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과 르펜의 재대결, 젊은 층 기권표가 변수
  •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1 11: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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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극좌 멜랑숑 지지자의 선거불복 운동 격화 조짐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4월10일 진행됐다. 당일 저녁에 발표된 결과는 여론조사기관들의 예상과 대부분 들어맞았다. 현직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7.8%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극우보수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후보가 23.1%로 뒤를 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쟁은 따로 있었다. 극좌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21.4%를 득표해 2위 르펜 후보와 1%포인트대 초박빙 접전을 펼친 것이다. 나머지 9명의 대선후보는 모두 10%를 넘지 못했다.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며 한때 15%대 지지율을 기록하던 에릭 제무르 후보와 공화당(LR) 첫 여성 대선후보 발레리 페크레스는 각각 7%와 4%에 그쳤다.

어떤 후보도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하면서 프랑스는 4월24일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두 사람의 결선 승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도 두 사람은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다. 당시엔 마크롱 대통령이 30%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둔 바 있다.

ⓒEPA 연합 ·AP 연합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왼쪽 사진)과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후보ⓒEPA 연합 ·AP 연합

마크롱은 겹악재, 르펜은 동정 여론 확산

흐름과 분위기를 좀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등으로 결선에 올랐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 하락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안정적인 국정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지지율이 소폭 올랐지만, 대선 막바지에 다시 하락세를 보였다. 다만 이번 1차 투표 성적이 2017년 1차 때보다 3%포인트 정도 상승한 점에 비춰보면, 임기 말 혹한 평가를 받던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에 비해 나름대로 양호한 성적이란 평가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에는 복합적 원인이 존재한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의 디렉터 프레데릭 다비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의 원인을 ‘1차 대선 토론의 일방적 불참’으로 봤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발표하고 상대 후보를 검증하는 토론 자리를 마크롱 대통령이 일부러 회피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지탄을 받았던 마크롱 대통령의 권위적이고 제왕적인 모습이 이번에도 국민적 반감을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선 막바지에 발생한 각종 의혹도 마크롱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선 마크롱 정부가 미국 회계전문 기업 맥킨지에 과도한 자문료(약 1조2000억원)를 지불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맥킨지가 엄청난 영업수익을 냈음에도 프랑스에서 법인세를 납부하지 않은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나 더욱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의혹은 ‘맥킨지 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는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도 주요하게 거론된다. 노동계의 입김이 비교적 강한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은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은퇴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64세 이전에 퇴직할 경우 보너스를 포함한 연금 전액 수령을 불가능하게 하는 마크롱의 연금 개혁은 프랑스 국민의 큰 반발을 샀다. 대선 정국 들어 정부가 연금 개혁 임시철회를 발표했지만, 이미 그에게 각인된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악재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르펜은 상승세다. 당초 에릭 제무르로 대표되는 새로운 극우보수 정당 르콩케트의 등장으로 전통적 극우보수인 국민연합의 세력 약화가 예상되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 결과가 펼쳐졌다. 1차 투표가 한 달 남은 시점에 르펜 후보는 지지율이 11%포인트 가까이 상승하며 1위 후보 마크롱과의 격차를 대폭 줄였다.

예상과 달리 르콩케트의 등장이 되레 르펜 후보를 도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창당 전부터 제무르 후보는 국민연합 지지자들을 노골적으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펼쳤다. 이미 대선에서 한 차례 패배한 정치인 르펜 후보를 대신해 극우보수 진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그의 구호에 르펜 후보의 집안 인사들까지도 제무르 후보를 지지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르펜 후보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울음을 참으며 “감당하기 힘들다”고 토로하면서 동정 여론을 일으켰다. 여기에 르펜 후보가 베일에 감춰져 있던 자신의 소소한 일상들을 공개하면서 더욱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프랑스 언론 레제코(Les Echos)의 분석이다.

또한 프랑스 정치평론가들은 르펜이 2017년 대선 당시 악마에 가까웠던 극우 이미지에서 현재 비교적 ‘보편화’돼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反)이민 정책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던 2017년 때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 르펜은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실질적 민생 의제들에 집중하고 있다. 30세 이하 소득세 폐지, 기초연금 인상 등 국민의 구매력 증진을 이번 대선의 중요 의제로 채택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반이민 정책을 강력하게 밀고 나갔던 제무르 후보는 7%대의 초라한 득표율을 얻은 반면 르펜은 23%의 득표율을 차지하게 됐다.

ⓒAP 연합
4월10일 프랑스 여론연구소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의 1차 투표 득표율 추정치를 발표하고 있다.ⓒAP 연합

1차 선거 불복 대학생들, 동시다발 점거농성 

결선투표를 열흘 정도 앞둔 4월14일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1차 투표에서 1%포인트 차이로 3위에 그친 극좌 성향의 멜랑숑 후보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다. 1차 투표에서 프랑스 젊은 층은 멜랑숑 후보를 대거 지지했다. 1차 투표 후 그를 지지했던 대학생들 사이에선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들은 “마린(르펜)도 아니고 마크롱도 아니다(Ni Marine, Ni Macron)”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불복 운동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인 기후변화와 대학생 빈곤 문제에 대해서도 결선에 오른 두 후보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현지시간 4월13일, 12세기에 지어진 소르본대학, 파리1대학 톨비악 캠퍼스 등 여러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학생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프랑스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68운동’의 부활이라고 할 만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68운동은 1968년 소르본 대학생들의 봉기로 시작된 저항운동으로, 진보적인 가치가 프랑스 사회 전반에 주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학생 봉기가 구체적으로 결선투표에 얼마나 파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다만 멜랑숑 후보가 1차 투표 직후 “르펜에게 한 표도 내어줘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이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편에선 2017년 대선에서 젊은 층이 마크롱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바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의 투표 거부가 마크롱 대통령에게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젊은 층의 기권표가 대거 발생할 경우, 그 외 세대에서 단단한 지지층을 확보한 르펜 후보가 유리한 흐름을 가져갈 수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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