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로 금융권 ‘인사 태풍’ 부나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2 10: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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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앞두고 금융권 ‘폭풍전야’…주요 금융그룹 수장들도 타깃 될까 촉각

윤석열 정부 출범을 50여 일 앞두고 금융권엔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업종 특성상 정권의 손때를 많이 타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당국 수장의 경우 정부와 정책 보조를 맞춰야 할 때가 많다.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수장 역시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의 거취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의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구원투수로 지난해 8월 출격했다. 일정 부분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금융 규제 완화가 핵심 공약이었던 윤석열 당선인과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변수는 있다. 법적으로 금융 당국 수장들의 임기는 3년이다. 고 위원장과 정 원장이 취임한 시점은 각각 지난해 8월31일과 6일이다. 취임한 지 이제 8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금융 당국 수장을 교체하는 것이 새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인은 그동안 청와대의 권한과 역할을 줄이겠다고 공언해 왔다”면서 “대출 완화와 금리, 지정학적 리스크 등 현안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동시에 바꾸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3월11일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왼쪽부터)이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동시 교체될까

3월말 임기가 종료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마찬가지다. 이 총재의 경우 2014년 4월부터 한국은행을 이끌어왔다. 한 차례 연임도 한 만큼 올해 퇴임이 불가피하다. 관건은 교체 시점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임기는 5월10일 0시부터 시작된다. 정권교체기임에도 한국은행 총재의 임명권은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때문에 금융권에는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의견을 반영해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한국은행 총재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당분간 대행 체제로 운영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수장 자리 역시 정권의 입김이 센 편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나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경우 대표적인 친문 인사로 꼽힌다. 이동걸 회장은 문재인 대선 캠프 당시 비상경제대책단에서 활동하다 눈에 띄어 임기 초부터 현재까지 산업은행을 이끌고 있다. 윤종원 기업은행장 역시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냈다. 두 사람의 임기는 각각 2023년 9월과 2022년 12월이지만, 교체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의 경우 ‘친문 색채’가 상대적으로 옅은 데다, 임기도 2020년 10월까지여서 조기 교체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국책은행은 아니지만 공기업 성격이 있는 농협금융지주의 손병환 회장 역시 임기가 올해 12월이지만 ‘정권교체기’라는 변수 때문에 인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또 있다. 주요 금융그룹의 수장들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인사 역시 진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4대천왕’으로 불렸던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등은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연임에 연임을 이어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황제 경영’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금융 당국 차원에서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안이 발표될 정도였다. 이들은 결국 정권 초기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놓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문재인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최근 잇달아 연임에 성공했다. 문재인 정권 초기인 2017년 취임한 조용병 회장은 2020년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23년 3월까지다. 손태승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연임에 성공하면서 3년 임기를 보장받았다.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각각 3연임과 4연임에 성공한 상태다. ‘n차 연임’이나 ‘셀프 연임’을 지적하는 세간의 목소리가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윤석열 정부에 곱게 보일 리 없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에서 이들이 ‘인사 태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의 제재조치에 반발해 소송을 해서 3년 만에 승소한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사례를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면서 “징계라든지 감독권이 엉뚱한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제2, 제3의 황영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3월말 임기가 끝나는 김정태 회장의 경우 일단 ‘용퇴’의 뜻을 내비쳤다. 김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연임 의지는 없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하나금융 지배구조 내부규정에도 ‘만 70세 룰’이 있는 만큼 김 회장은 더 이상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때문에 임기가 끝나는 때에 맞춰 퇴직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엉뚱한 목적으로 감독권 사용될까 우려”

하지만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은 상황이 다르다.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데다, 지난해 예대금리 차로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들을 괴롭혔던 사법 리스크 또한 해결된 상태다. 금감원은 지난해 3월 DLF(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우리금융지주 손 회장에게 중징계(문책경고) 조치를 내렸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에는 ‘금융사 임원으로 금융 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 조치를 받은 사람은 3년간 금융회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손 회장은 금감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한 상태다. 당시 재판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금감원의 중징계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지난해 11월 채용 비리 사건의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두 번째 연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KB금융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한 윤종규 회장은 사법 리스크 또한 전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가 무리하게 인사에 개입할 경우 과거 ‘관치 논란’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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