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민들의 반문 “무기 없는 평화가 가능한가”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5 14: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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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 병력 재무장 요구 커져
숄츠 총리, 국방비 증액 천명

3월13일. 일요일인 이날 베를린·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독일 전역에서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사실 독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까지 전쟁 가능성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의 첫 신호탄이 발사되었을 때, 독일인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설마 전쟁이 나겠어?’라는 안일한 태도에서 기인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독일 주간지 ‘차이트’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기 위해 6억7000만 유로(약 8962억7000여만원) 상당을 기부했다. 이는 2004~05년 인도양 지진해일 이후 최단 기간, 최대 금액으로 알려졌다.

지금 독일 국민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크게 동요하고 있으며, 전쟁의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해 보이는 요구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쟁 전까지만 해도 독일에서는 ‘평화는 무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사회적 분위기를 지배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이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독일 시민의 다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을 지원하고 우크라이나에 독일이 보유한 모든 무기를 보내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내야 한다는 입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즉 러시아를 막기 위해서라면 총을 들고 대포를 쏘는 등 어떠한 방법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최대 35대의 F-35 전투기와 15대의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독일 의회 소식통 이 3월14일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군대를 현대화하기 위한 주요 추진 과제의 일부다. 사진은 KC-10 익스텐더 항공기ⓒAFP 연합

독일이 우크라에 지원할 건 헬멧 5000개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국방부에서는 병력이나 무기를 보내지 않고 오로지 헬멧 5000개만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해 큰 공분을 샀다. 그러나 전쟁 이후 사회 분위기가 변하면서 독일의 국방력에 대한 사회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독일 연방군이 보유한 대부분의 무기나 설비가 매우 낙후된 것으로 드러나 연일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실제로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헬멧 5000개밖에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조차 나올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은 전범국가로서 국방력 강화나 군비 확장 등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전 메르켈 정부는 국방력과 거리를 두어왔다. 하지만 그 결과, 현재 독일은 전투에 투입 가능한 설비가 50%에 불과하고, 무전기·전투복 등 기초장비 또한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실화된 전쟁의 위협은 독일 국민의 국방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처럼 변화된 인식은 지금 독일의 헌법상 독일 연방정부는 자국의 보호를 위해 병력을 채비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정부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이를 만회해야 한다는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숄츠 총리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올리고 그와는 별도로 1000억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추가 예산이 발표되고 나자 국방부 장관 크리스틴 람브레히트가 우선적으로 어디에 자원을 활용할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는 록히트마틴사의 F-35 전투기 35대 구입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결정의 원인으로는 전투기 구입의 시급성이 꼽히고 있다. 즉 무엇이 더 좋은지, 어떤 기종이 더 새로운지를 따질 시간조차도 없이 당장 투입이 가능한지만 가늠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독일 군방력은 현재 낙후되었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보완할 타이밍을 제공한다.

 

유가 상승으로 고통…연립정부 전전긍긍

뿐만 아니라 독일의 에너지 공급도 지대한 영향을 받아 독일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독일은 러시아에서 상당한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독일 에너지 전체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은 러시아에서 수입된다. 그만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경제 및 기후부 장관 로베르트 하벡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멈춰도 당장은 에너지 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숄츠 총리 또한 노드스트림2(러시아에서 독일까지 이어지는 가스관)의 허가를 무기한 보류시켰다. 독일 국립과학아카데미인 ‘레오폴디나’는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액화가스로 대체할 것과 장기적으로는 대체에너지를 활성화시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출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권교체 이후 에너지 소비에 대한 세율이 올라감과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한 인플레이션, 여기에 추가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중단은 독일 시민들의 부담을 몇 배로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독일 석유의 3분의 1은 러시아에서 수입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유가 역시 기하급수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리터당 경유 값은 전쟁 직전 1.6유로(약 2150원)에서 2.3유로(약 3100원)로 올랐으며, 고급휘발유는 1.85유로(약 2450원)에서 2.25유로(약 3030원)로 올라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유가를 통제하기 위해 각 정당에서는 대책을 내세우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류세 인하는 야당인 기민당에서 주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류세 중 부가세를 기존 19%에서 7%로 낮추자는 것이다. 좌파당 역시 이에 동의하며, 더불어 기초식품에 대한 부가세율을 아예 없애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더 줄여줘야 한다는 입장을 대변한다. 반면 녹색당 대표 리카르다랑은 일명 ‘에너지 지원금’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히며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가구당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미 현재 기초생활수급자에게 100유로(약 13만원)와 자녀가 있는 가정의 경우 아이 한 명당 20유로(약 2만7000원) 상당의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현 재무부 장관인 크리스티안 린드너는 애초에 부가세 감세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세율을 인하하면 국가 예산이 줄어들 뿐, 시민들의 부담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논지다. 그는 세율을 인하하기보다는 리터당 20센트 정도를 정부에서 부담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자는 주유소에 리터당 20센트를 덜 지불하고 주유소에서는 재무부에 인하된 금액을 청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정해진 바는 아니며,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합의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의 불꽃들이 꺼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반향으로 전 세계인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각국에서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나갈지 고민하는 현재, 독일 정부는 많은 과제 앞에 놓여있다. 무기 없는 평화는 가능한 것인가. 전쟁의 여파로 시민들이 받는 경제적인 타격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와중에 세 개의 정당으로 구성된 독일 연립정부는 관료주의적 절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독일 정부의 신속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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