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에 0~10점 점수 매기고, ‘벽치기’ 교육 제안도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8 12: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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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몸무게 80kg, 여자 60kg 넘으면 연애할 자격 없다”
일본 정부 주관 연구회의 황당한 발표자료에 열도 발칵

일본 내각부 산하 남녀공동참가국이 주관하는 결혼 및 가족 관련 연구회에서 “남자는 몸무게 80kg, 여자는 60kg을 넘으면 연애할 자격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 초콜릿을 받지 못하면 평생 못 받는다”와 같은 내용을 포함한 발표자료를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관하는 연구회의 공식 발표자료라는 점에서도 충격적이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한 세이케이대학(成蹊大學) 고바야시 준 교수(사회학 전공)가 ‘인생 100세 시대의 결혼과 가족에 대한 연구회’에서 발표한 자료이며, 카바쿠라(카바레와 클럽을 합친 말로 룸살롱의 일종) 여성 종업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 커지고 있다.

해당 연구회는 미혼, 1인 가구의 증가, 평균 초임(初妊) 연령의 상승, 이혼 증가 등으로 ‘가족’의 형태가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일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결혼과 가족의 변화 양상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고, 그에 따른 과제를 정리한다는 목적에서 지난해 5월부터 개최되고 있다. 이 연구회는 대학교수 4명을 포함한 사회학, 인구학, 경제학 전문가 6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REUTERS
3월30일 일본 도쿄의 남녀 시민들이 우에노공원에서 활짝 핀 벚꽃 아래를 거닐고 있다.ⓒREUTERS

“미남·미녀일수록 연애 경험 더 많아”

4월7일 열린 제11차 연구회에서 고바야시 교수는 “연애를 하면 수입과 행복감이 증가하는가” “남성은 초식화(이성에 대한 관심을 잃거나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게 되는 현상)되었는가” “미남·미녀일수록 연애를 더 하는가” “가난한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4가지 질문을 제기한 뒤, 설문조사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에 기반해 이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먼저 연애와 수입, 행복함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연애 경험이 많을수록 결혼을 하고, 부유하며, 행복하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남성의 초식화에 대해서는 “남성이 초식화된 반면, 여성은 육식화(연애에 적극적으로 되는 현상)되었다”고 지적했다.

외모와 연애 경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미남일수록 1.7배, 미녀일수록 1.5배 연애 경험이 많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설문조사자가 조사 대상자의 외모를 평가해 0부터 10까지 수치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가난과 연애에 대해서는, 가난할수록 연애 경험이 적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와 같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고바야시 교수는 “연애는 행복의 동력이 되지만, 연애 기회에는 격차가 있다”면서 “일본 정부의 결혼 지원사업 안에 ‘연애 약자’들을 위한 연애 지원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연애 지원 교육이 필요한 사항으로는 ‘벽치기’(壁ドン·이성을 벽에 밀어붙이고 손으로 벽을 강하게 치는 행동), ‘고백’ ‘프러포즈 연습’ ‘연애 세미나’ ‘외모 개선 세미나’ 개최 등을 나열했다.

고바야시 교수의 발표 내용에 대해 일본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대학원생 N은 “이런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을 정부 회의에 부르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청년들의 연애 이탈 및 혼인율 저하를 해결하고 싶다면 다양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더 필요하다”면서 “젊은이들의 초식화라며 문제를 왜소화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 기반이나 정세에 시선을 두고 개선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밝혔다. SNS상에서는 ‘상대방에 위압감을 주어 도망가지 못 하게 한다는 점에서 데이트 폭력의 체크리스트에도 들어가는 항목’인 벽치기를 정부의 교육 사항으로 제안하는 것에 대한 우려나, “연애 약자라는 표현 자체가 차별적이다”는 지적도 나타나고 있다. 저널리스트 나카노 마도카는 “벽치기 외에도 당혹스러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며 “이게 정말 레이와(令和·2019년부터 사용되고 있는 일본의 연호) 시대에 실시된 정부 회의인지 의심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에서 논란이 된 ‘벽치기’ 관련 교육 자료ⓒ야마구치 토모미 트위터

“이게 정말 레이와 시대의 정부 회의 맞나”

논란은 정치권까지 확대되었다.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의 고니시 히로유키 참의원 의원은 “교육으로 이것(벽치기, 고백, 프러포즈 연습 등)을 한다는 제안이 놀랍고 무섭다”며 “개인의 존엄성에 기반한 인격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 (고바야시 교수를) 위원으로 선임한 내각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부 주관 연구회에서 이뤄진 발표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자 내각부 남녀공동참가국 담당자는 “(고바야시 교수의) 개인적 견해와 제안으로, 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연애도 결혼도,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다. (연구회의) 보고서는 특정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내용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내각부 남녀공동참가국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발표자료를 확인한 결과 ‘남자는 몸무게 80kg, 여자는 60kg을 넘으면 연애할 자격이 없다’와 같은 문제의 내용은 고바야시 교수의 견해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저서 《미용 자본: 왜 사람들은 외모에 투자하는가》 및 《변모하는 연애와 결혼》 집필을 위해 실시한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해당 내용은 ‘미남일수록 1.7배, 미녀일수록 1.5배 연애 경험이 많다’는 분석 결과와 함께 제시되어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데이터 분석 결과 및 조사 대상자의 인터뷰를 통해 연애에서 ‘외모’라는 요소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대상자가 카바쿠라 종업원이었다는 점에서도 정부 주관 연구회에서 해당 인터뷰를 활용하는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시민 중 일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카바쿠라 종업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인터뷰를 한 게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해당 인터뷰는 내각부 연구회와는 관계없이 고바야시 교수가 개인 연구활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것이라는 게 내각부 측 입장이다.

현재 세이케이대학 및 고바야시 교수는 해당 발표자료에 대한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내각부 남녀공동참가국은 향후 연구회 회의록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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