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위한 이전’이 정작 ‘소통 없는 이전’으로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6 14: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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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으로 불붙은 대선 연장전
‘청와대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당선인 결기, 공감 어려워

대선 승부가 판가름 난 3월10일은 ‘종전’이 아닌 ‘휴전’의 날이었다. 그것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 아주 짧은 휴전이 되고 말았다. 대선이 끝나기 무섭게 진영 간 전쟁을 재개시킨 것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문제였다. “당선 열흘 만에 불통 정권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한국에 ‘K트럼프’가 나섰다는 말이 떠돌고, 항간에는 ‘레임덕이 아니라 취임덕에 빠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현 청와대가 있지도 않은 안보 공백을 언급하면서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방해하는 행위는 대선 불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발목잡기를 중단하라.”(국민의힘 국방위원 일동)

ⓒ윤석열 당선인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2일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인수위원회 간사단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윤석열 당선인 제공

애초 공약이 ‘광화문 시대’였지 ‘용산 시대’는 아냐

아무리 전쟁 같은 선거를 치렀어도 이렇게 곧바로 신구 정권이 대결하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일단 패한 쪽은 결과에 승복하고 성찰하는 태도를 보이며 허니문 기간을 갖는 관행이 있어왔다. 그런데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결과를 놓고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생각을 품고 있던 민주당에 ‘용산 이전’ 결정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찬반 여론의 분열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끝내 논란의 트리거를 당긴 것은,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윤석열 당선인의 퇴로 없는 의지 표명이었다.

물론 “국민께 드리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윤 당선인의 진심은 그 자체로 받아들일 일이다.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국민을 제대로 섬기고 제대로 일하기 위한 각오와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그의 설명을 굳이 나쁜 의도로 해석하는 것은 정파적 태도일 수도 있다.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윤 당선인의 판단도 전혀 일리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찬반 여론의 분열과 대치 상황이다. 여야와 양쪽 지지자들은 다시 두 갈래가 되어 서로를 비난하는 격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대선이 낳은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내놓아야 할 이 시기에, 다시 분열을 낳고 갈등을 격화시키는 의제가 가장 먼저 던져진 것이다. 윤 당선인이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매달렸어야 할 최우선적 과제는 국민통합, 코로나 민생 챙기기 같은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사안들이었다. 그러한 방향성은 자신에게 표를 주었던 48.56%의 국민을 넘어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용산 이전 문제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말았다.

윤 당선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애당초 윤 당선인이 공약했던 것은 ‘광화문 시대’였지 ‘용산 시대’가 아니었다. 국민에게는 용산 이전은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러니 국민도 내용을 파악하고 문제가 없는지도 확인하며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윤 당선인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주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청와대로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라고 못 박아버렸으니, 일을 풀기가 더 어렵게 되어버렸다. ‘소통을 위한 이전’이라고 했지만, 정작 ‘소통 없는 이전’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는 안보 공백을 이유로 윤 당선인의 속도전에 제동을 걸었다. 현실적으로 문 대통령이 협조하지 않으면, 윤 당선인이 취임 전에 용산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국방부 청사를 비우라는 지시의 권한도 문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지, 윤 당선인에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신구 정권의 갈등 양상으로 비치면서, 대체 지금의 시국이 대통령 집무실 문제로 싸우고 있을 때냐는 국민의 소리를 듣게 되어버렸다. 이 문제가 갑작스럽게 정권교체기의 최대 쟁점이 되면서 모든 관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언론들은 연일 용산 이전의 문제점들과 그로 인한 신구 권력의 갈등 상황을 보도하고 있고, 정작 국민의 관심을 모아야 할 인수위원회의 활동상은 뒷전으로 밀려난 분위기다. 국민에게 정권이 바뀌니 무엇이 좋아지는가를 실감하게 했어야 할 윤 당선인이었건만, 스스로 정권교체 효과를 날려버리는 우를 범한 셈이다.

자신의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쳤음을 윤 당선인이 벌써 잊은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자신에게 표를 주었던 국민보다 그렇지 않았던 국민이 더 많은 당선인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국회 의석수를 합해 봐야 113석에 불과하다.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이 훨씬 많아지도록 집권 초기에 여론의 지형을 바뀌지 못한다면 국정운영의 동력은 확보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시작부터 여론에 맞서는 모습 돼선 곤란

물론 그렇다고 해도 대선 패배는 벌써 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윤석열 때리기’에 올인하는 민주당의 모습이 정상일 수는 없다. 5년 만에 정권을 내놓게 되었으면서도 별다른 반성과 변화의 모습조차 없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노라면 0.73%포인트 차이의 패배가 독이 되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용산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합리적 비판을 넘어 사실이 아닌 주장들을 얹어가며 정치공세에 매달리는 모습은, 네거티브로 대선을 치르던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용산 이전 문제에 대한 평가는 국민과 언론에 맡기고 민주당은 자신의 환골탈태를 우선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런 민주당의 태도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윤 당선인의 구상에도 무리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청사 이전에) 적어도 2개월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당선인이 밝힌 ‘조속한 용산공원 개장’ 구상 역시 “미군기지 반환 절차는 물론 오염 치유 과정을 거쳐야 해서 일정이 녹록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무조건 “새 정부 출범 준비를 방해하는 게 아니냐”라고만 비난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그들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절대로 청와대는 안 들어간다. 이렇게 청와대로 가는 건 권력에 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에 굽히지 않았을 때 다수의 국민이 지지를 보냈고 그 힘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집무실 이전 문제에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외골수 태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많은 국민에게 ‘청와대에는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기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용산 이전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칫 시작부터 여론에 맞서는 당선인의 모습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쯤에서 윤 당선인이 숨을 고르며 지금 자신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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