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부하 해군 성폭력’ 2명에 무죄와 파기환송…“시대 역행한 판결” 비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3.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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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4개월 만의 대법원 판결…가해자들 1심 징역 10년·8년→2심 무죄로 뒤집혀
한 명은 무죄 확정, 다른 한 명은 원심 파기 환송 “같은 피해자 진술인데 엇갈린 판결, 모순이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이 끝난 뒤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이 끝난 뒤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하 여군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해군 장교 2명에 대해 31일 대법원이 각각 무죄와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10개 단체가 모인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해할 수 없고 시대를 역행하는 ‘반쪽짜리 판결’”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같은 피해자, 엇갈린 판결…이유는

2010년 해군 1함대에서 벌어진 해당 사건은 피해 여군 A대위(당시 중위)가 직속상관 B소령과 C대령(당시 중령)에게 연이어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다(2018.03.26 시사저널 '[단독]軍 첫 미투 폭로···‘성폭행 피해’ 女장교 인터뷰' 기사 참고). 이날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소수자인 피해자에게 “남자 경험을 알려주겠다”며 여러 차례 성폭행·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는 해군 박 모 소령에 무죄를 확정했다. 또한 박 모 소령과의 일을 털어 놓은 피해자를 되레 협박해 성폭행을 한 혐의의 해군 김 모 대령에 대해선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가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두 장교는 1심에서 군인 등의 강간치상 혐의로 각각 징역 10년과 8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무죄 당시 재판부는 “7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한 후 피해자 기억에만 의지한 진술은 사실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지난 2018년 군검사가 상고했고, 3년 이상 계류된 끝이 이날에서야 결론이 난 것이다.

대법원은 두 가해 장교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린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들었다. 재판부는 “비슷한 시기 동일한 피해자를 상대로 저질러진 범죄라도, 피해자나 관련 당사자의 진술 등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이 끝난 뒤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이 끝난 뒤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눈물도 안 난다”던 피해자, 판결 후 “다시 절망 속으로”

피해자는 사건 후 오랜 기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등 지속적으로 군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2018년 2심에서 가해자들에 무죄가 선고된 직후 피해자는 시사저널에 “이제 더는 눈물도 안 난다”며 “3심 대법원 준비를 잘 해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법원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내렸고, 이는 시대를 역행하는 반쪽짜리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법률 대리를 맡은 박인숙 변호사도 “피해자는 한 사람인데 하나의 판결에서는 신빙성을 인정하고 또 다른 판결에선 이를 부정하는 것이 상당한 모순”이라며 대법원을 규탄했다.

도지현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에 의해 피해자의 입장문도 대독됐다. 피해자는 “3년을 넘게 기다렸다. 파기환송 소식에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다시 절망 속에 빠졌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성적 소수자라는 점을 알고도 강간·강제 추행을 일삼고 결국 중절수술까지 하게 한 자를 무죄로 판단한 대법원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법원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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