 스테이지를 할애하고, 그들의 역할에 감사하며 관심을 환기하는 노력을 해왔다. 뮤지컬 배우 중심의 콘서트가 아닌 이러한 특별한 취지로 콘서트를 여는 음악감독은 그가 유일하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2022 김문정 ONLY》 콘서트로 3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한층 실력 있는 신인 배우들의 역할과 비중을 늘렸고 전문가(원종원 평론가) 해설이 포함된 렉처 콘서트를 가미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뮤지컬들을 세 개의 테마로 나눠 주말마다 다른 공연을 연다는 점이다.

신인 뮤지컬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문정 감독이 《2022 김문정 OIVLY》 콘서트를 통해 3년 만에 돌아와 주목된다.ⓒONLYsketch 제공
신인 뮤지컬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문정 감독이 《2022 김문정 OIVLY》 콘서트를 통해 3년 만에 돌아와 주목된다.ⓒONLYsketch 제공
신인 뮤지컬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문정 감독이 《2022 김문정 OIVLY》 콘서트를 통해 3년 만에 돌아와 주목된다.ⓒONLYsketch 제공
신인 뮤지컬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문정 감독이 《2022 김문정 OIVLY》 콘서트를 통해 3년 만에 돌아와 주목된다.ⓒONLYsketch 제공

한국 뮤지컬계에서 독보적 존재감

첫째 주(3월11~13일)는 뮤지컬의 본산인 브로드웨이가 있는 미국, 둘째 주(3월18~20일)는 글로벌 대작이 즐비한 웨스트엔드가 있는 영국, 셋째 주(3월25~27일)는 유럽 대륙의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 뮤지컬의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작품들을 다룬다. 해외 뮤지컬에 관심이 있으면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 《맨 오프 라만차》의 원작인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가 가진 문학적 깊이와 배경이 되는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렇듯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품의 시대 배경과 의미에 대한 지식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의 지휘로 뮤지컬 넘버들도 감상하는 구성이다. 마이클리, 김수하, 민우혁, 최정원, 길병민, 규현, 카이, 김소현, 손준호 등 특별 게스트도 매회 다르게 출연한다. 코로나 이후 한동안 멈춰있던 뮤지컬 콘서트가 김문정 감독이 오랜만에 여는 눈과 귀가 즐겁고 좋은 취지와 구성을 갖춘 프로그램으로 힘차게 새출발하게 되어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여명이 다가오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공연은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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