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민주당, 무난한 반성으로는 지방선거도 무난히 패배할 것”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8 07:3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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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했던 박용진 의원
“당, 중상 입었는데 아파하지 않아…‘내 탓이오’ 자세 필요”

대선 직후 당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가 퍼지던 가운데,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박용진 의원은 누구보다 먼저 패배 원인을 복기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박 의원은 대선 막판 5일의 선전보다 지난 5년의 잘못에 방점을 찍었다. “내로남불을 정당화했던 우리 모습이 오늘의 패배를 있게 했다. 아까운 패배라는 이유로 반성과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는 스스로 경선 후보로 뛰어들었을 때부터 대선이 끝난 지금까지 당을 향해 ‘반성’과 ‘책임’을 반복해 외치고 있다.

박 의원은 대선 후 민주당 분위기에 대해 “엄청나게 큰 부상을 입었는데,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패배가 되지 않기 위해 민주당은 ‘소탐대실’의 정치를 멈춰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3월21일 이른 아침, 지역구인 서울 강북으로 향해 지방선거 출마자 지원사격에 나선 박 의원을 만나 대선을 마친 소회를 비롯해 향후 계획,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행보에 대한 평가 등을 두루 들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이번 대선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한다면.

“‘정치 지체 현상’이 드러난 선거였다. 유권자의 인식과 대한민국의 발전 정도를 정치가 따라가지 못했다. 여전히 정치는 포퓰리즘, 진영논리, 혐오와 갈등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려 했다. 매우 저발전적인 모습이다. 대한민국 곳곳이 선진국인데 정치만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했다.”

“민주당이 ‘소탐대실의 정치’를 해 패배했다”고 꼬집었다. 어떤 것을 ‘소탐’했고 그래서 어떤 것을 ‘대실’했다고 보나.

“당장의 이익과 상황논리만 따라가다가 정작 놓쳐선 안 되는 원칙과 신뢰를 전부 놓쳤다. 예를 들어보자. 정권 초 인사검증 7대 원칙을 세웠지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되레 더 증가했다. 위성정당 논란도 있었다. 당시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으면 민주당이 1당을 못 했을 순 있다. 그럼에도 원칙을 지켜야 했다. 우리가 내세웠던 정치 개혁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우리 때문에 치러지게 된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당원들의 결정을 앞세워 비겁하게 번복했다. 부동산 관련해서도 서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기는 우리 당 출신 정치인들의 언행이 이어졌다. 여기에 가장 심각했던 조국 사태까지, 이 모든 것이 ‘내로남불’로 표현됐다. 국민은 하나하나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대선은 ‘부동산 선거’였다는 얘기가 많다. 부동산 민심이 이번 표심에 어떻게 반영되었다고 보나.

“보통은 부동산 자산 가격이 오르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확 갈리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불만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부동산을 세금 정책으로 잡으려고 하는 태도다. 정부가 딱 그렇게 했다. 공급 문제는 10년 이상 걸리니까, 세금을 매겨 여러 채 집 가진 사람들이 집을 내놓게 하는 방향으로 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1주택자도 다주택자도 모두가 싫은 부동산 사태가 벌어졌다. 부동산 정책에선 이 세 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좋은 집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죄악시하지 말 것’ ‘시장과 대결하려 하지 말 것’ 그리고 ‘부동산 정책을 세금으로 좌우하려 하지 말 것’. 그런데 이 모든 걸 지키지 못했다. 여기에 잦은 실언이 민심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졌다.”

 

“조국의 강은 건넜지만 물에 젖진 않았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두고 당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패배 후 지금의 당 분위기를 어떻게 보나.

“엄청나게 큰 부상을 입었는데,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느낌이다.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데 스스로 격려하고 있다. 혁신해야 하는데 ‘잘 싸웠는데 왜 그러냐’고 한다. 그나마 반성하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또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국민이 보기엔 모두 동의가 안 되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 정책 실패 때문에 졌다는 말도 맞는 말이고, 이재명 후보의 리스크 때문에 졌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이걸 왜 분리하려 하나. 하나의 패배 이유만 찾으려는 태도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 ‘졌잘싸’ 말고 이제 ‘내 탓이오’ 해야 한다.”

당직자로서 겪었던 2012년 대선 패배, 그리고 이번 대선 패배,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

“2012년 패배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우기까지 정말 혼란스러웠다. 문재인 후보가 사퇴하면서 당은 일주일 넘게 권력의 ‘진공상태’를 겪었다. 이내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추대했고 지도부는 곧장 ‘회초리 민생 투어’를 시작했다. 현충원을 참배한 후 그 앞에서 모두 엎드려 사죄의 큰절을 올렸다. 큰절 후 차를 타고 가면서 문 위원장과 ‘바닥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모른다. 민심은 이것보다 더 차가웠겠구나’라고 대화를 나눈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후 긴 시간을 거쳐 당은 조금씩 수습돼 갔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느낌이다. 우리 후보는 47.83%를 얻어 0.73%포인트 차로 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47%의 권력을 갖게 되었나. 저들의 권력 크기와 0.73% 차이밖에 나지 않나. 그렇지 않다. 모든 게 사라진 상황이다. 통렬한 반성과 혁신이 아닌 질서 있는 수습만 이야기해선 결코 안 된다.”

아무래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당내 분란을 줄이려는 것 아니겠나.

“그 또한 불가피한 상황논리를 앞세워 소탐대실의 길로 가려는 것이다. 졌으니까 더 단일대오 해야 하고, 담장 밖으로 잡음이 넘어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당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 무난하게 가려고만 하다가는 무난하게 질 수 있다.”

조국 사태를 둘러싼 논쟁이 이번에도 이어졌다. 민주당 앞에 계속 ‘조국의 강’이 소환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상대 당을 타산지석 삼으면 된다. 보수정당은 박근혜 탄핵 후에도 홍준표 당 대표 체제를 거치더니 급기야 친박의 계승자 황교안 전 총리까지 당 대표로 앉혔다. 지긋지긋한 친박의 고리를 끊은 건 외부 인사 김종인 비대위원장이었다. 광주 5·18 묘역에 가서 무릎 꿇었고 당의 인적 청산을 이뤘다. 그 기반 위에서 비주류 오세훈 전 시장이 다시 서울시장으로 복귀했다. 당을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왔고 30대의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됐다. 탄핵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 후보가 됐고,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람들이 ‘윤핵관’으로서 새 주류가 됐다. 민주당은 지금 어디쯤 있나. 갈 길이 멀었다고 본다. 조국 사태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도 대선 과정에서 사과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부 총질을 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조국 수호를 자처했던 사람들이 당 안팎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국의 강은 건넜지만 물에 젖진 않았다.’ 지금 우리 당의 상황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3월16일 여의도 국회에서 박용진 의원실 주최로 ‘제20대 대선이 한국정치에 남긴 과제들’ 토론회가 열렸다.ⓒ시사저널 이종현

“尹 당선인, 먹고사는 문제 벗어나 뜬금포만”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의 첫걸음, 어떻게 평가하나.

“한마디로 뜬금포 3대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여성가족부 폐지, 그리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까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이탈한 헛발질을 하고 있다. 만일 당선인이 ‘국제유가 급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금리 인상으로 인해 영끌한 국민들 피해 없도록 대비하라’는 식으로 인수위원들에게 주문했다면 초반 지지율이 더욱 상승했을 것이다. 정부와 민주당에 소상공인 손실보상 재원 50조원 협조해 달라고 던졌다면, 협조를 안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느닷없다. 윤 당선인의 국정에 대한 인식이 국민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이토록 강하게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세종시를 떠올려 보라.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때 구상한 이후 20년 동안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 않나. 2007년 대선 경선 땐, 이 문제로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한바탕 질그릇 깨지는 소리도 났었고, 여전히 행정수도로서 부족한 부분이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국가 대사엔 충분한 시간과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윤 당선인의 모습을 보면, 청와대 이전을 국가 대사로 생각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토록 고집을 부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계속해서 무속, 풍수지리와 같은 의혹이 제기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일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윤 당선인은 할당제를 ‘자리 나눠먹기’로 규정하고, 인수위에 적용하지 않았다. 이 결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이다. 할당제 정신은 균형이다. 우리 사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이다. 여성 할당제에는 어느 한쪽 성이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게 하겠다는 정신이 담겼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초등교사의 경우에도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우려가 많다. 특정 직업이나 업무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인데, 나눠먹기로 규정해 버리는 것은 인식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한다. 지역 균형도 마찬가지다. 한쪽이 과소 혹은 과다 대표되면 지역 균형이 무너진다. 이미 한쪽 성(性)과 한쪽 지역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질 수 있다. 대통령이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려 노력하지 않고, 현실 그대로를 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안정적인 것도 공정한 것도 아니다.”

대선 막판 민주당의 다당제 정치 개혁 약속이 주목을 받았지만, 선거 후 다시 여야 간 논의가 정체된 상황이다. 이번엔 정말 진전될 수 있을까.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청와대 부지를 옮김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겠다 주장하지만, 정작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이전과 권력 분산을 위한 정치 개혁은 하지 않으려 한다. 공간만 옮긴다고 권력을 내려놓는 게 아니다. 다수당인 민주당은 일부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약속했던 개혁을 실천해 내야 한다. 이번에도 ‘국민의힘이 버텨서 못 한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민주당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제1 야당과 합의하지 못했어도 제3당들과 연합해 유치원 3법과 검찰 개혁 법안들을 통과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들과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계획은 없나.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준비하고 있는 건 없다. 대선 때 서울시장 선거는 완전히 잊고 뛰었다. 지역위원장도 사퇴하지 않았다. 다만 고민은 늘 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가 전국 선거의 중요한 등대 역할을 할 텐데, 당 차원에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전략을 고민하지 않고 있어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우선은 우리 지역 선거를 잘 이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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