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말하는 페미니즘, 그게 정확히 뭘까 [남인숙의 귀여겨듣기]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7 14: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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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일상화된 차별…대선이 남긴 숙제, 양성평등은 ‘느낌’이 아니다

3월9일 대선을 치르고, 바로 다음 날 포털사이트 지식 검색어 1위가 ‘페미니즘’이었다. 그동안은 ‘일부만 동조하는 여성 극단주의’ 혹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끄러운 그 무언가’쯤으로 막연히 인식되던 페미니즘이 대선의 승패를 가른 주요 이슈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오자 정확한 정의가 궁금해진 이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검색해본 이들은 결과로 나열된 문장을 아무리 뜯어봐도 여전히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지식백과식 정의만 보자면 페미니즘은 실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를 바 없이 추상적인 데다, 아직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진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페미니즘을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그에 동조하는 사람의 성향과 집단, 사회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번 대선에서 여성주의 관련 목소리를 낸 집단들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시각으로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에도 페미니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의식조차 되지 않는 뿌리 깊은 차별이 사회구조 속에 녹아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연합뉴스
3월5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7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남녀 임금격차, 160년은 지나야 사라져

전에 포장이사 전문업체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과 대화한 적이 있다. 그는 잠깐 사이에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불쌍하다’는 표현을 여러 번 했다. 연민의 근거는 그들이 육체적으로 더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인 자신은 실내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풀어 정리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데 비해 남성 직원들은 땀 흘려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을 보고 안쓰러움을 느낀 것이었다. 대화 당시에는 필자도 그 감정에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대화를 되짚어보니 그 공감 뒤에는 모두가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면들이 있었다.

포장이사 업체에서 여성 노동자가 전담하는 일은 주로 주방 물건들의 위치나 기능 등을 기억해 두고 상하지 않게 포장해 새집에 맞게 기본 배치하는 것이다. 주부 입장에서 알 만한 일들에 대한 숙련도가 필요하고, 그것은 짐을 나르는 일보다 낮은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남성 노동자의 70% 정도인 임금에 만족하고 있었다. 십 년 넘은 경력에도 처음 일을 시작한 남성보다 적게 받았다. 근육을 크게 쓰는 일에 더 가치를 매기는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같은 남초 직군에 비교해 보면 힘을 쓰는 정도보다 숙련도나 전문성을 기준으로 일의 부가가치가 매겨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여성들이 주로 하는 종류의 일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이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이를 차별이라는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유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현대 문명사회는 서서히 타협점을 찾아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느려 각계 전문가들은 남녀 임금 격차가 사라지는 시점을 짧게는 160년, 길게는 240년 후쯤으로 보고 있다.

필자는 지금 우리가 양성평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200여 년 앞지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당연히 가능하지도 않다). 아직은 출산과 육아 문제를 해결해줄 과학기술도, 뒷받침할 각종 윤리 문제의 답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걸림돌이 많다. 다만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을 좁혀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모든 사회에 젠더 차별이 존재하는 건 맞지만, 한국이 특히 이 부분에서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는 건 사실이다.

ⓒ뉴시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2017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월가를 상징하는 황소상에 맞서는 듯한 모습으로 세워진 ‘두려움 없는 소녀’상ⓒ뉴시스

양성평등, 필연적으로 흐름 정해져 있는 방향

그런데 인식이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앞서 필자와 대화한 중년 여성처럼 지금의 사회 시스템과 문화 정서에 익숙한 이들은 자신이 주체이건 대상이건 그것이 차별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양성평등은 이제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흐름이 정해져 있는 방향이다.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거나,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변화를 반대할 일이 아닌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있어 병원을 부담 없이 드나드는 우리는, 선진국이면서도 의료 민영화를 받아들인 미국의 병원 체험담을 괴담처럼 듣는다. 가벼운 처치만 받아도 수십만원, 웬만한 수술 후에는 수천만원의 청구서를 받는다는 그 나라에서 대체 불안해 어떻게 사는 건지, 선진국 국민이 어떻게 그런 시스템을 받아들인 건지 밖에서 볼 때는 의문투성이다. 하지만 막상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그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곤 한다. 크게 다치거나 아파 의료비 걱정을 하는 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과제를 제쳐두고까지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문제를 보는 시선 그대로 밖에서는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가 있다. 수많은 K문화를 생산해 내는 한국이라는 세련된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 그들의 시선에서는 기함할 만한 일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의 절반 이상이 남편이나 연인이 가해자인 사회, 첫 손님을 여자로 받으면 그날 장사 운이 없다며 식당에서 내쳐지는 일을 겪는 사회,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면 취업에 곤란을 겪는 사회는 결코 K팝만큼 쿨하지 않다.

한번은 번화가에서 밤늦게 택시가 잡히지 않아 큰 곤란을 겪었다는 말을 남성 지인에게 했을 때 그가 이렇게 되물었다. “걸어서 30분 거리인데 쉬엄쉬엄 걸어가지 그랬어요?”

자정을 넘긴 시간에 여자 혼자 걷는 게 무섭지 않겠느냐는 말에 끝내 수긍을 못 하는 눈치였다. 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그에게서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는 밤길이 무섭다며 바래다 달라고 부탁하면 흔쾌히 들어줄 만큼 좋은 사람이지만, 그런 부탁을 하게 만드는 두려움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양성평등을 외치는 여자들이 바라는 것은 기꺼이 집 앞까지 데려다줄 호의가 아니라, 배워서라도 여자들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혼자서 밤길을 걸을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남인숙 작가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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