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1 08: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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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따른 걸프 전쟁이 한창이던 1990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의 한 작은 마을에 잠시 살던 때의 이야기다. 시내로 나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가던 길에 동네 담벼락을 뒤덮은 종이들을 보았다. ‘NO WAR’라는 고딕체 큰 글자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마을 주민자치회가 만들어 붙인, 이를테면 소자보 같은 것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으니 주민 토론회를 열어 전쟁 반대의 뜻을 모으자는 내용이 거기 적혀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을 두고 이국의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들불처럼 피어오른 그 행동이 이방인의 눈에는 몹시 놀랍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 놀랍고 신기한 일이 30년도 훨씬 지난 2022년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전쟁을 피해 모여드는 폴란드 국경도시 프세미실 거리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사진으로 전해진 그곳의 반전 포스터 속 글귀들은 하나같이 절절하고 먹먹하기만 하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이름인 ‘블라디미르’를, 피를 의미하는 ‘블러디미르(Bloodymir)’로 표현하는 등 강한 풍자로 가득한 포스터와 손글씨들이 프세미실의 공원이며 수도 바르샤바의 거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폴란드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러시아를 규탄하는 목소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러시아 내에서조차 반전 시위가 잇따르면서 시민 수천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는 러시아의 만행에 항의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나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크라 난민으로 빼곡한 폴란드행 피란 열차 객실ⓒ연합뉴스
우크라 난민으로 빼곡한 폴란드행 피란 열차 객실ⓒ연합뉴스

이처럼 다수의 세계인이 어깨동무를 하며 전쟁 반대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참혹하고 암담하다. 최근에는 어린이 병원까지 피격돼 무고한 아이들이 무참히 목숨을 잃는 참사도 빚어졌다. 세상 어디에도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겠지만, 어린아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면 슬픔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공포에 어린아이들까지 막무가내로 휩쓸려 희생당할 이유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정처 없는 배회가, 지하시설에서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버티는 아이들의 흐느낌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떠돎과 흐느낌을 끝내게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당장 그들의 땅에서 무기를 치우고 살육을 멈추는 일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열릴 수 있다는 작은 희망만 보여도 아이들은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을 억누르는 가장 큰 두려움은 어쩌면 ‘분리 불안’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분리된 채로 그 모든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그들을 마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우리 귀에 직접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불안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현대와 같은 ‘초연결시대’에 지리적 거리는 전혀 중요치 않다. 멀리 있다고 먼 것이 아니고, 가까이 있다고 가까운 것도 아니다. 마음의 거리가 모든 연결을 결정할 뿐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에 의한 죽음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 이 비극을 끝낼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이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용기를 북돋울 연대의 힘은 무한으로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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