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을 푸틴의 오판이 빚은 실수라 부르는 이유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9 16: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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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목적 달성에 실패한 우크라이나 전쟁…푸틴의 엔드게임 전략과 마지막 노림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2월24일 침공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도록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진격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이 줄을 잇고, 도시는 폐허로 변하고 있다. 21세기 유럽 한복판에서 빚어지는 충격과 경악의 유혈극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서방세계는 다양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를 옥죄고 있다. 이미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맥도날드나 이케아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러시아 국민도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푸틴은 군사작전이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프로파간다일 가능성 또한 크다. ‘지지부진’이 작전에 담겼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푸틴이 전쟁의 ‘엔드게임’에 들어갈 방안은 무엇일까.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2019년 국민이 선출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항복을 받거나 그를 몰아내고 친러시아 괴뢰 정부를 수립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엔드게임에는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할까.

ⓒAP 연합
3월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에서 러시아군 탱크의 포격으로 불길이 치솟고 있다.ⓒAP 연합

푸틴의 폐쇄적 상태, ‘벙커 심리구조’라 불러

이를 파악하려면 우선 전쟁의 의사결정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다 급기야 전쟁을 일으킨 배경에는 그의 세 가지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 국민이 서방식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서방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푸틴에 대한 도전이다. 둘째, 우크라이나가 지속적으로 방위력을 증대하면 러시아에 ‘적대적인 비수’가 될 수 있다. 셋째, 푸틴의 러시아는 전쟁으로 발생할 비용보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푸틴 체제가 감당해야 할 정치적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이런 판단에 따라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외교적 위협을 앞세운 억제와 억압을 넘어 군사력을 앞세운 강압과 강요로 정책 수단을 바꾼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을 살펴보면 러시아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외교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결코 유리한 상황을 맞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를 제대로 점령하지 못하면서 군사적으로 신속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3월 중순 이후에는 무차별 공습·포격으로 도시·인프라 파괴와 민간인 피해를 빚고 있다. 러시아군이 자신 있게 군사작전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러시아군은 기갑·기계화 부대의 대도시 점령 작전이 여의치 않자 대신 무차별 폭격·포격 작전으로 전환해 도시 파괴와 인명 살상을 빚고 있다. 3월16일의 경우 수도 키이우 중심지의 12층짜리 주거용 건물을 포격해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하리키우에선 밤샘 포격으로 주거용 건물 2동을 파괴하고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일으켰다. 마리우풀에선 병원에 들어와 환자와 직원을 인질로 삼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푸틴의 정확한 상황 판단을 저해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0년 푸틴이 권좌에 오른 뒤 러시아에서 선거란 지도자가 푸틴임을 확인하는 요식 행위로 전락했다. 푸틴이 20년 이상 대통령과 총리를 지내면서 자신의 국민과 멀어져 아집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영국 출신의 CNN 칼럼니스트 스티븐 콜린스는 자신의 소규모 이너서클을 제외한 외부의 충고나 조언을 일절 거부하고 자신만의 믿음 속에 빠진 푸틴의 폐쇄적 상태를 ‘벙커 심리구조’라고 불렀다.

게다가 푸틴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진행된 지난 2년간 외부 만남과 소통을 거부하면서 모스크바 서부에 있는 노보오가료보의 별장에 틀어박혀 살아왔다. 가끔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에 지시하는 정도다. 그러면서 현실 감각을 일부 또는 상당히 상실하고 자신에게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책무가 있다는 ‘망상’을 더욱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이너서클에선 푸틴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푸틴은 소수의 강경파이자 맹목적인 충성파인 예스맨들에 둘러싸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푸틴의 이너서클은 ‘제복 입은 사람’이라는 뜻의 ‘실로비키’라고 불린다. 소련 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푸틴의 보좌관을 지낸 빅토르 이바노프, 국방부 장관과 크렘린 비서실장을 지낸 세르게이 이바노프, KGB 출신으로 2016년부터 대외정보국(SVR) 수장을 맡은 세르게이 나리슈킨 등 강경파 일색이다.

푸틴이 사람을 한번 중용하면 상당히 오래 쓰는 것도 이러한 ‘고인 물 측근’ 병폐의 원인으로 꼽힌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은 2004년부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2012년부터 자리를 지켜왔다. 이들은 푸틴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펼치고, 지시를 철저히 이행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시대 흐름에 맞는 참신한 정책 아이디어가 나올 여지가 없다.

 

‘중간지대’ 약속받고 철군할 가능성도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스스로 또는 측근의 ‘진언’으로 자신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실수임을 자인하고 철군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다만 푸틴이 목표로 내건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이른바 ‘안전지대’ 확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로부터 서구의 일원이 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거나, 아니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중간지대’나 ‘비무장지대’로 남기겠다는 확약을 받고 못 이기는 척 철군할 가능성은 있다.

푸틴이 자신의 전용기에 신임하는 실로비키 중 한 명이나, 의외의 인물을 실어 워싱턴에 보내 직접 담판을 추진할 수도 있다. 대미 직접 담판을 통한 사태 해결은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에 분열의 빌미를 제공하는 공작 효과도 있는 것이다. 이는 푸틴이 즐기는 행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비록 군사적으로 점령하진 못하더라도 주요 도시와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폭격·포격해 폐허로 만든 뒤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중립화하는 목표를 달성했다’며 철군할 가능성도 제시된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희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우크라이나 국민과 지도자가,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어떤 엔드게임 시나리오를 선호할지부터 살필 일이다. 공은 이미 러시아의 손을 상당히 떠나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을 푸틴의 오판이 빚은 실수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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