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첫 국정원장이 갖춰야 할 요건 [쓴소리 곧은 소리]
  •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kwhan80cho@gmail.com)
  • 승인 2022.04.23 14: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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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의 단독 보고 안 받는 게 능사 아냐…정보 수집과 분석, 분리 안 돼
과거 잘못을 이유로 국가 최대 기관의 자산과 잠재력이 방치되지 않았으면

미국 정권교체의 상징은 국가정보기관장 인사다.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안보·정보 마인드가 늘 입는 옷처럼 자연스럽다. 당선 20일 만인 2020년 11월23일 나온 첫 인선은 국무부·국토안보부 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그리고 미국 17개 정보기관 공동체(IC)의 수장인 국가정보장(DNI) 등 외교안보 라인 7명이었다. “내가 듣기 좋은 말보다 들어야 할 최선의 판단을 보고해줄 사람”이라고 소개받은 에브릴 헤인즈 DNI 지명자는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결코 피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에게 국가정보국의 ‘대통령 일일 정보브리핑(PDB)’ 보고를 승인했다. 취임 10일 전에 윌리엄 번즈 CIA 부장을 지명한 후 바이든은 “미국 국민은 이제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상원은 2021년 1월20일 새 정부 임기 개시 당일 헤인즈 DNI를 압도적으로 인준했다. 바이든의 고위직 중 첫 인준이었다.

ⓒ연합뉴스
국정원은 2021년 6월4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원훈석 제막식을 열고 새 원훈을 공개했다. 새 원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부터 사용한 원훈인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를 5년 만에 바꾼 것이다.ⓒ연합뉴스

“권력자에게 진실 말하는 것을 피한 적이 없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의 국정원에 대한 대접은 신통찮다. 국정원장 인선은 취임 이후 신중히 하겠다고 한다. “원장의 독대 보고를 안 받겠다”고도 한다.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 같은 조직을 지향하면서 대북·해외정보 수집 전문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집만 하면 되고 분석은 국가안보실이 한다. 생선을 잡아 오기만 하면, 회를 뜨든 매운탕을 끓이든 국가안보실이 한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 지점에서 국정원의 기능에 대한 오인식과 편견이 느껴진다. 모사드의 공작과 정보 역량은 따로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총리 직보 체제 아래 중동의 적성국에 대한 준군사적 공격과 요인 암살을 한다. 민족을 위한다면 물불 안 가린다.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고, 이란의 해외테러 배후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폭사시킨 CIA는 또 어떠한가?

국정원은 국가기관 중 그 기능이 가장 방대하고 실효적 권능을 발휘할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지난 10년 이상 진영에, 법에, 그리고 여론과 정치에 치여왔다. 그간의 과오와 오남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방기되고 존재가 잊히고 있다.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국정원의 무기력, 무책임에는 원장의 문제가 자리한다. 역대 14명의 국정원장 중에서 “유능했던 원장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은 5명 중 4명이 영어의 몸이다. 대통령의 최측근도 있었고, 강골이라던 전직 육군 대장도 있었다. 해외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국정원 내부 출신 원로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요원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엄격한 법집행의 영역인 내·수사와 법 초월인 정보의 세계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국내 파트의 중요성과 속성에 어두웠다.

정보기관장은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접촉 대상자 자체가 메시지다. 코로나19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던 2020년 2월, 모사드의 요시 코헨 부장이 이스라엘 최대의 메디컬센터장을 만나고 난 뒤에 진단키트, 의약품,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을 대거 조달한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모사드 부장의 활약상은 두 달 뒤인 4월초 보건부 장관이 확진되었을 때 밀접접촉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고 나서 언론이 역추적해 알아낸 거였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완료 D-7’인 작년 8월23일 CIA 번즈 부장은 카불을 비밀리에 방문해 탈레반 지도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났다. 이후 미군의 철수는 순조로워졌다. 독일의 해외정보기관인 BND의 브루노 칼 부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24일, 수도 키이우에 발이 묶였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미·영의 정보기관이 몇 주 전부터 침공을 경고했는데도 그는 그때 거기에 있었다.

 

김정은과 중국의 의도에 대한 문제의식 확고해야

문재인 정부 국정원장들의 동선은 사뭇 달랐다. 한 원장은 2019년 5월 여당의 선거전략가와 비밀리에 만나는 장면이 포착됐다. 또 다른 원장은 작년 8월 북한 김여정이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배신적 처사”라며 험담을 쏟아낼 무렵, 유명 호텔 일식당에서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제보한 여성과 식사해 대서특필됐다.

국정원을 오로지 국익과 국민 삶에 헌신하게 하자면 원장이 관건이다. 섣부르게 세우면 결국 그 개인의 불행이 되고 국가의 불행이 된다. 국정원은 비밀조직이다 보니 원장 1인에 대한 응집력과 로열티가 강하다. 그래서 ‘황제 원장’의 생태계가 형성된다. 인사, 조직, 감사, 감찰이 원장 앞에 무기력하다. 집단사고와 집단무능으로 이어지곤 한다.

새 국정원장은 우선, 광범하고 복잡다단한 국내외 정보의 기능과 조직 생리를 세심하게 알고, 방첩과 국가보안을 알고, 융합판단정보와 정책 결정의 메커니즘을 경험한 테크노크라트이면 좋겠다. 둘째, 국정원은 북한 맞춤형으로 진화된 조직이다. 원장은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레버리지를 만들 창의력과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김정은의 의도와 능력을 꿰뚫어 보고 대적할 창칼이어야 한다. 레이건 행정부 때 윌리엄 케이시 CIA 부장은 1981~85년 소련을 군사적으로 소모하게 하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며 경제적으로 봉쇄하려고 세계를 누볐다. 국내에서도 공감을 확보하기 위해 정·관계와 재계로 동분서주했다. 소련의 개혁·개방을 끌어낸 셈이다. 셋째, 미·중 경쟁과 신냉전 시대에 중국의 도전요인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고한 사람이어야 한다. 넷째, 기후위기·전염병 같은 신안보 및 공급망 등 경제안보 불안, 사이버 공격, 테러, 국제조직범죄, 허위정보 등 대내외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낼 사람이어야 한다.

정보기관이 유능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국가 지도자라면 막중한 소임의 국정원장 적임자를 찾아내 제대로 활용할 책무가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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