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이 尹당선인과 직접 ‘검수완박’ 문제 협의해야”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2 10: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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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보는 ‘검수완박’ 사태
“잘 풀면 전화위복 국가적 경사…협치 모델 만들 좋은 기회”
“한동훈 임명, 정쟁 부를 잘못된 인사…尹, 보수 다시 세워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현재 정국을 ‘강대강’ 충돌로 몰고 가고 있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꼬인 문제를 직접 풀라는 주문이자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할 새로운 협치 모델을 만들라는 제언이다.

천 전 장관은 4월19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검수완박 문제를 잘 풀면 전화위복의 국가적 경사가 될 수도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책임 있게 고민하고 행동하면 못 할 것도 없다”면서 “한국에서 정권을 이양하고, 이양받는 과정에서 지도자 사이에 정치력을 발휘한 전례가 없다시피 한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개혁 전문가다. 이론과 실무 모두에 밝다. 변호사 때부터 검찰 개혁을 주장했다. 2019년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을 직접 다듬었다. 노무현 정부 두 번째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는 장관 재임 때 ‘6·25는 통일전쟁’ 발언으로 고발된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처음 발동했다. 1976년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전두환에게 판검사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1988년 민변 창립 멤버로 활동하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2000년 개혁 소장파인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핵심으로 ‘정풍운동’을 이끌었다. 국회에서 6선을 지냈다. 현재는 한국이란협회 이사장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에 힘쓰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 개혁에 찬성하는 이유는.

“한국 검찰에 대해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가 다 있다. 비판적인 면을 본다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오래 지적돼 왔다. 먼저 정치권력에 지나치게 예속된 점이다. 권력의 비리를 은폐하고, 정치권력이 시키는 사람을 부당하게 탄압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검찰 스스로가 지나치게 막강한 권력기관이 된 점이다. 검찰 스스로의 이권을 챙기고 자신들의 비리를 숨기고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사실 아닌가. 그래서 검찰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검찰 개혁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는가. 

“정권으로부터 어떻게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할지, 거대한 권한이 집중된 현재 구조를 어떻게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맞게 조정할지라는 핵심 과제가 있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우리처럼 총장을 정점으로 모든 검사가 일사불란한 위계조직을 이루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독점하는 조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대통령 외에 누가 검찰에 대항할 수 있나. 그럴 정도로 권한이 집중돼 있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를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식 등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래서 저는 20여 년 전부터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 같은 대안을 제기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결과적으로 검수완박에 동의한다는 것이지, 지금 같은 방식의 검수완박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검찰 개혁이란 총론과 달리 검수완박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다.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먼저 내용을 떠나 처리하는 방식이 졸속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문 대통령 임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 보시기에 과연 어떨까. 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입법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 강행하는 건데 정권 이양기에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하니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검수완박 이후 새로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생겨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검경 수사권이 시행된 지 2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수완박을 이렇게 추진하는 것은 괴이한 일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검찰이 가진 권한의 상당 부분을 경찰에 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경찰은 검찰과 얼마나 다른가’라고 말이다. 경찰은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독립되어 있고 중립적인가. 또 경찰이 권력 남용을 안 한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나. 현재 경찰에 대한 견제 장치가 존재하나. 검찰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등이 있다. 경찰은 아예 견제 장치가 공백상태다.”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보나.

“물론이다. 중대범죄수사청이든 한국형 FBI든 제기된 우려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 논의는 정치권과 전문가 집단을 넘어 범국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방과 안보에 한 치의 공백이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대내적인 수사도 마찬가지다. 범죄 수사 대응에 한 틈의 공백도 있어선 안 된다. 이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안녕에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확실한 제도 보안책 마련과 함께 사회적 논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당은 오히려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DJ가 정권교체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를 만들었다. 지금은 존재 이유가 너무 당연한 조직이지만 당시엔 아니었다. 추진 과정에서 정부·여당은 물론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서 끈질긴 협상과 조율의 과정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선 얼굴도 붉혔다. 당시 당에 있었던 저는 DJ에게 서운했다. ‘빨리 좀 만들게 해주지. 대통령 공약인데 왜 이렇게 의견 수렴과 조율에 시간을 끄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 설치까지 몇 년이 걸렸다. 돌이켜 보면 그게 다 국민 여론을 하나로 수렴해가는 과정이었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을 ‘문재인-이재명 구하기’라고 주장한다.

“저도 민주당원이지만,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 갑자기 검수완박을 들고나오니까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한 점은 있다고 본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힘 주장은 억측이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민주당 스케줄대로 법안을 만들고, 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안 해서 통과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5월10일 전에 법안이 공포되고 3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8월부터 시행된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엔 3개월의 시간이 있다. 공격할 거라면, 그 3개월은 충분한 시간이다. 또 검찰의 수사권이 경찰에 넘어간다고 해보자. 지금이야 경찰이 문 대통령의 휘하 조직이라지만, 8월에도 그런가. 그때의 경찰은 윤석열 정부의 지휘를 받는다. 새 정부가 경찰에 수사통들을 전면 배치하고 ‘수사해’라고 하면 공격을 못 할 것도 없을 거다.”

ⓒ시사저널 이종현
2005년 10월17일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수빈 검찰총장. 천정배 전 장관은 당 시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처음 발동했다.ⓒ시사저널 이종현

마지막 이유는.

“현재 법무부 장관에게는 상설특검 발동권이 있다.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통과시키더라도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특검의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지금 윤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에 한동훈 후보자를 지명한 걸 보면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일 것 같지 않나. 특검으로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검수완박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고문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측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거부권 행사는 법안이 통과된 다음의 일이다. 문 대통령이 5월9일까지는 국정 최고 책임자다. 민주당의 최고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현재 상황에 가장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당연히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제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여당 원내대표도 했고, 내각에서 법무부 장관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다. 제 경험으로 이런 일을 여당이 청와대와 협의 없이 추진하지 않는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문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와 물밑에서 조율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시시비비를 가려서 옳지 않다면 중단시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지 추후에, 그것도 퇴임하는 대통령이 마지막 업무로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가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 더 나아간다면 이 문제는 차기 권력인 윤 당선인과 협의를 해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검수완박 문제를 잘 풀면 전화위복의 국가적 경사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책임 있게 고민하고 행동하면 못 할 것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 정권을 이양하고, 이양받는 과정에서 지도자 사이에 정치력을 발휘한 전례가 없다시피 한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현재 정국이 어떤가. 여야 모두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입법권을 가진 민주당이 향후 2년을 주도한다. 윤 당선인은 취임 이후 민주당과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국정이 마비될 거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윤 대통령을 넘어 모든 입법을 추진할 수도 없다.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이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전체 의석의 3분의 2가 필요한데, 민주당에는 그만큼의 의석이 없다. 이런 구도가 오히려 협치를 강제할 상황을 만들었다.”

검수완박으로 협치가 가능할까.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통과시킨다는 전제 아래 생각해 보자. 그럼 공은 윤 당선인 측에 넘어간다. 검수완박이 현실화된 상태에서 정권을 인수받는다. 그럼 국가지도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제가 볼 땐 검수완박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인은 이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아이디어도 있을 거다. 서둘러 안을 내서 본인은 문 대통령과 소통하고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협의하게 하는 거다.”

톱다운 협상으로 문제를 풀자는 제안인데. 

“새로운 제도를 점진적으로 만들어보자는 거다. 예를 들어 ①민주당이 주도하는 2년이라는 시간 안에 검수완박을 최종적으로 제도화하기로 합의한다. ②제도화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 그 논의 기구를 국회에 설치한다. 혹은 대통령 직속으로 둔다. ③논의 기구에서 각계각층의 토론을 거쳐 합의안을 도출한다. ④도출된 합의안으로 검수완박을 최종 제도화한다. ⑤차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사전에 여야 합의로 제어한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해결방법이다. 모두 한 발씩 양보하지만, 모두 하나씩 얻어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장 2년이라는 시간을 갖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을 위한 훌륭한 제도를 만들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으로 협치의 공간은 더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한 후보자의 개인적 역량이나 적절성 문제는 차치하고 보자. 그것과 관계없이 윤 당선인이 한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지금 많은 국민은 검찰이 정권에 종속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검찰 개혁은 무산되고 검찰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한 후보자 지명으로 이런 우려가 더욱 커졌다는 점에서 우선 부적절한 인사다. 두 번째 이유는 한 후보자가 억울할 수도 있지만, 민주당 입장에서 한 후보자는 자신들을 공격하고 위협할 선봉장으로 여겨진다. 한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여야는 사활을 건 정쟁과 대치로 가게 된다. 윤석열 정부도 식물정권이 된다. 국가를 위해 좋을 게 없다.”

지금까지의 인수위는 어떻게 평가하나.

“전혀 준비가 안 된 모습이다. 인수위가 한 달 지났는데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다. 비판이 아니다. 준비가 안 된 대선후보를 뽑은 게 우리 민심이다.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

윤 당선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란다. 그래서 국민의힘 대통령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보수를 새롭게 세웠으면 한다. 보수를 획기적으로 쇄신하는 것이다. 지금 보수를 표방하는 세력을 원점에서부터 재구성해 재창당에 버금가는 쇄신을 보여주면 좋겠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6월29일 청와대에서 신임 천정배 법무부 장관(가운데), 이재용 환 경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나누며 격려하고 있다.ⓒ연합뉴스

보수를 다시 세운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는 현재의 보수 세력에 엄청난 불신이 있다. 저도 정파적인 사람이지만 지금의 보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인권, 평등 등의 가치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런 가치를 확고하게 내면화하고 있는 집단인지 의심이 된다. 물론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은 지금 주도권 없이 변방에 있지 않나. 상당수는 소수 엘리트 집단으로서 자신들의 지위와 권한 강화에만 관심이 있고, 불평등과 같은 우리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력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최고의 복은 야당 복 아니었나. 윤 당선인이 철 지난 기존의 수구 기득권 세력과 결별하고, 새로운 비전과 철학으로 무장된 이들과 함께 자신이 내세운 ‘공정과 상식’의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한다.”

또 하고 싶은 조언은.

“소통이다.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소통의 시작은 야당이 해야 한다. 제가 국회의원을 오래 했는데, 야당 소속일 때 여당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일본에 가면 일본 총리는 만나고 했다. 같은 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야당과도 적극 소통해야 한다. 진심으로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사회와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만나야 한다. 자유주의에 충실한 보수정권으로 성공하는 일도 소통의 노력에서 시작될 것이다. 소통과 포용, 국민 통합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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