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천재’라 불리던 이강인은 이렇게 월드컵과 멀어지나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6 16: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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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경쟁 밀리고, 팀은 강등 위기…‘활용하기 어려운 선수’라는 꼬리표부터 떼어내야

3월20일 이강인이 모처럼 선발진에 모습을 나타냈다. 에스파뇰과의 2021~22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29라운드에 그는 선발 출전했다. 소속팀 RCD 마요르카의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것은 2월2일 라요 바예카노와의 코파델레이(FA컵) 8강전 이후 8경기 만이었다. 그사이 7경기에 교체멤버로 들어온 이강인의 평균 출전시간은 23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날 모처럼 선발 출전한 것은 3월15일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에서 보여준 존재감 덕분이었다. 후반 33분 ‘일본의 미래’ 구보 다케후사 대신 투입된 이강인은 팀이 0대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시간까지 17분을 뛰며 위협적인 공격 장면을 세 차례 만들었다. 결국 마요르카는 1골을 더 내주며 0대3으로 완패했는데, 교체 투입돼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 이강인이 그나마의 소득이었다.

ⓒ연합뉴스
마요르카 이강인ⓒ연합뉴스

전반기는 주전, 후반기엔 벤치…반복되는 패턴

에스파뇰 원정에서 마요르카는 배수의 진을 쳤다. 리그에서만 5연패를 기록하며 강등권과 승점 2점 차에 불과했다. 20개 팀이 참가하는 프리메라리가는 18위부터 20위까지 세 팀이 다음 시즌 2부 리그로 강등된다. 루이스 가르시아 플라사 감독은 이전 경기에서 부진했던 구보 대신 이강인을 왼쪽날개로 세우는 4-4-2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전반부터 이강인은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풀백 하우메 코스타와의 2대1 플레이를 통해 에스파뇰의 측면을 뚫으려 했다. 센스 넘치는 로빙패스와 침투패스도 나왔다. 하지만 전반 42분 에스파뇰이 깔끔한 역습으로 선제골을 넣으며 마요르카는 무너졌다. 이강인의 번뜩이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결국 후반 15분 구보가 투입되며 이강인은 60분간의 출전을 마치고 그라운드를 나왔다.

마요르카는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6연패 수렁에 빠졌다. 경기 전 16위였던 마요르카는 강등권인 18위로 추락했다. 이강인에 대한 평가도 냉혹했다. 유럽축구 평점 전문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은 이강인에게 양팀 통틀어 가장 낮은 평점 5.9를 줬다. 스페인 대표 스포츠지 ‘마르카’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전통적으로 별 3개를 만점 기준으로 삼는데 마르카는 에스파뇰전 출전 선수 중 2명의 선수에게만 아예 별을 주지 않았다. 이강인이 그중 1명이었다.

지난해 8월 이강인은 유소년 시절부터 몸담았던 발렌시아를 떠났다. 특급 유망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충분한 출전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성장이 지체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팀의 내분과 파벌 싸움에 희생양이 되자 이강인은 미련 없이 팀을 떠났다. 동갑내기 일본인 미드필더 구보와 함께 마요르카에 합류해 한·일 양국과 스페인 현지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출발은 좋았다. 9월23일 첫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은 레알 마드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다. 마요르카가 1대6으로 대패한 가운데 이강인만 돋보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친정팀 발렌시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올리고도 퇴장을 당했지만, 그때도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12월4일에는 디펜딩 챔피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어시스트했고, 구보가 결승골을 터트리며 짜릿한 역전승을 올렸다. 한·일 듀오의 활약 속에 마요르카는 12위까지 올랐다.

전반기에 이강인은 리그 15경기에 출전해 평균 67분을 뛰었다. 80분 이상 뛴 경기도 8차례였다. 공격 포인트가 3개(1골 2도움)로 다소 아쉽긴 했지만, 이강인의 역할은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2월 중순부터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요르카는 리그 4연패에 빠졌고, 순위가 강등권 근처로 추락했다. 다급해진 루이스 가르시아 감독은 실리 축구 위주로 전술을 바꿨다. 겨울 이적시장 막바지에 긴급 영입한 194cm의 장신 공격수 베다트 무리키를 중심에 둔 단순한 축구를 지시했다. 무리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팀 합류 후 3경기에서 2골 1도움을 올린 그의 활약 덕에 마요르카는 2연승을 거두며 일시 반등했다.

이때부터 이강인의 입지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1월초 코로나19 확진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팀 사정상 경기에 나서야 했고 하필 이때 또 부진했다. 무리키를 중심으로 한 전술에서 가장 소외된 것도 결국 이강인이었다. 4-2-3-1 전형에서 4-4-2 전형으로 바뀌며 이강인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가 사라졌다. 장신 공격수를 살리기 위해 양 측면에 빠른 윙어를 두고 크로스 위주의 공격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프로 데뷔 후 이강인이 계속 마주한 패턴이다. 발렌시아에서도 시즌 중반까지 이강인은 출전시간을 확보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팀이 부침을 겪고, 결과를 내기 위한 전술 변화를 가져갈 때 가장 먼저 제외되는 것도 이강인이었다. 뛰어난 패스 센스와 킥, 탈압박 능력을 갖고 있지만 급할 때 필요한 것은 그런 고급 기술보다는 빠르고, 힘 있는 단순한 한 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감독의 선택지 중 이강인의 매력은 점점 줄어든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강인이 마지막으로 벤투호에 승선한 것은 지난해 3월 일본과의 친선전이 마지막이었다. 출전시간이 대폭 줄어든 최근 상황을 볼 때 이강인이 뽑히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전반기에 이강인이 마요르카에서 주전으로 활약할 때도 벤투 감독은 선발하지 않았다. 그사이 벤투호의 플레이 메이커 자리는 황인범(러시아 루빈 카잔)이 차지했다.

 

1년째 부름 없는 국가대표팀…벤투 플랜엔 이강인이 없다

이강인이 발렌시아와 마요르카에서 겪고 있는 딜레마는 벤투 감독이 그를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벤투 감독은 기본적으로 공격과 수비 전체의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경기의 지배를 강조한다. 미드필더들은 패스와 기술만큼 강한 압박을 구사하고,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안정감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부합하는 스타일이 ‘팔방미인’ 황인범과 이재성(독일 마인츠)이다. 패스 한 방으로 결정적인 찬스를 만드는 전율은 적지만, 경기 내내 부지런한 플레이로 공격진에 공간을 열어주고 공을 되찾아와 연결한다.

최근 축구의 전술적 흐름에서는 상대에게 공간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강도 높은 압박, 빠른 공수 전환이 필수다. 1명의 탁월한 플레이 메이커를 위해 팀이 희생하는 전술보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대거 분포되는 방식이 선호된다. 공이 없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최대한 공간을 커버해야 한다. 리그 하위권 팀에서도 이전과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건 이제 이강인 스스로에게 문제점을 물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멀어지는 카타르월드컵보다 현실적인 과제인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을 위해서라도 이강인은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강인 입장에선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강인은 활용하기 어려운 선수’라는 꼬리표부터 떼어내야 한다. 어떤 팀, 어떤 감독, 어떤 전술에서도 선호될 수 있는 선수임을 증명해야 소속팀, 각급 대표팀에서도 딜레마가 아닌 해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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