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사면’ 둘러싼 문재인 대통령의 딜레마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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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패키지 사면’ 시 여론 악화 불가피…지방선거 ‘역풍’ 우려도

“대통령이 직접 풀어주기엔 넘을 산이 높다.”

지난 대선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정권까지 교체된 상황에서 사면을 결정하는 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우려한 사면의 대상은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아니다. ‘친문(親文) 적자’로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다.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사면할지를 두고 여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MB사면’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정치 사범’인 김 전 지사를 사면하는 건 더욱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전 지사를 사면했다가는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2년 실형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2021년 7월26일 수감 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2년 실형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2021년 7월26일 수감 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58.7%, MB‧김경수 사면 반대…악화된 여론

그간 문 대통령은 사면과 관련해 ‘국민공감대 형성’과 ‘정의’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5월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는 “전임 대통령 두 분이 지금 수감 중이라는 사실 자체가 국가로서는 참 불행한 일”이라면서도 “그것이 국민 통합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하고, 한편으로 사법의 정의, 형평성, 국민 공감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MB와 김 전 지사 사면을 고민하는 것도 본인이 내세운 명분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데이터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3월28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에게 실시해 3월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두 사람에 대한 사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58.7%(적극반대 36.6%·다소반대 22.1%)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

중도층은 56.3%가, 진보층은 78.6%가 사면에 반대했다. 특히 진보층에서는 57.8%가 ‘적극반대’한다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지사 사면을 어느 정부의 몫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43.5%가 윤석열 정부의 일이라고 응답했다. 현 정부의 역할이라는 응답자는 37.3%에 그쳤다.

윤 당선인 측도 청와대에 MB사면을 요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당장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 산적한 현안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윤 당선인이 전 대통령 사면을 입에 올리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직접 사면하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MB는 고령의 노인이자 오랜 기간 수감된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그보다 젋은 정치 사범(김 전 지사)을 풀어준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MB를 사면하지 않는다면 김 전 지사도 사면하지 않는 게 맞다. MB를 사면한다고 해도 김 전 지사를 ‘패키지’로 사면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딜(deal‧거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식구’ 감싸다가 6월 지방선거 역풍?

민주당 내에서도 김 전 지사 사면을 두고 부정적인 분위기가 읽힌다. 문 대통령이 김 전 지사와 MB를 동시에 사면하는 순간 국민의힘이 예고했던 ‘패키지 사면설’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MB 사면과 김 전 지사 사면은 철저히 분리해 논의돼야 한다는 게 민주당 의원들의 중론이다.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3월16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MB와 김 전 지사를) 패키지로 사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건 적절치 않은 얘기”라며 “누구도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김두관 민주당 의원도 CBS 라디오 《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해 “김 전 지사 사면 문제를 (MB 사면과) 같이 묶어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정략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했을 때 오는 여러 가지 비판과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어떻게 고민하실지는 좀 두고 보고 싶다”고 했다.

당 일각에선 ‘친문 적자’로 평가되는 김 전 지사가 사면되면 ‘새로운 민주당’을 주장하는 ‘이재명계’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기에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도 변수다. ‘조국 사태’ 등으로 등을 돌린 중도층을 공략하려면 ‘제 식구’에게 더 엄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초선 모임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촛불정부 5년 만에 정권교체, 탄핵세력의 화려한 부활 책임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게 있다”며 “기득권 내로남불, 단체장 성추행 사건,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비롯된 정권 심판론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다가온 6.1 지방선거와 관련해 “사회적 약자와 중산층을 위한 민주당의 정체성 재구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김 전 지사는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드루킹’ 김동원 일당과 공모해 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돼 있다. 만기 출소는 내년 5월로, 김 전 지사는 사면‧복권되지 않을 경우 출소 후에도 2028년까지 5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기사에서 인용한 설문조사는 무선(99%)·유선(1%)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2%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데이터리서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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