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불안한 벤투호, 손흥민 외 더 확실한 득점원이 절실하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2 16: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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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놓친 월드컵 최종예선 무패와 조 1위…벤투호 평가는 90점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새로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파울루 벤투 감독은 올해 1월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7·8차전을 모두 이기며 2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 여유롭게 본선행을 확정했다. 앞선 브라질월드컵과 러시아월드컵 예선 때 모두 최종전에서야 힘겹게 본선행 턱걸이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높이 평가받을 만한 성과다.

9·10차전에서 이란과 UAE를 만나게 된 벤투 감독은 본선행 확정에도 분위기를 더욱 조였다. 그는 A조 1위와 무패 기록으로 최종예선을 마무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3월2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9차전에서 2대0 완승을 거두며 그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섰다.

ⓒ연합뉴스
3월29일(현지시간) UAE 두바이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0차전 한국과 UAE의 경기가 0대1, UAE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 종료 뒤 손흥민 등 한국 선수 들이 관중석의 응원단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최종예선 중 가장 부진한 경기력으로 마무리

9차전까지 7승2무를 기록 중이던 벤투호의 최종예선 마지막 상대는 UAE였다. 지난해 11월 홈에서 1대0으로 승리했지만 골대만 세 차례 맞히는 등 내용 면에서 압도했던 터라 원정에서도 어렵지 않은 승부가 예상됐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코로나19 확진 문제로 나상호(서울), 백승호·김진규(이상 전북), 정우영(프라이부르크), 조규성·고승범(이상 김천), 박민규(수원FC) 등이 줄줄이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송민규(전북)는 경기 전날 훈련 중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 황의조·손흥민·황희찬 등 유럽파가 건재했지만 경기가 안 풀릴 경우 변화를 줄 카드가 부족했다. 변수는 또 있었다. 3위를 달리던 UAE가 이라크에 의외의 일격을 당하며 탈락 위기에 몰린 것이다. 당초 이라크를 꺾고 3위를 확정 지으려 했던 UAE는 최종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고, 총력전이 예고됐다.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한국은 UAE의 적극적인 압박에 고전하며 주도권을 내줬다. 정우영(알사드)과 김영권(울산)이 상대의 도전적인 플레이에 밀려 후방 빌드업에서 실수를 반복했다. 절박했던 UAE가 자신들의 홈에서 한국보다 더 강한 정신 무장을 보였다. 결국 한국은 후반 9분 김민재(페네르바체)를 비롯한 수비진의 미스로 초래한 위기에서 하리브 압달라 수하일에게 결승골을 허용했다. 황희찬·황의조 등이 골대를 때리는 등 수차례 공격을 시도했지만 결국 골문을 여는 데 실패했다. 최종예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였고, 내용 면에서도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갔다. 앞서 열린 경기에서 레바논을 꺾은 이란에 다시 1위 자리를 내주며 5일 천하에 그쳤다.

경기 후 벤투 감독도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연이은 발생으로 인한 완전치 못한 전력을 핑계로 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란전 승리 후 선수들의 느슨했던 정신력 문제를 거론했다. 경기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벤투 감독은 “오늘은 우리가 명확하게 잘못한 경기다. 패배는 정당한 결과다. 상대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나올 거라고 주의했는데 우리는 그만큼의 동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큰 값을 치렀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최악의 경기로 평가받는 지난해 3월 일본 원정에서의 0대3 패배 때도 하지 않았던 선수단을 향한 질타가 가장 강도 높게 나왔다.

이어서는 “내 책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래도 오늘처럼 하면 안 된다. 경기력도 태도도 모두 나빴다. 중요한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본선에서의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패배를 둘러댈 핑곗거리는 있지만 그것마저 극복해야 한다는 게 벤투 감독의 메시지였다. 대부분 우리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는 월드컵 본선에서는 이런 느슨한 태도와 정신으로는 힘들 거라는 현실적인 분석이었다.

UAE전을 포함한 최종예선 전체 과정을 살펴보면 벤투호는 좋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지배하는 경기’를 모토로 한 벤투 감독의 빌드업, 전방 압박의 철학은 최종예선 들어 완성된 내용과 결과로 증명됐다. 시작은 다소 불안했다. 이라크와의 홈 1차전은 0대0으로 비겼고, 이어진 레바논과 시리아와의 경기에서도 1골 차 신승을 거뒀다.

본선 진출 확정 후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에서 물러난 김판곤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은 “벤투 감독을 선임한 내 입장에서도 그 시점엔 걱정이 됐다. 하지만 대표팀 내부를 관찰했을 때 결국 우상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긴 시간 준비한 조직력과 팀원 간 신뢰가 단단했고, 코칭스태프의 분석과 대비도 괜찮았다. 손흥민·정우영 등 주축 선수들이 정상적으로 합류한 지난해 11월부터는 기대했던 경기력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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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이 3월29일 UAE 두바이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 조 10차전 UAE와의 경기에 앞서 그라운드를 살피고 있다.ⓒ연합뉴스

간판 스트라이커 황의조, 최종예선에서 한 골도 못 넣어

최종예선에서의 선전으로 FIFA 랭킹은 1년 사이 24계단이나 상승했다. 20위권 중반대를 유지 중인 벤투호는 월드컵 조추첨에서도 포트3를 확보, 유럽과 남미의 까다로운 팀을 피하며 본선에서 조금이나마 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본선행 조기 확정으로 불필요한 혼란도 막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부터 지난 러시아월드컵까지 8년 동안 5명의 감독이 거쳐간 시간은 한국 축구와 대표팀의 암흑기였다. 벤투 감독은 김판곤 전 위원장이 철저한 검증과 사전 정지작업을 통한 프로세스로 선임한 인물이었고, 그는 대표팀 최장수 감독이 됐다.

궤도에 도달했지만 추가적인 숙제도 남았다. 손흥민 외에 더 확실한 득점 루트 확보다. 이번 최종예선에서 13골을 넣은 벤투호는 손흥민이 4골을 책임졌고, 권창훈(김천)이 2골을 터트린 것 외에는 멀티득점 선수가 없었다. 특히 간판 스트라이커 황의조(보르도)가 최종예선에서 침묵에 빠졌다. 소속팀에서는 10골을 기록하며 득점 6위에 올라있지만, 대표팀에서는 10경기 연속 무득점 중이다. 경기가 안 풀릴 때 활용할 수 있는 세트피스 전략도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번 최종예선에서 코너킥과 프리킥에 의한 득점이 없었다. UAE와의 최종전에서는 무려 16개의 코너킥을 얻었지만, 위협적인 기회를 한 번도 창출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세트피스 전략은 가장 마지막에 다듬을 것이다”며 본선에 맞춰 집중훈련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UAE전 패배가 본선을 위한 예방주사라는 의견도 있다. 역대 최종예선에서 최고의 성과를 냈던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정작 본선에 가서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9차전까지 쾌속질주를 하던 벤투호가 쓰라린 패배를 통해 본선 경쟁력을 냉정하게 제고하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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