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시론] 외환보유액에 대한 고민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8 17: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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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쏟아내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외환보유액과 관련한 것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600억 달러로 주로 미국 정부 국채로 구성돼 있다. 유로나 엔화 국채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미국 국채다. 미국 국채는 미국 금융회사들이 취급하고 있어 그걸 사서 계좌에 넣어두려면 미국 금융회사 계좌를 열어야 하고, 그 계좌에 국채를 넣어둬야 한다. 물론 계좌 명의는 대한민국 정부지만 그 보관은 미국 금융회사들이 한다는 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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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가 문제냐면 어느 날 갑자기 미국 정부가 그 계좌를 동결하거나 압수하거나 인출을 금지하거나 이 국채의 매매를 막으면 우리나라는 당장 석유나 식량을 사올 돈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러시아가 정확히 그런 봉변을 당했다.

물론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대한 제재이므로 우리에게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우리가 이웃 나라를 침공할 이유도 없으니 괜한 고민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국제 정세의 묘한 기류는 이런 일에 대한 방비도 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그 결과로 우리가 겪게 될 문제는 중국-러시아 블록과 미국-유럽-일본 블록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요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이 요구는 우리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자칫하면 우리의 외환보유액이 인질로 잡힐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전에 대비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중국이 그런 일에 대비하기 위해 짜놓은 구도를 참고하면 적어도 이런 대비가 물밑에서 주요국들 사이에서는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국채를 약 1조 달러어치 보유하고 있는데, 유사시에는 이 돈이 인질로 잡혀 꼼짝 못 하게 된다. 러시아의 상황과 마찬가지다.

그럼 중국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1조 달러를 미리 현금이나 실물채권으로 인출해 놓을 수는 없으니 유사시에 인질로 잡히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중국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도 비슷한 규모의 미끼를 던져놓는 것이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의 테크 기업들은 미국 증시에도 상장돼 있는데, 사실은 그 회사 주식이 미국에 상장된 것이 아니라 ‘그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어떤 모회사의 해외 관계사가 발행한 주식도 아니고 주식 보관증’이다. 이 보관증이 가치를 갖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이 보관증과 진짜 회사 주식과의 연결고리를 보증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상장된 그 보관증은 중국 테크기업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순간, 그 보관증들의 가치는 0이 될 것이다. 이 보관증들의 시가총액 가운데 미국인들이 보유한 보관증의 가치는 약 70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숫자에 불과한 돈이 다른 나라 금융회사에 예치돼 있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유사시에 다른 대안을 갖는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지렛대가 될 텐데, 불행히도 그런 게 한국에는 없다. D램도 우리가 가장 싸게 만들 수 있을 뿐이지 우리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며 그 외에는 김치, 홍삼, 웹툰, BTS 정도가 전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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