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론] 속초 아파트가 17억원이라는데…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2 17: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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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집을 사.”

월세를 사는 젊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라라고 참견할 만큼 나 자신 잘 살지 못했으나 내가 했던 잘못들을 그네들은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몇 마디 하련다.

아파트 값이 미쳤다. 강원도 속초시에 새로 짓는 어느 아파트의 분양권이 17억원이 넘는 신고가에 거래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17억원이 있다면 설악산이나 동해가 보이는 호텔을 지을 수도 있지 않나. 통계에 따르면 지방 중소도시 중 작년 대비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 강원도 속초시란다. 속초시의 작년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억4017만원이었는데 올해는 2억1945만원까지 올랐다. 한국의 부동산 시세를 분석할 능력이 내게 없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나도 한때 속초에 집이 있었다. 내 생애 최초로 장만한 아파트가 속초의 현대아파트였다. 1999년 가을, 마흔 살을 앞두고 나는 정든 일산을 떠나 강원도로 이사했다. 내가 어릴 적 잠깐 살았던 항구도시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미분양 아파트라 복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혹해 모델하우스를 보고 바로 계약했다. 빈집이 많아, 뒤로 설악산이 보이고 앞 베란다에선 동해바다 전망이 나오는 집을 내 맘대로 골라잡았다. 23평 계단식에 방이 세 개나 딸린 그 집에서 나는 행복했던가. 내가 생애 처음 자동차를 사고(단종되기 직전의 프라이드였다) 운전대를 잡은 곳도 속초에서였다. 강릉의 면허시험장에서 뻑뻑한 수동식 핸들을 꺾느라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왔고, 미루고 미룬 장편소설을 쓴답시고 자판을 두드리다 느낀 통증…. 푸른 바다의 낭만보다 현실에서 직면한 아픔들이 더 생생하게 떠오르니, 그곳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손목 인대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몇 달 뒤에 나는 속초를 떠났다. 4900만원인가에 샀던 미분양 아파트를 시세차익 없이 (베란다에 새시를 설치하느라 지불한 200만원을 받지 못하고) 내가 구입했던 가격과 비슷하게 팔고, 게다가 악덕 부동산업자를 만나 중개료도 법에서 정한 금액보다 두 배나 더 물고 간신히 속초를 빠져나왔다. 이삿날 당일에 복비를 두 배로 주지 않으면 거래를 성사시키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 매도인인 나는 속수무책,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벌써 떠났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화가 났지만 저항의 말 한마디 못 하고 매도용 서류를 내주었고, 부동산에서 대출 승계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은행에서 매수자에게 전화를 수차례 한 끝에야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마흔이 되기 전에 집을 샀고, 이후 두어 번 집을 사고팔며 (큰돈을 벌지는 못했으나) 경험이 축적되어 최근 서울에 내 집을 장만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일산에서 다시 7년쯤 세입자로 살다 소설 《흉터와 무늬》를 펴낸 뒤에 나는 다시 강원도로 이사했다. 춘천에서 전세로 들어간 아파트를 몇 달 뒤에 약간의 은행 대출을 받아 매매로 전환했고, 공기 맑고 조용한 그곳에서 나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몇 년 뒤 춘천에 전철역이 생기며 집값이 올라, 2012년 춘천의 주공아파트를 처분해 1억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억’에 감격해 유럽여행을 하며 흐지부지 돈을 낭비했지만, 그때 생긴 1억원을 아슬아슬 까먹지 않고 유지했다 2019년 은행 대출을 왕창 받아 고양시에 아파트를 샀다. 작년에 그 집을 팔아 서울에 작은 거처를 장만했으니, 고맙다 춘천아.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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