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 전직 의원의 쓴소리 “민주당, 유능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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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국교 전 민주당 의원의 반성
“86세대와 직업 정치인들 물러날 때 됐다”
“합리적 목소리에도 ‘내부 총질’이라며 공격…광팬이 선수 망쳐”

“민주당은 유능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로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세력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점을 반성하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야 한다.” 자당을 향한 정국교 전 의원의 쓴소리는 거침없었다. 그의 진단은 ‘지금 이대로면 앞으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 대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당내 평가들을 향해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패배한 사람들의 정치적 책임 모면을 위한 언급으로는 황당하다”고 일갈했다.

본인 또한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세대인 정 전 의원은 “86세대와 직업 정치인들은 능력 있고 참신한 청년 세대들에게 당의 주도권을 물려주고 물러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선대본부 미래경제단장을 맡았고, 18대 국회의원과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김부겸 국무총리의 측근으로도 분류된다.

정국교 전 민주당 의원이 4월13일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정국교 전 민주당 의원이 4월13일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졌지만 잘 싸웠다’는 내부 평가도 있다.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패배한 사람들의 정치적 책임 모면을 위한 언급으로는 황당하다. ‘졌잘싸’는 지지하고 응원하던 사람들이 패배한 선수를 격려할 때 하는 말이지 선수나 감독이 언급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5년 만에 정권교체가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진보 세력이 정권 교체로 집권을 한 것은 김대중, 문재인 정권 두 번인데, 되돌아보면 김영삼 정권의 국가 부도, 박근혜 정권의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덕분이다. 그마저도 되돌아보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정권 연장을 하려면 외연을 확대하는 정치를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정치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정치가 반복된다면 진보 세력의 재집권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다.”

대선 과정에서 극심했던 내부 갈등이 주요 패배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당을 빨리 화합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하는데 현재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목소리가 나와도 ‘내부총질’이라고 공격한다. 광팬은 선수를 망치는 법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당원들의 의견이 강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보편적이지 않은 의견을 적절치 못한 방법으로 전달하고 그걸 관철시키기 위해 문자폭탄 등 집요하게 압박하는 행태가 계속 벌어진다. 아주 건강하지 않은 현상이다. 또 172명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조직력을 결집하지 못한 것도 또 다른 패인이다.”

조직력 결집이 안 됐던 이유는 뭐라고 보나.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현 민주당 상임고문)의 측근들이 담을 치고 근접도 못하게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 후보 측근들이 당 조직에 승리의 전리품을 공정하게 나누어 줄 것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한 것에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선거 이후로도 ‘원팀’이 쉽사리 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선거 직후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과정에서도 이견이 많았는데.

“2024년 총선 공천권을 가진 대표를 선출하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의 이익을 위해 당권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시작됐다고 본다. 무엇보다 ‘소 잃은 외양간에서 코뚜레를 차지하려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내준 패배의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세력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가면 또 진다.”

민주당이 어떤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보나.

“이번 대선에서 20~30대 남성들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지지로 윤석열 후보(현 당선인)를 지지하였고, 여성들은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을 지지하여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대선 패배 후에 20대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이 증가한 것도 박 비대위원장에 대한 높은 지지 덕분으로 본다. ‘수구꼴통’이라고 비난을 받던 국민의힘이 이준석이라는 30대 청년을 당 대표로 선택하였을 때 민주당의 위기는 시작됐다고 본다. 국민의힘이 개혁으로 진통을 겪는 동안 민주당은 기득권 정치인들의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국민들에 대한 진정한 존중도 없었다. 정책, 이념, 공천 시스템의 개선, 세대교체, 인적 청산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86세대와 직업 정치인들은 능력 있고 참신한 청년 세대들에게 당의 주도권을 물려주고 물러날 때가 됐다. 힘 있는 사람이 장막 뒤에서 낙하산식 공천을 하는 방식도 근절하고 지역 당원과 주민들에게 공천권을 주어야 한다. 민주당은 유능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로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세력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점을 반성하고 와신상담하여야 한다.”

민주당도 지난 총선에서 젊은 초선 의원들이 대거 진입했지만,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나이는 청년인데 기성 정치인 보다 더 질 낮은 정치를 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많아서 우려와 실망을 하고 있다. 세대교체는 단순한 나이가 아닌 정치 혁신에 대한 신념과 능력을 가진 청년들로 이뤄져야 한다.”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 최재성 전 의원, 김부겸 총리 등 민주당 일부 86세대와 그 윗 세대가 은퇴를 선언했거나 계획하고 있다.

“훌륭한 정치인들의 은퇴는 안타깝기도 하다. 무엇보다 86세대 정치인들의 퇴진은 진보, 보수 정치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진보 정치에 투신한 86세대는 물러나야 하고, 보수 쪽에 있는 86세대 정치인들은 계속해도 된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새 정부와 172석 민주당의 충돌이 예상된다.

“야당이 여당과 정부의 실패를 기대하고 발목을 잡는 한국 정치의 악습은 종식돼야 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여 다음 총선에서 참패하고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에 다수당을 내줬다. 어떤 정치 세력이던 불합리한 이유로 다수의 횡포를 부리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야당과의 협치 없이 일방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간다면 2024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은 어떻게 보나.

“검수완박으로 검찰을 개혁하여야 한다면 검찰 개혁을 논의하던 지난해에 했어야 했다. 우선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고 그 다음에 수사권 공백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자는 것도 적절하게 보이지 않는다. 있는 죄를 덮어주고 없는 죄를 만들고, 제 식구 감싸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은 반드시 개혁돼야 하지만, 그 시기와 의도의 순수성에 대해 오해받을 만한 부분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인수 작업이 한창인 윤석열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특히 인사와 관련해 논란이 많다.

“윤 당선인이 참신한 인선을 자신하지 않았나. 기대가 있었는데 상당히 아쉽고,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다. 너무 오래되고, 지난 정권에서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 20~40대 젊은 세대 중에 능력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지명도 상당히 파장이 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에 대해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여야 대립의 중심에 있는 인사를 굳이 지금 임명해야 했을까 싶다. 전쟁하자는 의도가 아닌가. 이렇게 되면 검수완박에 저항감을 가졌던 사람도 오히려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

김부겸 총리의 측근으로 새 정부 유임설이 돌았을 때 ‘윤 당선인 측에서 직접 타진하라’는 SNS 글을 작성해 주목된 바 있다.

“글 취지에 오해가 있었다. 설사 윤 당선인 측에서 유임을 요청했다고 하더라도 김 총리는 받아들일 생각도 없는 분이다. 만에 하나 총리 유임을 고려에 두었다 하더라도 당선인이 직접 연락하는 것이 합당한 방식이지 주변에서 마치 유임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 피우는 결례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인데, 언론이 앞뒤 다 자르고 직접 연락하라는 한 줄을 강조하면서 있었던 해프닝이다.”

김 총리가 정계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정치하고 절연하고 다른 방식으로 청년들과 국민께 보답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계획하고 있나.

“저도 86세대다. 정치 일선에서 후배들과 자리를 다툴 나이도 지났다. 좋은 후배들이 정치를 혁신하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동량이 될 수 있도록 거들어 주는 역할로 충분한 나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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