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에 ‘한동훈’ 맞불, 극한 대치 속 숨겨진 포석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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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기관 틀어쥐겠다는 尹, 사전 차단하겠단 與
지방선거 앞두고 여야 모두 지지층 결집에 집중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동훈 지명’으로 응답했다. 이로써 새 정부 내각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와 6·1지방선거 등 굵직한 이벤트를 앞두고 여야 간 ‘검찰개혁 대전’의 서막이 제대로 열렸다. 대선의 연장전으로 ‘절반의 정치’가 다시 시작됐고 대선 때 약속한 여야 협치는 더 멀어졌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를 27일 남겨 둔 4월12일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숙원사업’이던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4월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해 5월3일 문 대통령이 의결할 수 있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를 공포하는 일정을 못 박았다. 윤석열 정부의 손에 어떠한 선택권도 주지 않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대한 윤 당선인의 답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카드’였다. 그는 ‘윤석열의 분신’으로서 현 정부·여당과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며 또 다른 ‘윤석열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다. 지명 후 한 후보자의 일성은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반드시 저지하겠다”였다. 민주당은 “검찰 사유화를 노린 인사 테러이자 정치 보복 시도”라며 즉각 이를 ‘전쟁 선포’로 해석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당론 채택에 윤 당선인의 한 후보자 지명으로 정국은 여야 정면 충돌로 치달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부터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대치를 시작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오른쪽) 내정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4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오른쪽)을 지명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여야, 새 정부 출범도 전에 강대강 대치 예고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서두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현 정부 임기가 끝나면 검찰개혁 기회가 없을 거란 판단이 깔려있다. 국회 다수 의석이 있지만, 대통령 거부권을 넘기엔 의석이 부족하다. 

정치적 위협도 느끼고 있다. 대선 당시 윤 후보는 ‘검찰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검찰 권한 강화를 공약했다. ‘집권 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 대선 후에는 법조계에 반대 바람이 부는 걸 체감하고 있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받고 있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반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는 징역형 구형이 나왔다. 김오수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의 집단 반발은 이미 시작됐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차기 정부가 대장동 의혹을 고리로 ‘대권주자 이재명’을 옭아맬 것이란 의혹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미 ‘윤심(尹心)’을 대리하고 있다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경기지사에 출마해 연일 대장동 의혹을 때리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했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칼끝을 들이밀 것이라는 의심도 여전하다. 

이런 와중에 ‘한동훈 카드’가 나왔다. 민주당은 경찰 조직을 아우르는 행정안전부 장관에 윤 당선인의 또 다른 측근인 이상민 법무법인 김장리 대표를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이 대표는 윤 당선인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후배이자 법조인 출신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인이 핵심 사정기관인 검찰과 경찰 두 조직은 본인이 직접 쥐고 가겠다는 선언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동훈 카드는 사실상 윤 당선인이 향후 야당과의 통합과 협치를 원천 차단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민주당의 검찰개혁 외침에 명분을 키워주고, 검수완박을 망설이던 민주당 분위기를 강경하게 만든 효과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의 검수완박을 막을 명분도, 정의당에 협력을 요구할 동력도 잃었다는 지적이다. 임기 시작 전부터 거대 야당과 정면 대결하는 국면은 윤 당선인에게 내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검수완박' 두고 극한 대치, 지방선거에서 누구에게 유리할까 

지방선거에 초점을 두고 봤을 땐 민주당의 검수완박 속도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판세가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을뿐더러 검수완박 자체에 대한 여론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이 법안을 처리하고자 하는 4월엔 내각 인사청문회와 인준 절차 등 다양한 현안들이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다른 현안들에 앞서 검수완박만 밀어붙일 경우 민주당을 향한 여론이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내 강경론자들은 일부 중도층의 이탈이 있을지언정 지지층 결집으로 실보다 득이 클 거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이나 총선과 비교해 비교적 투표 의지가 약한 지방선거에선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검수완박은 어차피 지지층 확장보다 ‘집토끼’ 결집을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를 완수하지 못하면 이미 민주당이 불리한 지방선거에서 집토끼마저 놓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동훈 카드로 당 의원들과 지지자 결집력은 더욱 강해진 상태”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극한 대치를 지속한다면 일정 부분 민주당 내 결집은 이룰 수 있겠지만 그 분위기가 선거 정국에서 질 곳을 이기도록 뒤집진 못할 것”이라며 “골수 지지자들에 대한 강박은 결국 민생 해결을 원하는 국민 다수와 유리된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당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검수완박을 강행하고 민심을 살피지 않으면 ‘지민완박(지방선거 민주당 완전 박살)’이 될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3차 정책의원총회에서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모두발언을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4월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3차 정책의원총회에서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모두발언을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약속한 정치개혁은 뒷전으로 미룬 민주당

민주당은 12일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의 당론 채택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 꺼풀 걷어보면 당내 검수완박의 속도와 내용, 정치적 의미 등과 관련한 이견들은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한동훈 카드로 감정적 결집은 이뤄졌을지라도 이성적 설득은 여전히 충분치 못한 상황이다. 권지웅 민주당 비대위원은 “다시 검찰개혁을 1순위로 내세우는 민주당 모습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이 두렵다. 민주당 입법 우선순위와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이 다시 논의되길 바란다”며 만장일치로 당론이 채택됐다는 발표의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검수완박 완수 말고 당장 챙겨야 할 민생 현안, 정치개혁 등이 뒷전으로 밀리는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정치개혁의 경우, 시간상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리가 시급한 사안임에도 12일 의원총회에서 논의된 개혁안 가운데 유일하게 당론 채택이 불발됐다. 여야 간 합의가 채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민주당은 대선 막바지이던 지난 2월 말 검수완박이 아닌 정치개혁의 당론 채택을 약속한 바 있었다. 

이를 두고 정의당 등에선 검수완박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면서 정치개혁은 ‘야당과의 이견 때문에’ 미루는 건 이중 잣대라며 민주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동훈 지명이라는 윤 당선인의 초강수와 검찰의 배수진, 협력해야 할 정의당의 반대와 미적지근한 여론까지 검수완박을 선포하고 퇴로마저 막아버린 민주당은 지금 여당으로서 험난한 마지막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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