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보전쟁에서도 유럽에 밀렸다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5 11: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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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터 스타노 EU 외교안보정책 수석대변인 
“프로파간다 유포하는 러시아 매체들 봉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전쟁의 참혹한 폐해가 전 세계에 보도되고 있는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 없는 정보전쟁’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프로파간다를 유포한다며 사상 유례없이 러시아 관영통신사 스푸트니크 및 국영방송 RT의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외국 스파이법’ 등에 의거해 영국 BBC와 유로뉴스를 비롯해 독일의 빌드·도이체벨레 등 다수의 국제 매체 서비스를 금지했다.

EU와 나토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러시아의 프로파간다 캠페인과 관련한 대응 차원에서 자체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유럽대외협력청(EXAS) 산하 조직인 ‘동유럽전략소통본부(East StratCom Task Force)’를 운영하고 있다. 방대한 미디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허위 및 왜곡된 정보라고 판단한 뉴스에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EU vs Disinfo’ 프로젝트를 공식 웹사이트(https://euvsdisinfo.eu/)를 통해 알리고 있는데, 러시아 매체 RT의 ‘더 질문하라(Question more)’에 맞선 ‘더욱더 질문하라(Question even more)’를 모토로 삼고 있다. 시사저널은 피터 스타노 EU 외교안보정책 수석대변인을 3월24일 만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이슈들에 대해 물었다.

2021년 9월 슬로베니아 브르도에서 열린 EU 외교장관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는 피터 스타노 EU 외교안보정책 수석대변인ⓒ EU Council
2021년 9월 슬로베니아 브르도에서 열린 EU 외교장관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는 피터 스타노 EU 외교안보정책 수석대변인ⓒEU Council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정보전으로 간주된다. KGB 국장 출신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프로파간다 캠페인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나.

“한마디로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를 특정 국가와 계층을 대상으로 유포해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러시아를 대안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심지어 가(假)계정으로 소셜미디어에 허위정보를 생산·유통하는 약 300명이 동원된 장소가 존재하기도 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통 매체 외에도 다국적 언어를 제공하는 대안 웹사이트를 만들어 음모론 또는 특이한 서사를 유포하고 러시아 프로파간다에 동조하는 이들을 초대해 대중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극단적 성향의 정치인·활동가·싱크탱크 및 그룹 등에도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해외 외교공관도 참여하는 이 시스템은 복합적인 면을 지니며 러시아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3주 전 EU가 러시아 관영통신사 스푸트니크 및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영방송 RT의 차단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조치를 취한 것도 이런 맥락인가.

“이 매체는 정상적인 뉴스와 함께 조작된 정보도 함께 전하고 있다. 사실상 저널리즘이 아니라 프로파간다를 전하는 전쟁의 보조수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해 잠정적인 금지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러시아 기자들이 기자회견에 참가하는 것을 막진 않는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과거 소련은 1939년 스탈린 집권 당시에 “나치 독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폴란드를 침공했다. 지금 푸틴의 러시아는 탈나치화와 인종 학살 방지를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수많은 분석과 조사에 의하면 푸틴 정권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2주 전 유엔국제사법재판소는 러시아가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내 인종 학살은 근거가 없다며 무력침공을 즉각 중단할 것을 판결한 바 있다. 극우 성향으로 인식되는 아조프(Azov)대대 병력도 최대 1000명으로 분석되는데 우크라이나군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푸틴이 주장하는 그런 수준이 결코 아니다.”

최근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1991년 본에서 열렸던 미국·영국·프랑스·독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이뤄진 나토의 동진(東進) 금지 논의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나토의 동진으로 위협을 느낀다는 푸틴의 주장에 대해 EU는 어떤 입장인가.

“나토 동진을 금지하는 ‘법적 효력을 가진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 정치 지도자들의 개인적 차원의 약속은 나토연맹의 공동체적 합의를 대체할 수 없고, 공식적인 나토협약을 구성하지 않는다. 당시 협상 당사자였던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Russia Beyond the Headlines’라는 러시아 매체와의 2014년 10월 인터뷰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재확인한 바 있지 않나. 고르바초프는 이 인터뷰에서 ‘당시 나토 확장이라는 주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언급되지도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확실히 책임질 수 있다. 1991년 바르샤바협정이 소멸할 때까지도 동유럽 국가 중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서방 지도자들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는 가해자인 러시아가 타국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오랜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푸틴은 유럽이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냉전시대처럼 종속적인 관계로 여긴다. 동유럽과 발트해 국가들의 안보와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유럽 안보에 대해 자신이 미국과 논의하려는 것 자체가 푸틴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 떨어진 트로스얀네츠에 3월28일 우크라이나군이 국기를 꽂은 장갑차를 타고 진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틀 전 트로스얀네츠를 장악했던 러시아군을 몰아냈다.ⓒAP 연합

푸틴의 이번 우크라이나 선제공격은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에 대한 명백한 위배라고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핵 포기 대가로 러시아·미국·영국으로부터 자국 주권과 영토에 대한 보장을 받았고,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약속받았다.

“맞다. 이 외에도 러시아는 영토와 주권을 보장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주요 문서들인 헬싱키 최종합의서(1975), 파리헌장(1990), 나토-러시아 기본의정서(1997), 유럽 안보헌장(1999) 등 러시아 스스로가 승인한 다수의 국제협정을 위반했다.”

2021년 러시아 국방장관은 시리아 내전에서 320종의 무기를 시험했다고 러시아 방송에서 발언한 바 있다. 수많은 유엔 보고서와 조사에도 러시아에 면책권을 준 결과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동의한다. 시리아 내전에서 독재자 아사드 대통령은 40만 명의 자국민을 드럼통 폭탄으로 잔인하게 죽였다. 아사드와 푸틴은 시리아 내전에서 무기와 전술을 테스트했고, 국제사회의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러시아-조지아 전쟁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던 국제사회 공동체의 총체적 실패다. 우리는 푸틴의 무모함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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